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이 신체적 데미지를 극복하는 시기였다면, 3학년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내야하는 시간이었다. 두루두루 모두와 가까웠던 1학년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것. 교우관계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엔 지금보다 미움받을 용기가 더 부족했다. 주변 눈치를 살피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 같을 때 슬쩍 나서는 성격이었다. 기 센 체대 입시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매 순간 잔잔한 긴장과 위축 속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가까워지고 싶어도 뭔가 결이 맞지 않다고 해야할까. 그 아이들 나름의 친근함 표시가 나에게는 거칠어 보였다. 그렇다고 또 기죽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어서 없는 용기 쥐어짜며 애써 당당한 척 하는 것이 기본 마인드 셋팅이었다. 머릿속에 미세먼지 같은 두통이 항상 있었다. (오히려 그 당시 가까이 지냈던 친구는 미술반 친구, 그리고 같은 반도 아니었던 이과반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현재까지 최측근(?)이다.)
아무리 억지로 아닌 척 한다해도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3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그나마 편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그 멀어진 친구들과 몇 달 전부터 같은 체대입시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학교는 불편해, 학원은 불편해졌어, 오갈 데 없는 심정이었다. 학교에서는 미술반 친구들 사이에 껴서 지내고, 입시체육 학원에서는 탈의실에서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냈다. 대놓고 괴롭히거나 불러내거나 폭력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늘 긴장속에서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상황이 결국 다가온 느낌이었다. 체육반에서 나는 은따였다.
입시체육 운동이야 학원에 있는 동안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따라하면 됐지만, 대부분 혼자서 해야하는 공부가 손에 잡힐리가 없었다.
우선 수능 성적이 나와야 그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의 입시 전형에 맞춰 체육 과목을 연습할 수 있다. 입시 준비 비중을 비율로 놓자면 공부 70, 운동 30 였다. 운동은 감각이나 체력이 저하되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면서 공부에 더 많은 무게를 둬야했다. 여름 방학 이후 나는 공부 10, 운동 50, 멍때리기 40 정도의 비율로 지내왔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바로 그 때 만화책의 세상에 진정으로 눈을 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모두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희망했다. 그러려면 최소한 언어, 수리, 영어 등급 총 합이 6 이내로 들어와야했다. (예: 최소한 언수외 3,2,1 등급 or 2,2,2등급) 2학년 때는 잘 봤다 싶으면 2,3,3 못 봤을 때는 3,3,4 정도의 등급을 받았다. 목표 성적까진 한참 거리가 있었다. 열심히 끌어올려서 9월에 있을 마지막 전국모의고사에서는 최소 2,2,3 등급이 나와야 했다.
대망의 9월 전국모의고사. 교과서 대신 만화책을 가까이 했던것 치고는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답도 쉽게 골랐고 시간도 딱 맞췄다. OMR 카드를 아주 개운하게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