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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15. 2024

보고 싶었어.


순간 마음이 조급해진 이유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일몰시간을 검색했기 때문이었다. 7시 26분. 무거운 짐만 내리고 부지런히 걸어가면 송정해변에 얼추 늦지 않게 도착할 터였다. 옷가지를 잔뜩 넣은 배낭을 내려놓고 작은 가방을 챙겼다. 얼마 전 마음먹고 장만한 바람막이도 동그랗게 모아 넣었다. 회색 운동화를 현관에서 구겨신듯 나왔지만 결국 내려가는 계단에 멈춰 서서 불편한 뒤축과 실랑이를 벌인다. 처음부터 제대로 신어볼걸 그랬다는 후회를 가라앉히고 지도에서 경로를 찾는다. 뾰족한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꽤 멀어 보였다. 늦을 수도 있지만 나는 푸른 바다가 보고 싶었다. 빛바랜 고속도로에서 강릉으로 향하던 내내 사그라드는 푸른빛이 보고 싶었다. 서쪽의 바다를 가진 강릉에서 일몰을 좋아하는 게 소수의 취향은 아닐 것이다. 해변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주변의 행인들이 시야에 여럿 들어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다리던 횡단보도 너머 펼쳐진 소나무 숲 사이로, 오늘의 마지막 햇빛이 사라지려 했다. 아마 그들과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비슷하게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모래사장을 밟았을 것이다. 


Photo by soyoung


잔모래였다. 폭 꺼지는 한쪽 발을 들어 옮길 때 조금씩 미끄러지는 다른 발을 교차해서 걸었다. 노력이 꽤 필요한 과정이었다. 모래사장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하얀 조개무덤을 지나 해변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자리 잡았다.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리니 익숙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사선으로 사그라드는 빛을 조명으로 두터운 푸른 이불이 서서히 드리우는 모습을 봤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새롭게 물드는 수평선 너머 한 번, 웅크리는 파도 한 번 그리고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한 번. 카메라를 들어 몇 장 찍었지만 담기지 않음을 깨달으며 다시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십분 새 쌀쌀한 어둠 사이로 가로등이 켜지고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지점이 모호해질 즈음, 시야가 흐려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이윽고 어색한 기분은 선명해졌다.


Photo by soyoung


'보고싶었어.' 힘들 때면 그리워할 장면을 기억 저편에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저장했다. 그리고 짧게 소원을 빌었다. 오월의 강릉. 이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을 날들이 더 많기를. 보고 싶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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