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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un 11. 2020

고기의 밤

요리 초보들의 밤, 이 날을 기억해줘

남편이 자주 가는 유기농 한우 가게에서 고기를 대량 주문했다. 그중 갈비찜 용 고기와 다짐육이 있었다. "난 아침엔 빵 말고 에 반찬을 그득하게 먹는 게 정말 좋더라!" 라고 6살 답지 않은 말을 하는 아이 덕에,  벌이인 리는 일요일 마다 아이가 주중에 먹을 반찬들을 만들곤 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이의 고기 반찬을 만들기 위해 일요일 밤 10시에 주방에 섰다.


먼저 남편이 갈비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뿐 아니라 남편도 갈비찜은 처음이었는데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나름 재미있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잡내 제거와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끓는 물에 한번 데치는 수고를 거치고 고기 한 점 한 점에 칼집을 내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참 대단한 부정이다.  우리  압력밥솥이 없지만 전기밥솥의 만능찜 기능을 사용하면 된다며 양념을 한껏 입은 갈비를 밥솥에 넣는 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아, 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 건가? 얼핏 보기에 고기가 밥솥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듯했지만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나도 떡갈비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가서 핏물을 빼고 있었는데... 그때쯤 남편의 기대를 안고 달리던 전기밥솥이 증기를 뿜어냈다. 시간은 밤 11시 30분.


치치 치치 칙 -


그런데 나오는 건 증기만이 아니었으니. 순간 증기가 왜 갈색이지? 밥은 흰색이라 흰 증기이고 고기는 갈색이라 갈색 증기인가? 잠시 머리가 흐릿해졌다. 아니야! 그럴 리가! 증기와 함께 갈색의 양념 국물이 같이 솟아오른 것이다. 역시나, 우리의 밥솥이 1kg의 갈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던 걸까? 결혼할 때 큰 밥솥을 샀어야 했을까? 어쩜 저렇게 색이 진하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찰나를 파고드는 순간에도 양념들이 그 위에 있는 수납장을 항해 사정없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생애 첫 갈비찜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남편은 머리를 부여잡고 “안돼! 내 갈비찜!!!” 나는 갑자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깔.” 사실 내가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는 사건 3일 뒤인 수요일부터 부엌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뜯어낼 것이 아니었으면 아마 같이 붙잡고 울었을 것이다. 약 2분 뒤 공포의 증기 배출시간은 끝났지만 계속 진행하다가는 밥솥이 양념뿐만 아니라 고기까지 사방에 터뜨려버릴 것 같았다. 남편은 슬픈 눈으로 취사 취소 버튼을 눌렀다. 우리 밥솥은 다시 증기를 배출하며 콸콸콸 양념을 뱉어냈다. 이전 것이 분수라면 이번은 폭포수 같았다. 주방이 갈비 양념 천국이 되었다.


시간은 이미 12시, 망한 것이 자명해 보이는 갈비찜을 가지고 고뇌하는 남편만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떡갈비 만들기를 재개했다.  떡갈비는 우리 아이가 2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주 300g씩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놓 반찬이다. 아이의 매 끼니를 차려줄 수는 없는 상황에서 매일  정량의 고기반찬을 챙기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아이도 엄마가 만든 떡갈비를 무척 좋아한 덕분에 지금까지 만든 떡갈비가 수 천 개는 족히 된다. 하지만, 5분 뒤, 나는 다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너까지 왜 이러니….” 남편이 다짐육을 1kg나 주문한 데다 갈비찜 구경하느라 떡갈비에 들어갈 야채를 대강 잘라 크기가 크고 물기도 많아 무 질퍽하다. 10분 넘게 팔이 마비될 정도로 치대도 도무지 뭉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의 떡갈비.  야채와 수분을 가득 머금은 다짐육은 본래의 무게 그 이상의 덩어리를 뽐냈다.  냉동실의 밀가루를 털어 넣다.


그 시각 남편은 부엌을 모두 정리한 뒤 밥솥에서 갈비찜 반을 덜어내고 나머지 반으로 다시 만능찜 모드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엔 다행히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30분 뒤 꺼내보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것. 슬퍼하며 양념을 더 넣고 물도 넣고 냄비에서 다시 끓다. 우리는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처럼 한밤중 나란히 부엌에 서서 갈비찜을 익히고 떡갈비를 치다.


"아, 정말 너무 웃겨. 그 날 생각나잖아."  


말로 하지 않아도 어느 하루가 명확히 떠올랐다. 지난여름 아이와 함께 서해에서 조개를 대량 캐온 뒤 둘이서 새벽 2시까지 조개 뻘을 씻어내고 아이에게 줄 조개 미역국을 만들기 위해 육수를 뽑아냈던 날. 미역국은 그냥 사 먹이는 것이 나았으려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수없이 던졌던 그 날과 너무도 똑같은 오늘이었다. 우리 참 어설프고 다양하게 열심히 일을 벌이는구나. 마주 보고 또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밤공기 둥둥 울리는 웃음 소리에 왠지 기분이 아늑해진다.


새벽 1시, 밀가루 덕분에 우리 아이 한 입 크기의 예쁘고 찰진 떡갈비 100여 개를 생산해낸 나는 바로 소파로 쓰러지고, 남편은 내가 침대로 간 뒤에도 한참 고생하다 맛없는 갈비찜을 겨우 살려내  완성시킨 뒤 말 그대로 난리통이었던 부엌을 정리한 뒤 3시쯤 기절했다. 그렇게 간밤의 고난을 담은 갈비찜과 떡갈비는 다음 날 아침과 저녁, 그리고 어제저녁, 우리 아이의 식판에 나란히 놓였다. 갈비찜은 친정 엄마가, "아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찬사를 뽑아낼 정도의 성공작이었다. 나의 떡갈비는 뭐, 늘 그렇듯 맛있었고 말이다. 우리 아이는 간밤의 소란을 모두 잊을 만큼 잘 먹어주었다.


아마 또 언젠가 둘이 한밤중 부엌에서 무언가와 씨름하고 있을 테지. 그럼 이 날의 갈비찜과 떡갈비가, 그리고 지난여름의 조개 미역국이 또다시 생각나겠지. 먼 훗날 아이가 유년시절을 되돌아보았을 때 식판 위 작은 반찬들 하나하나에 엄마 아빠의 사랑이  담겨있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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