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Nov 29. 2023

<취향 존중 육아> 이순신을 추앙하다 2

역사 속에서 인생 멘토를 만나다

“엄마, 뭐 어떤 걸 해볼까.. 나도 책을 해야 하나?”

​​

친구가 유튜브로 마인드맵을 올리고 있다. 책을 읽고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한 마인드맵을 보여주는 영상. 아이와 함께 영상 하나를 시청했고, 아이는 이내 흥미를 보였다. 어떤 것으로 마인드맵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아이에게 넌지시 미끼를 던졌다.

"잘 알고 있는 걸 그리면 가지들이 확장이 좀 잘 되지 않을까? 엄마는 그려보니 가지 확장이 잘 안 되더라.. 뭘 알아야 확장을 하지.. 아! 아들, 이순신장군에 대한 거 어때? 아는 게 많을수록 쓸 거리가 많잖아."

​​

그러면서 나는 다시 책 속에 얼굴을 숨겼다. 미끼는 던졌고, 나머진 기다리면 된다. 미끼를 물던 안 물던 그건 내 소관이 아니리라.

​​

"옹, 괜찮네!!"

일필휘지라고 해야 하나, 일필가지라고 해야 하나. 아이는 꽤 짧은 시간에 완성을 하고서 만족해했다. ​​​중간 빨간 동그라미 안 '이순신'이라 적고, '거북선' '해전' '무기' '모함' 이렇게 네 개의 메인 가지에서 갈래를 나뉘며 죽죽 뻗어가고 있었다.

거북선- 철갑선- 용두를 들락날락- 강함- 안전함- 조총 끄떡없음- 충파 OK- 속도 10km

유용- 3층 구조- 1층 선실 2층 노군 3층 전투원- 돌격가능- 배길이 30m- 용머리크기 4자 9치

모함- 종 5품- 병조판서의 모함- 원균모함- 좌수사 모함- 간신히 목숨만- 원균 칠천량 거의 배전멸- 거북선 3척 빠이빠이​

등등​

생애 첫 마인드맵

​이순신을 생각하면 이순신장군이 모함을 받았던 부분이 아프게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이순신과 모함을 엮어낸 아이의 생각가지가 이순신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매번 모함받아 고통받은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아이는 헤아리고 있는 것일까.

2학년 때인가, 아이는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 중 몇 명이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며 담임선생님께 일렀다고. 그 당시 억울했다며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자신의 경험과 같은 일을 겪은 역사적 인물을 만날 때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히 자신이 추앙하는 인생 멘토가 겪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고서. 이순신과 모함의 연결고리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가족 필사 프로젝트 그러나 아이는 이순신 이야기를 지어낸다

작년 2022년 10월 7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은 소위 ‘필사 프로젝트’를 강행한다. 당시 3학년인 아이가 맞춤법이 부족해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하다 생각해 낸 방법. 가족이 함께 각자 원하는 책을 골라 매일 원하는 만큼 필사를 하기로 했다. 바쁜 아빠도 출근 전에 몇 줄 남기고 가는 정성을 보였고, 나는 김훈 작가님의 ’ 칼의 노래‘를 필사했다. 아이를 위한 가족 프로젝트였지만, 필사하며 나는 김훈 작가님의 문체에 흠뻑 빠져버렸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강건함과 울림이 느껴졌다.

내가 필사의 매력, 김훈 작가님의 매력에 빠져있는 사이, 아이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매일 한 두 문장씩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필사를 하지 않아도, 한 두 문장에 끝을 맺어도 나는 토를 달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아이는 신기하게도 어느 때는 신나 하며 10 문장이 넘게 쓰기도 했고, 줄을 채우고 싶어 세로로 문장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마침내 3개월의 대장정이 끝났고, 맥락이 없는 듯 보였던 조각조각난 문장들이 사실 아이 머릿속으로 매일 이어지고 있었고, 아이는 이순신에 대한 글 한편을 완성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위대한 이순신

                              정드래곤쉽

이제 자세한 옥포해전에서 노량해전까지 당분간 들려줄 것이다. 옥포해전은 이순신이 처음 겪은 해전이었다. 우리는 일자진을 펴서 왜군에게 함포를 쏘았다.

왜군들은 백병전을 하려 했는데 함포가 날아와서 먼저 배를 침몰시켰으니까 어려움이 많았다. 왜군들은 조총을 쏘지도 못하고 바다에 수장되었다.

옥포해전의 승리로 사기가 올랐다. 그리고 신기전이 쏘아 올려졌다. 포작선들이 발견한 왜선이었다. 이순신은 서둘러 함포쪽으로 갔다.

