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먼저 온 미래

by 심소소

대학 시절 교양으로 진화론을 들은 적 있다. 모든 구체적인 내용을 까먹었지만 한 가지 명제만 기억난다. 진화란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운 좋게 환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생물은 생존했고, 반대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이 책은 알파고와 딥러닝 AI의 등장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 변화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바둑의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바둑이라는 게임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게임을 둘러싼 모든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기사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바둑계를 떠나거나, 적응해서 살아남거나.


작가는 바둑계의 변화가 모든 산업, 특히 작가 본인이 종사하는 문학에도 불어닥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인공지능만으로도 이미 많은 게 달라졌고, 언젠가는 인간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탁월한 문학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평균을 좇도록 설계된 현재 인공지능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이 그러하듯 인공지능 스스로도 '탁월함'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낙관적인 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작가의 분노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챗지피티가, 제미나이가,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진보가 아니면 퇴보일 뿐이라고 겁을 주며 경주마처럼 개발해대는 모든 기술들이 나의 삶을 바꾸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일지라도 나의 일에 보람이 있기를 바라고, 내 삶이 가치있기를 바라며, 세상에 여전히 신비와 영성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 모든 게 사라질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고, 실제로 조금씩 사라져갔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정확히 지적한다.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저들이 무엇이길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그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짓이다. 홍수가 와서 논밭이 떠내려간대도, 산불이 나서 집이 전소되었대도, 홍수랑 산불에 화를 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AI의 등장이란 자연현상과 같은 변화이고, 우리는 거기에 적응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미련하더라도, 나는 분노하고 싶다. 그들은 내게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갈 자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특히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뺏어가는 존재에게 함께 분노하면 좋겠다. 그 분노가 세상을 바꿀 힘이 되지는 못하지라도, 적어도 나와 같이 느끼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 많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차갑고 냉철하지만 동시에 문제적일 정도로 선동적인 책이다. 이런 책을 접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그리고 그렇게 효험이 좋지 않은 기도라는 건 알지만,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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