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아니라 커피에 집중하게
타이베이 골목을 걷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에 이끌려 들어간 곳, 'Irga'.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은 타이베이에서 만난 가장 보석 같은 카페였다.
콩이 다시 주인공이 되게 하는 카페
이 카페의 이름은 Irga. 사장님은 원래 IT 엔지니어였는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의 향에 반해 커피 업계로 전향했다고 한다.
‘Irga’는 예가체프의 옛말로 ‘안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인스타그램 소개 문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주일에 3~4일은 직접 로스팅을 하고, 매장은 바 테이블에 서서 마시는 아주 협소한 구조다. 공간의 화려함 대신 사장님과 소통하며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가장 맛있는 지점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너무 인상 깊어서 자연스럽게 “한 잔 더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사장님의 대답은 이랬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가장 맛있게 느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순간 멈칫했다. 커피를 더 팔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현재 마신 원두의 레벨과 정교함이 쌓일 수 있는 경우에만 다음 잔을 주문할 수 있다.
정교함을 더할 수 없는 상태라면, 아무리 손님이 원해도 커피는 더 나오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더 파는 것보다 손님이 원두의 향과 이야기를 ‘깊게 느끼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를 ‘한 잔’이 아니라 ‘테이스팅 경험’으로
사장님은 커피를 설명할 때 마치 와인 소믈리에처럼 원두, 산지, 풍미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이곳에서 커피는 빨리 마시는 음료도 아니고 카페 공간을 위한 배경도 아니다 ‘테이스팅 경험’ 그 자체다. 컵은 아이싱 보관했다가 내어주고, “세 모금으로 나눠 드세요”라는 안내를 곁들인다. 한 모금, 한 모금에 의도와 리듬이 있다.
커피가 배경이 아닌 순간
한국에서는 카페가 너무 많다 보니 커피가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공간과 인테리어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커피 맛을 아주 잘 아는 편은 아니라 종종 공간을 먼저 보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커피에만 집중하게 됐다.
“아, 내가 평소에 이렇게 한 잔을 진지하게 마셔본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신도 센스가 있다』를 읽고, 이 카페를 다시 보다
마침 어제 『당신도 센스가 있다』를 읽고 글을 써서, 이 카페를 컨셉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정리해본 Irga의 스토리
고객: 사람들은 매일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카페에서 커피는 공간을 위한 배경음처럼 소비된다.
그래서: Irga는 원두의 이야기와 맛에만 집중하는 테이스팅 카페를 만든다.
그러므로: Irga는 ‘커피가 주인공이 되는 한 시간’을 파는 브랜드다.
한줄 컨셉: 커피가 주인공이 되는 한 시간
이 컨셉으로 보면, “더는 팔 수 없습니다”라는 사장님의 말은 매출을 포기한 선택이 아니라 컨셉에 가장 충실한 행동이었다.
Irga는 커피를 많이 파는 카페도 아니고 편안히 오래 머무는 공간도 아니다
대신, 한 잔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을 만든다. 이 카페를 떠올리면 맛보다 먼저 그 태도가 기억난다.
커피 한 잔을 더 파는 것보다 커피를 깊게 느끼게 하는 일을 선택한 태도.
아마 그래서 이 카페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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