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의 돌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만났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야외 루프탑에서 카페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잔잔한 로파이 음악과 분위기 있는 조명이 조금 깊은 이야기를 하기 좋았던 것 같다.
"네가 잘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
라는 질문을 던진 건 나 또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학창 시절엔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잘하는 건 뭐지? 난 뭘 해야 할까? 경험이 없으니 답이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곤 고민해 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냥 할 수 있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휴학 기간 중 무작정 뛰어든 첫 회사에서 배운 사회생활, 대학 축제준비위원회에서 맡았던 포스터 디자인 그리고 티셔츠 도안 만들기. 잘 하진 못하지만 좋아서하게 된 경험이었다.
"잘 모르겠어."
첫 직장 발령을 대기 중인 친구가 말했다.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경력이 쌓이면 경험과 작업물들이 내가 잘하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일을 하며 듣는 칭찬에는 자신감을, 지적에는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을 얻었다. 하지만 첫 직장을 앞둔 친구는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잘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장점과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점은 자소서(라고 쓰고 자소설이라 읽는다)에서 '친화력, 성실함' 등 성격적인 부분이 드러나도록 쓴다. 잘하는 것은 '행동, 결과물'과 관련이 있다. '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니?'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디자인 툴 다루기를 잘하는 디자이너가 만족스러운 작업물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잘하고 싶은 것. 올해 답을 정하고 싶었던 두 가지였다. 올해가 다 끝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 답을 정하지 못했다. 내 앞에는 여러 보기가 있고, 하나를 선택 하는 건 너무 어렵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답을 낼 수 없었던 때가 조금 그립다. 그저 좋아하는 것만 쫓아도 되었으니까. 딱히 잘하는 게 없어도 괜찮아, 아직 모르니까 괜찮다고 위안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