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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플 Aug 02. 2023

강릉에서 만난 사람 (2)_사랑스런 그녀와 사랑에 대해


오트톡톡 사장님


오트톡톡에서 이야기 나눈 사장님의 예쁘고 단단하고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가 여운이 남는다. 

강릉역에서 짐을 찾아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가는데 동선상 내가 가고 싶었던 오트톡톡 요거트가게를 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에 내려 서둘러 요거트가게로 향했다. "저희 6시가 마감인데 포장 괜찮으신가요?" 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리자 "원래 드시고 가려고 하셨어요?"라고 여쭤보셨다.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초당옥수수가 들어간 비건그릭요거트를 주문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시고 내가 혼자 남았고 사장님은 내 요거트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가게가 너무 예뻐요!"라는 내 말에 내가 강릉에 여행을 왔고, 그릭요거트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비건그릭요거트를 만들었는데 잘 만들어지지 않았고 등등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내가 충동적으로 강릉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면서 급하게 구한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의 연락이 닿지 않아 요거트를 포장해서 당장 갈 곳이나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저 6시 40분 정도까지 마감정리를 하는데 괜찮으시면 매장에서 드시고 가셔도 돼요!"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나는 "정말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마침 사장님은 테이크아웃 용기의 경우 포장비용을 추가로 받으시는데 마감시간에 와서 어쩔 수 없이 포장을 하는 터라 포장비용도 받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이렇게 나는 가게 문을 닫고 가게에 남아서 요거트를 먹으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곧 내가 주문한 요거트가 나왔는데 역시나 맛도 비주얼도 훌륭했다. 색감을 위해 로즈마리도 올려주셨는데 내가 시만차에서 먹은 초당옥수수 빙수에도 자스민잎을 올려주시더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산울림도자기공방 등 강릉에서 좋아하는 공간과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카페일을 하시다가 강릉으로 돌아오셔서 요거트가게를 차리셨다고 하셨다. 사람이 꽤 많이 찾아오는 가게이고 마케팅도 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 나도 강릉에 오기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가게였다.  아르바이트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 1분쯤은 있을 것 같았는데 오롯이 혼자서 가게 운영을 하고 계셨다. 인테리어나 브랜드 로고를 만들어주신 디자이너분도 열심히 직접 찾았고 가게의 가구 등도 하나하나 발품을 찾아 가게를 만드셨다고 하셨다. 내가 비건요거트 실패경험을 이야기하자 일반 요거트와 비건요거트의 종균도 따로 쓰는데 종균도 직접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레시피를 만드셨다고 알려주셨다. 메뉴 하나하나, 가게의 소품 하나하나에 그녀의 고민이 담겨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 가게의 구석구석이 소중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결혼으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내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대화의 소재가 되어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받은 프로포즈 이야기로 시작된 주제였다. 내가 "남자친구가 넌지시 물어봤을 때도 나는 프로포즈반지나 목걸이도 필요 없으니까 쓸데없는 곳에 돈 쓰지 말라고 했는데 이걸 선물해 주더라고요."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그래도 좋죠?"라고 했다. 나는 행복한 미소로 끄덕끄덕했다. 사장님은 결혼생활 5년 차인데 너무 오랜 만난 사이어서 프러포즈 같은 것도 없이 스르륵 결혼을 했고, 지금은 동지애로 살아간다고 하셨다. 남편은 같이 요식업에서 일하는 일식요리사라고 하셨는데 내가 그러면 서로 레시피를 새로 만들고 할 때 피드백도 받고 너무 좋겠다고 하자 남편은 견과류와 요거트를 안 먹는다고 하셨다. "헛, 저 셰프 남편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라고 말하자 서로 집에서는 요리실력을 쓰지 않는다고 하신다.


표현을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녀의 표정과 말에서 단단한 그녀와 그녀가 가꿔가는 건강한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본인 둘 다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게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주말에 쉬고 그녀는 평일에 쉬어서 서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도 서로 각자를 잘 챙기는 사람이라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떠냐고 묻는 그녀의 물음에 나의 경우 남자친구보다 내가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에서 객관적, 절대적으로 일이 바쁜 것은 남자친구이지만 나는 혼자서도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바쁘고 잘 지내는 탓에 항상 배려하고 나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주는 쪽은 남자친구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 관계에서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사람은 나인 것도 알고 있다. 남자친구는 이미 나에게 충분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오래 만났는데도 결혼하며 같이 살면서 다른 부분을 많이 보게 됐다고 했다. 나는 남자친구와 성격이 비슷한 것 같다고 나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저와 가치관은 같으면서 성격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야 서로 보완이 되는 좋은 관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나는 남자친구가 나와 비슷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결혼을 결심하는데 고민이 많기도 했었다. 걱정과 생각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한 나는 생각보다는 행동력이 강하고, 내가 고민을 할 때면 그 고민을 '후우'하고 불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는 의사결정 과정이 나 만큼이나 복잡하고 꼼꼼한 면이 있다. "근데 요즘은 남자친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의사결정을 위임할 수 있어서 많이 의지가 돼요. 내가 100의 의사결정과 고민으로 버거워했다면 이제 남자친구랑 50:50으로 나눠서 서로의 짐을 나눠질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참 좋은 표현이라고 답해주었다. 


나게를 나오면서 가게안을 한번 더 둘러보았다. 한국적인 거울이 너무 예쁘다는 말을 하며 가까있는 오뉴월 카페에서도 인더스트리얼 한 인테리어와 한국적인 병풍의 조화가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내가 곳곳을 섬세한 눈으로 잘 관찰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내게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내가 나만의 공간을 예쁘게 꾸밀 센스가 있는 사람 같다고 해주셨다. 


아직도 기분 좋은 그녀의 웃음소리와 환한 얼굴이 생생하다. 맛있고 예쁜 요거트, 따뜻하고 곳곳에 손길이 느껴지는 가게 인테리어, 그리고 톡톡 튀는 대화로 오트톡톡에서의 기억은 강릉에서의 시간을 두배 세배 기분좋게 해주었다. 자기의 공간에 들어온 낯선 사람에게 선뜻 자기의 이야기를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게 커튼을 내리고 나를 둘만의 공간에 머물게 해 준 마음이 참 고맙다. 오래오래 그녀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기억할 것 같다. 예쁘고 여성스럽지만 어딘가 단단하고 강하고 씩씩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참 사랑스러웠다. 나도 내게 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있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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