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는 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후회하는 건 말이야.
엄마는 잠깐 숨을 고르고, 아주 사소한 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 갔다 오기 전까지 집안일을 다 끝내놓고 싶어서 청소하고 볼일 보고 바쁘게 움직였던 날들. 그렇게 ‘다 해두면’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더 잘 웃어줄 수 있을 줄 알았던 날들.
근데 막상 너희 오면… 엄마가 방전이었어. 같이 놀 힘이 없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좋은 엄마’가 되는 상상을 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나는 아직 엄마가 아니다.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자꾸 먼저 걱정하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닿기 전에 내 힘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정작 아이가 말을 걸어오는 순간, 나는 “잠깐만”을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 뒤로 나는 “엄마의 방전”이라는 말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방전은 게으름이 아니라,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조용한 빈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일을 끝내놓으려 했고, 그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마음이 너무 앞서가서, 정작 우리가 돌아왔을 때 엄마 자신이 남아 있지 못했던 거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은 늘 눈앞에서 반짝이고, 매일 바쁜 일들에 허덕이곤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열심히, 바쁘게 보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얼마 전에 김소영의 에세이 『어떤 어른』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작가는 수업 30분 전부터 전화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일부러 삼가고, 명상 비슷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수업시간을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을 미리 비축하기 위해서라고. 그러지 않으면 어린이들이 몰고 오는 압도적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엄마가 말한 “방전”이 책 속 문장과 맞닿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만나는 건 사랑의 문제이기 전에, 에너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머물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좋은 엄마’는 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 아이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을 하고 며칠 뒤, 남편이 당직인 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내 마음이 아주 조금 늦춰졌다. 천천히. 나도 모르게 앞질러 달리던 속도가 내려갔다.
그때 옆자리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별생각 없이 듣다가, 어느 순간 귀가 그쪽으로 쏠렸다. 아이는 친구 이야기로 시작해 마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구랑 놀고 싶은데 잘 안 되는 마음, 좋아하고 싶지만 상처받기 싫은 마음, 혼자 남겨질까 봐 불안한 마음.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는데, 그 안의 감정은 낯설 만큼 복잡하고 다차원적이었다.
아이의 세계는 단순할 거라고, 나는 마음 한편에서 쉽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주 진지하게 자기 마음을 설명했고, 엄마는 그 말을 중간에 끊지 않았다. “그랬구나.” “그래서 속상했겠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보고 싶어?” 같은 질문을 천천히 건넸다. 정답을 주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만져볼 시간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데, 엄마의 후회가 다시 떠올랐다. ‘할 일을 다 해놓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말을 들어줄 힘이 남아 있는 엄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간식의 종류나 집의 정돈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받아주는 사람의 눈빛과 숨의 속도일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래서 지금 이 고민들은 조금 앞서가는 걱정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임신을 준비한다는 건 단지 몸의 준비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 같아서. 내 하루의 리듬을, 내 에너지의 흐름을, 내가 무너지는 지점을 미리 알아두는 일 같아서.
나는 아이 앞에서 “잠깐만”을 덜 말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잠깐’이 대개는 짧지 않다는 걸 아니까.
그 ‘잠깐’이 쌓이면 아이는 결국 말을 줄인다는 것도 아니까.
그래서 요즘은 가끔 상상해본다. ‘아이에게 닿기 전 30분’을. 거창하게 마음을 비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에게 돌아올 시간을 조금 확보하는 일. 휴대폰을 멀리 두고, 할 일을 덜어내고, 오늘 내 에너지의 잔량을 확인하는 일.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에 맞춰 내가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순간을 맞이할 힘이 남아 있는 사람이 되는 일.
“너희 오면… 엄마가 방전이었어.”
그 말을 나는 자꾸 곱씹게 된다. 후회라는 건 늘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함께 있을 힘이 남지 않았던 어떤 오후에 남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집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정리되어 있기를. 아이가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잠깐만”을 습관처럼 꺼내지 않기를.
그날의 나는, 가능하면 조금 덜 방전되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