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의 어른이
[서사의 분말상자] 2018.11.13.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손가락으로 세어질 만큼이 된다. 오히려 이 쯤 되니 한가한 감이 없지 않다. 컨디션 조절이라는 명목 하에 마음은 조급할지언정 육체는 내버려두고 있어서다. 매슬로우도 열심히 배웠겠다,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최우선을 두고 있는데, 사실 생각보다 어렵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특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다. 대체 왜 모든 시험은 오전에 보는걸까? 살면서 치렀던 시험들을 모조리 되짚어보아도, 하루에 너댓번씩 시험이 열리는 컴활 2급 정도를 제외하곤 저녁에 시험을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가끔 대학교 78교시 과목 정도?
새 나라의 어린이를 수확하기 위해서일까? 나는 꼬맹이 때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 이야기에 코웃음을 쳤다. 잠들지 않고 오래 깨어있다는 것은, 남들보다 세상을 더 많이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꽤 즐겁고 멋진 일이었다. 투니버스에서는 늦은 밤에만 '정글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같은 기가 막힌 만화를 틀어줬고, 한밤중에 이불을 끌어모아 그 속에 장난감들을 넣어두면 나만의 비밀요새가 뚝딱하고 생기던 시절이었으니.
사실 이해는 된다. 모든 직장업무가 아침에 시작하기 때문이겠지. 시험시간도 누군가에겐 업무시간이며, 대놓고 꼰대처럼 말하자면 시험시간 자체도 하나의 테스트인 것일테다. 어찌 시험시간 맞추는 것도 고되게 느끼는 사람이 지각도 안하고 회사를 꼬박꼬박 나오겠나? 뭐 맞는 말이다. 불면은 짜증나는 질병이며, 일찍 일어나는 건 별로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일찍 자야 다음 날이 개운한 듯 하긴 하다. 그리고 그러한 바이오-리듬의 위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당연히 몸이 늙었다는 증거다. 밤이나 술이나, 분명히 즐거움을 가져다 주던 것들이 점점 피로함으로 먼저 접촉한다.
그래도 밤은 위대하다. 최소한 핸드폰을 멀리 두는 밤은. 아주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그 중 어떤 것은 미더덕 속에 들어있는 뜨거운 물의 위생 상태같은 난데없는 것이기도, 또 다른 어떤 것은 나중에 늙어서 서점을 차려볼까 하는 절반쯤만 현실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많은 따로 노는 사유들이 제 멋대로 합쳐지기도 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뒤집어 꼰대처럼 말하자면, 고민과 잡념에 밤잠을 설쳐보지 않은 자가 어찌 무슨 인생을 알겠는가?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놈들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잡념의 시기를 거쳐 이제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거나, 스스로 밤잠을 설칠만큼 위대한 고민을 할 기회조차 없었거나. 왜 모두가 늦잠자는 것을 좋아하면서, 속마음을 숨기는 걸까? 우리에게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어야한다고 그렇게 외치던 옛 나라의 어른들도, 사실은 자기가 새 나라에서 퍼질러 자고 싶어서 아침의 의무를 떠넘긴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은 일찍 잠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