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헤미안에서 만원에 파격할인하는 열공세트(10000원)을 샀다. 구성품은 더치 원액+ 킷캣초콜릿+비타민+하리보젤리+솔티드초콜릿+마카롱. 방금 전 바로 앞 멘부리에서 배터지게 밥을 먹고 온 우리는, 이 마카롱을 지금 먹을까 나중에 먹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언가 익숙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이다.
마시멜로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
아마 책을 읽지는 않았어도 이 이야기를 대부분 들어는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시멜로를 주고, 안 먹고 참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안 먹고 참은 아이들이 나중에 보니 대학교도 잘가고 돈도 많이 벌고 그랬더라는 내용.
정말 눈 앞의 욕망을 잘 참아내고 미래의 꿈을 위해 현실을 감내하면 달콤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랜만에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아이가 당장 마시멜로를 집어먹으면서 얻게 되는 것은, 그저 순간의 욕망을 견디지 못한 결과 얻게 된 허망한 달콤함 한 조각일 뿐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내가 먹고 싶은 이 순간에 스스로 욕망하는 것을 내 손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기쁨. 내 인생을 나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온전한 선택 가능성이 충족되는 경험을 동시에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쾌락의 경험은, 미래의 불투명한 보상을 위한 인고에 비해 실제적으로는 가치가 적은 것일까.
2013년 로체스터 대학교의 홀리 팔메리와 리처드 애슬린은 1월 <Cognition>에 “Rational Snacking”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앞서 이야기 한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마시멜로를 먹을 지 참을 지 아이들로 하여금 결정짓게 하는 요소는, 개인이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는 것.
이 논문에서는, 마시멜로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그 호화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마시멜로를 선택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잠시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만 기다리면 마시멜로 두 개를 줄게!'라며 그들을 꼬시는 실험 진행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아이들의 가정 환경에 따라,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은 실험 진행자의 말을 쉽사리 믿고, 반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 대신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며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일 뿐이다. 집에 마시멜로가 쌓인 아이들은, 실험 진행자가 거짓말쟁이여도 '어이쿠, 속았네!' 하며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상대방의 진의를 의심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행위해야만 실존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시멜로가 있을 때 당장 먹지 않으면, 오늘은 굶어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는 개인의 욕망에 대한 인내력이 원인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피험자의 가정 환경에 따른 피상적 결과이며, 나중에 그 아이들이 좋은 대학교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 또한, 개인의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부유한 가정의 자연스러운 상속 현상일 뿐이다.
지금 힘들어도 눈 앞의 욕망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의 커다란 희망을 바라보며 인고하면, 나중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돌아올 것이라는 속삭임은 허상이다. 그것은 니체에 따르면 노예도덕이요, 러셀에 따르면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따라서, 눈 앞의 욕망에 호응하는 것은 유의미하며, 그러한 연유로 지금은 수업을 째고 보헤미안 카페에 앉아 여유를 한껏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