함포쪽은 왜적들이 있었다. 그 왜적들을 이순신이 손쉽게 격파하였다. 적진포쪽에 신기전이 불을 뿜었다.

적진포쪽에서 왜적들이 벌벌 떨며 있었다. 이순신은 손쉽게 이번에도 배를 13척 중에 11척을 침몰시켰다. 그래서 이순신은 옥포, 함포, 적진포에서 승리했다. 이순신과 부하들은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

이순신은 사천쪽에 갔다. 사천에는 왜성이 있었다. 이순신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사천해협은 암초도 많고 길이 좁았다. 물살도 거셌다. 이순신은 유인전을 전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유인전은 통하지 않았다.

이제 사천 쪽에 밀물이 들어왔다. 이순신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북선을 출발시켰다. 왜군들 입장에선 시커먼 거적을 두른 배가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왜적들 조총이 불을 뿜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해진다. 조총을 위로 겨누고 발사했는데 조총이 팅!팅! 튕겨나간다. 이번엔 배 하부쪽에 조총을 발사했다. 조총이 틱!틱! 꽂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조총은 5cm 나무두께도 통과하기 어렵다. 거북선은 15cm 나무두께 배였다.

거북선은 계속 헤집고 들어갔다. 일본군들은 거북선 위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쇠못이 달려 있어서 엉덩이, 몸, 팔을 찔려 아우성쳤다.

거북선은 아직도 헤집고 들어갔다. 이순신은 판옥선을 사천쪽으로 전진시켰다. 그래서 이순신이 사천에서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이순신은 당포로 향했다. 당포에도 왜적이 있었다.

안택선 누각에는 사령관 가메이 고레노리 였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출발시켰다.

거북선은 계속 돌격했다. 사령관은 아무 반응 없었다.

아무리 거북선이 다가가도 사령관은 조총만 쏠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

거북선은 안택선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안택선 누각에 있는 가메이는 떨어졌다. 그 후 누가 활을 쏘아서 가메이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가메이 고레노리가 아닐 수도 있다.

이제 당포해전은 끝났다. 이제 당항포해전이다. 이순신은 당항포로 진격했다. 당항포에도 왜적들이 꽤 있었다.

당항포에서 화포가 터져 나왔다.

그것도 사방에서 말이다. 두 개의 학익진이 형성되어 사방에서 함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당항포는 왜적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쌍 학익진이었다.

수많은 왜적들이 죽었다.

이렇게 당항포 해전은 끝이 났다. 이제 한산대첩이다. 한산대첩 시작 직전에 왜구들과 조선군 군사들은 출발했다. 왜구들과 조선군은 견내량에서 만났다. 견내량에서 어영담의 판옥선은 함포를 쏘았다. 일본군들은 여러 척 격침됐다. 조선 수군은 뱃머리를 돌렸다. 한산도 쪽에서 학익진을 펼쳤다.

사방에서 함포가 쏟아졌다.

두 전투선이 튀어 나왔다. 거북선이었다. 거북선은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거북선은 충파로 일본 배를 격침 시켰다.

그 다음에 이순신은 부산포로 갔다.

일본 본진 부산은 일본의 최고 기지였다. 부산포가 빼앗기면 일본군은 절망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은 육지에 화포를 많이 설치해 놓았다.

일본은 조선군이 다가오자 화포를 쏘았다. 조선 포로들이 화포를 쏘는 것이었다. 이순신 함대 역시 포를 쏘았다. 당시 일본군에 화포 사정거리는 약 600미터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 화포는 1000미터 넘게 날아간다. 일본 화포는 거의 다 바다에 떨어지고 조선 화포는 반대로 맞았다. 그리고 거북선이 가까이 다가온다. 거북선 입에서 화포가 나왔다. 이순신은 부산해전에서 대선 30척 소선 90척을 격침 시켰다. 사망자도 8000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하지만 원균은 거짓 장계를 올려 이순신을 모함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순신은 임진년에 있던 일 중에 판옥선을 한 척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원균은 출정할 때마다 판옥선의 손실을 가져왔다. 원균은 세키부네 10척을 격침 시키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30척의 배를 잃은 대 사고를 쳐 버렸다.

원균은 오직 이순신보다 잘 나가겠다며 삼도수군통제영에 모든 판옥선을 출정시켰다. 판옥선 134척과 협선 200척이 출전했다.

