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탐구 과목 등급은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모르긴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거의 안했다 싶은 수준이었기에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성적표를 받았던 순간 처음 든 생각이 '큰일났다! 나 대학 어떻게 가지?'가 아닌 '큰일났다! 엄마아빠한테 난 죽었다!'였다는 것이다. 수능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도 나는 그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부모님은 그때 처음으로 체대 입시를 시킨 것을 후회하셨던 듯 하다. 아무래도 수능과 내신 준비에 올인하던 상황과는 다른 환경이었으니 마음이나 집중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시점. 이제와서 체대 준비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체대 입시 학원에 나가지 말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부모님의 표정을 보니 언제까지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는 없겠다 싶었다. 늦게나마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집중했다. 체대 입시 학원을 나가지 않게 된 것도 도움이 되었다. 같은 반 학우 몇명과 함께 학원을 다녔는데, 그 중 한명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방과 후 시간만이라도 그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그런다고 수능 점수가 드라마틱하게 나올리는 없었다. 최종 수능 성적은 언어 4, 수리 3, 외국어 4 등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딱 두달 바짝 집중해서 올린 점수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지만, 처음 목표했던 학교에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점수였다. 전략을 바꿔야했다.
우선 체대 입시 학원을 바꿨다. 전 학원에 비해 규모도 크고 상위권 대학도 매년 꾸준히 많이 보낸 곳이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체대 입시 명문 학원이었다. 스카이반, 중대반, 이대반 등 주요 학교 별로 반이 나눠져 있었고 입시 관련 정보도 많았다.
새로 옮긴 학원에서의 생활은 고3 시절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3, 재수생, N수생 언니 오빠들 모두 착하고 재미있었다. 운동을 가르칠 땐 무섭지만 휴식 시간엔 친구처럼 대해주시던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수능이 끝난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놀듯이 운동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1월부터는 본격적인 실기 시험 시즌이다. 원장님들과 상담 후 나는 이화여대를 준비하며 이대 준비반에 들어갔다. 당시 이화여대 실기 종목은 200m 달리기, 30초 반복점프, 10m 왕복 달리기, 구름사다리였다. 합격하기 위한 안정적인 예상 커트라인은 이랬다.
200m 달리기 : 32.5초 이내
30초 반복점프 : 48개 이상
10m 왕복 달리기 : 9초 대
구름사다리 : 25개 이상
남들은 농구, 배구, 체조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구름사다리가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이화여대다. 공부에 집중 안했던 만큼 실기 시험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실제 시험장에서 쓰는 구름사다리와 비슷한 구조물에서 연습하기 위해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훈련을 했다. 너도나도 손바닥이 몇번이나 터졌다. 껍질이 벗겨진 손에 그대로 탄마(땀을 흡수하여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르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바르고 다시 구름사다리에 올랐다. 다른 종목 역시 매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준비하였다.
1월의 어느 날. 이대 준비반은 학원 마크가 그려진 롱패딩을 입고 이화여대 체대 실기 시험장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