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는 서로 다른 질량을 끌어안는다

[서사의 분말상자] 2018.1.9

by 림팔라
자취방 앞 전봇대

그 어느 전봇대도 다른 전봇대와 정확히 같은 질량의 전선을 지탱하고 있지 않다.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전선들을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전봇대의 본분 이외의 영역에서 버텨내야 할 일들도 서로 다르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는 전봇대에는 수많은 전단지들이 들러붙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전봇대는 어느 새벽에 술 취한 주정뱅이의 소변세례를 받아내게 될 것이다.









각자의 제각기 다른 중력 속에서, 50m 근방의 다른 전봇대를 쳐다보며 자신의 짐짝을 한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찌되었건 하나의 전봇대가 전기를 온전히 송신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질량을 버텨내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옆 전봇대가 상대적으로 감당하는 질량이 적어보인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작은 현실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전봇대마저 없다면, 이제는 그와 함께 분산되어 겪어왔던 고통을 온전히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 쪽이 차라리 중요하다. 사회에서 기능한다는 것은 애당초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질량을 버텨낸다는 의미이며, 부숴지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 주어진 상황을 외면할 겨를 따위는 없다. 전봇대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연희동 어느 골목의 전봇대.

오사카 또는 교토의 전봇대. 어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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