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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하늘과 리비도의 누수

[서사의 분말상자] 2018.3.16.

by 림팔라


어제는 그렇게나 덥더니, 그새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애써 밝은 척 하더니, 결국엔 머금고 있던 물방울을 감출 수 없었다는 듯이.
우중충한 공기에 질 수 없을 만큼 오늘의 내 아침도 눅눅했다.
잘 때 까먹고 충전시키지 않았는지, 애써 버티다 결국 동이 트기 전에 꺼져버렸을 핸드폰은 내게 아침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개강한 지 이 주 만에 수업을 빼먹었다.

무기력한 정오를 보내다 겨우 일어나서 대충 라면을 끓여먹고,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게 도착한 다음 수업에서는, 은유와 환유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신수사학의 문학 비평의 가능성인가 무언가 하는 것이 열심히 설명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깨닫기는 어려웠다. 교수님은 약간 옆길로 샌 이야기로, 프로이트가 일컫는 '증상'을 이야기하며 그 예시로 '우울증'을 드셨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울증'이란 곧 '리비도(욕망)의 누수'라고 한다. 욕망이 새어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열렬하게 바랐던 것들(꿈이나, 사랑이나, 즐거운 시간, 뭐 그런 것들)이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새어나가 더 이상 마음 속에서 타오르지 않을 때. 그런 상황이 '우울증'이라는 증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요즘은 어떤 것도 어색하지가 않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수업, 온전히 홀로 경험하는 새로운 이중전공의 삶, 기타 등등의 여러 순간들을 흘러다니고 있음에도, 무엇을 듣는 것도, 누구를 만나는 것도, 어떤 것을 말하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몇 년 즈음 전에는, 흘러다니는 어색한 공기가 두려워서 그것을 집어삼키려 부단한 시도를 했던 듯도 싶다. 그 때에는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색함이란, 곧 어설픔이니까.

어색함을 그래도 어느 정도 내비치지 않는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약간은 서글프다. 어떤 사람을 받아들일 때 어색하다는 것은, 사실은 오히려 온전히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 할 때에만 나타나는 증상이다.
눈 앞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도 가지지 않으려 하기에, 우리는 구조화된 알고리즘을 내밀지 못하고, 상대방 고유의 기류를 따라가보려다 이따금 헛발질을 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 때에는 서로를 비추는 뜨거운 햇살을 교환하는 중에 때때로 나타나는 차가운 침묵이 너무나도 무거웠지만, 타오르는 태양 앞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추적추적한 빗방울 옆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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