원균은 한산도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갔다. 이순신이 부산으로 출정했을 때는 파도가 잔잔한 때를 골라서 출정했지만 원균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일본 척후선이 나타났다.

원균은 그 척후병을 쫓아가려고 전 함대를 휘몰아쳐서 그 일본 척후병을 쫓아갔다. 원균은 바보일까? 그 척후선 몇 척을 쫓아가겠다고 판옥선 10척을 버리고 계속 쫓아갔다. 시마즈는 원균의 군사가 지쳐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습공격했다. 원균은 부산포에서 칠천량까지 도망갔다.

거기서 원균은 쉬었다. 그리고 일본군이 다시 한번 기습했다. 원균은 놀라서 급히 진영을 정비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본군들은 갑자기 기습 공격했다. 그리고 육지에 화포까지 있었다.

원균은 칠천량 해협에서 133척 중에 12척을 잃었다.

그리고 이순신이 드디어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했다. 이순신은 칠천량에서 거의 전멸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재정비하려고 애썼다. 이순신도 알았다. 13척으로 330척을 무찌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울돌목을 택했다. 왜냐하면 거기는(울돌목은) 물살이 세서 일본 배가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순신은 13척의 배로 출발해서 명량에 다다랐다. 역시 물살이 세서 일부 배들은 뒤로 물러나고 겨우겨우 전진해 오고 있었다. 역시 13척 중에 12척은 뒤로 물러났다.

축구로 따지자면 김억추는 골키퍼고 나머지 12척의 판옥선은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진영이 무슨 12 1 이냐고........... 하지만 이순신은 계속 나아갔다.

이순신이 쾅 쾅 화포를 쏘았다. 화포는 좁은 명량 물길 속에는 백발 백중이었다.

일본군들 몇 척의 전함은 가라 앉았다. 하지만 구르지마 미치후사 부대는 계속 계속 와서 이순신을 포위시키고 사다리(갈고리)를 던져 백병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화포로 왜군들을 쫓아내고 다시 진을 정비하고 화포를 발사해서 왜군 전함을 하나 하나 격침 시켰다.

물살이 바뀌었다. 안위와 김응함이 물살이 바뀌어서 용기가 났는지 앞으로 계속 전진해와서 이순신에게까지 가까이 와서 화포를 쐈다.

다른 배들도 용기가 났는지 앞으로 전진해 포를 쏘는데, 명량이 너무 좁아 백발백중이었다.

이순신은 끝까지 쫓아가서 왜적을 격침 시키려고 했지만 물살이 바뀌어서 그러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승리였다.

명량의 승리로 백성들의 사기가 오른 것이다. 이순신은 백성들도 군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천병 진린이 왔다. 진린은 이순신을 만만하게 보았다.

그래서 이순신도 분노했지만 참았다. 이제 곧 노량해전이 시작된다.

노량에 시마즈 요시하로 부대와 진린의 200척과 이순신의 70척이 대전투를 벌인다.

이순신은 몇 척을 보내서 시마즈 요시하루 부대 몇 척을 격침 시켰다.

하지만 별 아랑곳하지 않고 등자룡 함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포위해서 백병전을 시도했다.

백병전은 성공했고 등자룡 판옥선이 가라 앉았다.

시마즈 요시하로 부대는 더욱 더 진격해서 진린 배까지 다가갔다.

다행히 이순신 함대가 도와줘서 다행히 살았다.

그때! 총탄이 하나 날아와서 이순신 가슴에 맞았다. 이순신이 죽었다.

그 후로 선조는 이순신에게 좌의정(종1품) 벼슬을 내려 주었고 정조가 이순신을 영의정(정 1품) 벼슬을 내려 주었다.

이제 이순신 이야기가 끝났다.




​아이의 뒤죽박죽한 문장들을 컴퓨터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느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부모의 눈에 거슬리는 맞춤법 혹은 글씨체는 아이의 위대함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부모들이 나를 포함해 부지기수다. 아이의 맞춤법 때문에 ‘가족 필사 프로젝트’ 라는 걸 나도 시작했으니. 하는 동안에도 줄곧 글씨체를 지적하고 싶었고, 글의 양에 불만족했으며 휘리릭 해버리는 태도를 꼬집고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한쪽 한쪽 채워지는 우리들의 기록을 보며 하루치의 즐거움을 느꼈다. 하루가 매일이 쌓이니 가족의 추억이 되었고, 아이는 자신의 글 한편을 써내는 성취감을 느꼈다.

아이의 취향을 존중한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하려 한다. 취향이 이상향이 되는 그날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 존중 육아> 이순신을 추앙하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