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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29. 2023

<취향 존중 육아> 이순신을 추앙하다 1

역사 속에서 인생 멘토를 만나다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치는 김땡땡입니다."


한땀 한땀 판옥선 방향을 수정 중

아이는 역사를 가르치는 황현필 선생님을 흉내 내며 칠판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해전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마커 색깔을 바꿔가며 집중한다.

판옥선들을 배치하고 나서 적선들을 그려 넣었고, 마지막으로 까만색으로 화포를 팡팡 쏘아대며 즐거워한다. 명량해전에서는 거북선이 없었다며, ‘상상으로 그린 거북선이야. 멋지지!'라며 행복해한다.

이어 노량해전, 부산포해전까지 디테일의 힘이 느껴지게 정성을 다한다.


화포들이 펑펑, 백병전도 활발히

“엄마, 이건 곡사포로 그린 거고, 여기 이곳은 백병전 중이야 ㅋㅋ 노량해전에선 명나라가 도와줬는데 명나라 배들은 약해빠져서 도움이 안 돼.”


나는 내 아이에게 꼼꼼함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냈다. 날아가는 글씨체, 책가방 속은 요지경, 삐죽 나온 러닝, 항상 까치집인 머리카락, 질질 흘리며 먹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 아주 작은 판옥선의 방향이 다르다며 다시 고치는 아이를 보고 나는 반성했다.

내 아이는 충분히 꼼꼼하다. 충분히 세밀하게 세상을 보고 충분히 세심하게 느낀다. 내 아이는 꼼꼼하다.


모서리 한쪽이 구겨질 정도로

아이가 황현필 선생님이 집필하신 ‘이순신의 바다’ 책 속 전투 그림들만 뚫어져라 봤던 이유가 있었다.

그 촘촘하게 배치된 전선들을 보며 아이도 함께 싸우고 있었던 것. 이순신 장군님이 되어 수군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에 임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그림만, 그림들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전 그림들을 보다 보다 못해 하다 하다 못해, 디테일의 힘을 장착해서 칠판 위에서 춤추며 예술의 혼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가 이순신 장군님을 우리나라 최고 위인이라 여기게 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니 4년이 흘렀다. 세종대왕보다 이순신이 더 위대하다며 조목조목 따지는 아이에게 혀를 내두른다. 어린 시절 전쟁놀이를 즐겨했다는 기록과 무과 시험에 낙방했으나 다시 도전해 기리 남을 위인이 됐다는 점과 패배를 모르는 23전 23승의 기록 그리고 전쟁 와중에 일기까지 썼다는 것은 아이에게 이순신은 최고의 위인으로 삼을 만했다. 이순신 장군이 되어 방안 곳곳을 임진왜란이 한창인 전쟁터로 만든 것은 당연한 일.


“발포하라! 좌현으로 우현으로 쏴라!!”

“펑펑 퍼퍼펑펑”

아이방 침대 위는 이미 전쟁터


이순신 장군이 되어 왜군에 맞서 한참을 전쟁하다 조용해져 가보면, 장군님이 지쳐 쓰러져 침대 위에 널브러진 채 나뒹굴고 있는 책을 집어 뒹굴면서 읽고 있다. 좀 조용하다 싶더니 이내 다시 전쟁은 시작된다. 나를 따르라는 외침과 여기저기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온 집안을 압도한다.

이순신 책들.. 만화책은 더 많다..


이순신 장군님과 친족관계인 듯한 ‘거북선’이 빠지면 안 되지. 디테일의 힘은 거북선 제조에도 요구된다. 작은 모형일지라도 거북선은 정교했다. 해를 지나 몇 번의 실패 끝에 거북선 모형을 아이 스스로 완성한다. 아이의 소근육이 잘 발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이뤄낼 때 성취감은 더없이 커질 테니. 그리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소중하다. 거북선 완제품을 사줄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과정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다. 두 시간 동안 구시렁대는 걸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이 곤욕이긴 하나, 아이의 성취감을 위해서 부모는 버텨야 한다.

가까스로 완성한 모형 거북선


작년, 그러니까 2022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아이의 바람대로 거북선을 선물해 주셨다. 그러나 조립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 두셨다. 아이의 몫은 곧 산타 자신의 몫. 크리스마스날 아이 아빠는 장장 3시간이 넘게 한자리에서 거북선을 조립했다. 이십만 원을 호가하는 조립 거북선이기에 우리 집 산타는 크리스마스날 아침부터 조립하느라 예민했다. 그럼에도 용머리가 들락거리고 철심이 빼곡히 박힌 완성된 거북선은 정말 장관이었다.  

산타할아버지 선물, 산타가 조립해 준 거대 거북선


아이는 여전히 이순신 장군님을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순신을 능가할 인물이 아이

인생에 나타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비등한 인물은 나타날 수 있겠지만 능가할 인물은.. 아무래도 없을 듯하다. 아마도 지나간 역사 속 인물로는 이순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아이의 취향을 존중한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아이의 덕질을 응원한다. 이순신 장군이 되어 방구석 전쟁이 한창 일지라도, 책 속 무기 사진들만 전투 그림들만 보고 있을지라도, 영화 ‘명량’과 ‘한산’을 보고 또 보고 하다 대사까지 외우고 있을지라도 나는 아이의 취향을 존중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해전사 성웅 이순신 장군을 추앙한다는 데 마다할 리 있을까. 오늘도 아이는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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