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판타지

백석, 판타지

by 조분홍

백석


내가 백석을 알게 된 것은, 그러니까 백석이 우리나라의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시를 읽고서였다.


갑자기 나타샤라니. 그런데 왜 당나귀랑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다가 누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쓴 것을 보았다. 그 친구의 캘리그래피보다는 흰바람벽이라는 단어만이 계속 생각이 났고 (바람벽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 결국 도서관에 가서 백석의 시집을 이것저것 빌려왔다.

뜻을 알기 힘든 단어들은 옆에 조그맣게 설명이 있어서 그걸 봐가며 읽었다.


도서관에는 백석 관련 책이 많았고, 그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처음 백석을 알게 해 준 나이 어린 친구에게 넌 백석을 어떻게 알게 됐어?라고 물었더니

교과서에도 나왔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교과서? 교과서라고?..

알고 보니 백석은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1987년 해금 조치 후에야 바깥으로 나왔고 그로부터도 한참 후에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문학에까지 적용된 어이없는 이념전쟁 때문에 이 아름다운 시들을 영영 모를 뻔했다니 왠지 억울했다.






그때쯤 소와 다리 출판사에서 초판본 시집들이 나왔다. 그중에 백석의 <사슴>이 있었고, 사은품으로 잉크에 찍어 쓰는 펜도 있었다.

한참 알라딘에서 굿즈를 사고 사은품으로 책을 받던 시기였기도 했고,

1900년대 초중반에 출판된 책의 모습을 갖고 싶기도 해서 바로 주문을 했다.

물론 그 책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모습을 가질 수 있다니..좋았다. 난 오래된 물건이 참 좋다.

잠깐 소와 다리 출판사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ㅎㅎ


한정판 100부라고 광고하던 책은 인쇄 작업이 오래 걸려서인지 꽤나 오래 있다가 도착을 했는데...파본이라면서 다시 보내주겠다는 문자가 왔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책은 맨 오른쪽 장부터 세로로 읽게 되는 식이었고 한자가 가득했다.


파본이 났다는 페이지를 찾았지만, 페이지가 뒤바뀌어 있어도 잘 알지는 못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책이 오면 봐야지 하고 고이 덮어 두었는데,


그 사이 나는 한 달간 여행을 가게 됐고, 여행을 다녀와서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택배를 찾으러 갔다.

여행 도중에도 집에 도착해서 책을 읽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아마도 핸드폰이 고장 나서였기 때문이었겠지;

파본 난 책이라도 가져올걸 몇 번 후회를 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받은 시집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책을 가져갔으면 엄청 답답해하다 돌아왔겠군. 이라고

우선 초판본을 그대로 옮겨놓은 책이라 한자 옆에 따로 한글을 적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평안도 방언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가득했다.

어떤 시들은 제목이 그냥 한자였다


그런데 시집을 다 읽고 나서 너무 놀랐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감동적이어서..


왜 이해를 못했는데 시가 좋은 거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읽어본 단어들이 많았는데,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들과 비슷하지만 약간만 더 달랐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시간으로 와서 우리가 쓰는 말들을 보고 들은 다음 좀 더 아름다운 말로 바꾸어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시의 내용이고 뭐고 앞뒤를 잘라서 그 문장만 보아도 갖고 싶은 표현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인이... 너무... 잘생겼다

옛날 사람인데 이렇게나 잘생기다니...




백석의 시들은 어떤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그 장면들을 마치 판타지 같다.


아름답고 왠지 서글픈..분명히 있었지만 없었던 것 같은

이제 거의 백 년이 되어가는 그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 동물들, 풀들,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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