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책상다리

[서사의 분말상자] 2017.12.2.

by 림팔라

얼마 전에 집에 무드등을 하나 들였다. 보시다시피 달모양인데, 12cm짜리는 너무 작을 것 같아서, 큰 사이즈를 샀더니 이게 생각보다 너무 크더라.
이 볼링공을 어디다 놓을 곳이 없어서, 집에 쓰던 식탁을 펴서 위에 올려놨더니, 딱 맞았다. 식탁을 침대 옆에 붙이고 그 위에 자주 쓰는 물건들 올려두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밥은 먹어야하니까, 똑같은 사이즈의 싸구려 책상 하나를 또 사게 되었다.

식탁 위에 올라가는 것들은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무드등과 핸드폰 충전기, 블루투스 스피커와 미니 빔프로젝터의 리모콘이 올라가 있었고, 여권과 손톱깎이같은 잡동사니가 또 올라가고, 다음 날에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지갑, 열쇠, 핸드폰 보조배터리, 안경이 올라가고, 며칠 뒤에는 자주 가는 커피집에서 챙겨준 쿠키나 하리보 젤리, 춘천닭갈비에서 얻은 두 알이 한 봉지에 들어있는 행운의 파인애플향 사탕같은 것이 올라가고, 더 지나서는 마냥 충동적으로 사놓고 하나 읽지 않는 수많은 책들 중 더이상 책을 꽂을 곳이 없어 바닥에 널브러진 열 몇권의 책들이 올라가고, DSLR을 하나 사고 나니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까지 좁은 책상 위 자그마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자리가 필요해서 이 책상을 잠시 치워놨다가, 다시 가져오던 중, 그러니까 한 시간 전 쯤, 책상다리 한쪽이 박살났다. 앞서 기술한 모든 것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보니까 접이식 다리 한쪽이 과도한 압력으로 인해 접혀야 할 반댓방향으로 접혀있었다. 책상과의 접합부의 나사는 8개중 4개가 빠졌고, 접합부의 플라스틱도 거의 찢어졌다. 다행히 집에 십자드라이버가 있어서, 반쯤 나사 뽑힌 다리를 아예 뽑아버리고, 위치만 조금 옆으로 이동해서 다시 나사로 고정했더니 얼추 다시 세워지기는 했다. 물론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금 책상 위의 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 남은 귤껍질이나 마가렛트같은 게 더 올라가 있다. 위기를 통해 한 톨도 성장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모순적인건, 다리가 부러졌던 책상에 그대로 짐을 올려두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체력과 마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금의 내 몸 위에 끊임없이 과제와 책임과 의무감을 얹어놓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온 요즈음의 날들이다. 이대로 가다간 무언가가 부러질지도 몰라. 실제로 놓지 않고 붙잡으려 했던 그 많은 과목들은 하나 하나 알아서 내 손을 도망나가는 중이다. 대책없이 선택했던 지난 날의 결정들은 뜻밖의 상황에 항상 내 발목을 매만지지만, 그래도 그걸 버리는 순간 그 시절의 소중한 무언가도 함께 던져버리는 것 같아서, 아마 끝끝내 어느 것도 놓지 못할 것이다. 아니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얹어진 무게가 부수어버린 책상은 기껏해야 만오천원이지만, 나는 분명히 그것보다는 비쌀 것이다. 한 번 부서져버린 다리는, 아무리 멀쩡해보이게 돌아와도, 가끔 비가 오는 날이나 걸을 일이 많은 날에는, 부서지기 전과는 약간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만 오천원짜리 책상은, 잃어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만, 귀중한 소가 도망갔을 때는 고치지 않아서는 안되는 법이다.


이상의 이유가 내가 지금 마주한 내일 모레까지 완성해야 할 네 가지 과제를 내팽겨둔 채, 전기장판에 배를 깔고 귤이나 까먹고 앉아있는 지금의 행동에 대한 변명입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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