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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팔라 Dec 22. 2019

멸망하지 않는 세계와 끝내 잠들지 못한 새벽 다섯시 반

그리고 조금씩 괴짜메타몽이 되어가야 하는 우리들

여백이 모자랐던 마야인의 달력을 빌미로, 아직도 몇 개의 실없는 매체에서는 12월 21일만 되면 철지난 '지구종말론'을 슬며시 들이민다. 그러나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세계와는 별개의 일이다. 나의 세계는 오늘 아침에 숙취와 함께 잠시 멸망했다가 되살아났고, 그 기적적인 부활에는 필연적으로 과수면이 뒤따랐다. 즉, 술먹고 너무 많이 잤으며 그로 인해 오늘의 수면패턴은 망가졌다. 나의 12월 22일에는 아직 단 한숨의 수면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고대 마야문명의 사람들이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한창 새내기이던 시절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지금이 더 숙취가 심할 것 같음에도, 사실 오히려 반대다. 한동안 술을 안먹었던 기간이 있어서 그런건지, 술자리가 거의 11시간 가까이 되는 대장정이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숙취가 길고 가늘게 나타나는 느낌이 든다. 여러 반가운 얼굴을 많이 보았다. 특히 우연히 길거리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잔뜩 만나서 아주 놀라웠다. 다들 어디엔가 소속되어 간다. 얘는 얼마 전에 어떤 회사에 들어가고, 또 얘는 세상에나 걔랑 결혼하는구나 우와 정말. 다들 조금씩 각자의 생활과 그 정체성이 만들어져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2차 전직을 결정하고 장비를 하나씩 맞추어가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게임하니 또, 요 두 주간의 주말은 포켓몬스터 신작에 빠져있었다. (소드·실드인데 실드가 몇천원 더 싸길래 실드로 샀다. 전설의 포켓몬은 소드가 더 멋지던데.) 챔피언되고 전설의 포켓몬 잡는 스토리야 지난주에 끝냈고, 이번주는 도감을 채우고 강한 포켓몬을 잡고 뭐 그러고 놀았다. 따라큐, 로토무, 잠만보, 님피아, 킬가르도, 빙큐보 등등, 이름만 말해봐야 사실 대부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론 아직 뭐 전략을 짜거나 개체능력치를 보거나 그런게 아니라서 그냥 하나하나 좀 이야깃거리가 있는 포켓몬들을 모으고 있다. 그 중 지금 생각나는 건 메타몽이다. 그래도 다들 TV에서 보던 시절에 나온 포켓몬이라 많이들 알 것 같다. 상대 포켓몬의 모습을 복사해서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서 싸운다. (사실 싸움보다는 교배를 위해 많이 쓰인다. 포켓몬을 두 마리 잡을 수고를 반으로 줄여주기에.)


괴짜메타몽.

그런데 메타몽이 다 같은 메타몽이 아니다. 메타몽 자체가 기본적으로 잡기 쉬운 포켓몬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버전에서는 어디 호숫가에 종종 보여서 잡는 것 자체는 할 만하다. 그러나 전투에 쓰이는 강한 메타몽은 보통 레어포켓몬이 나오는 굴에서 잡아야 한다. 개체치가 높다나. 사실 제대로 파고들면 신경쓸 게 한 두개가 아니다. 6가지의 능력치를 따지고, 포켓몬이 가지고 있는 성격(끈질김, 온순함 뭐 그런거)도 중요하다고 하고, 또 특히 잠재된 특성이 중요하다. 메타몽은 두 가지 특성 중 하나를 보통 가지는 것 같은데, 전투용 메타몽은 '괴짜'특성을 가져야 한다. 이 특성을 가진 메타몽은, 보통 싸움이 시작되고, 변신기술을 쓰고 (즉 한 턴을 소모하고) 그 뒤에 상대 포켓몬으로 변하여 싸우는 대부분의 메타몽과 다르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변신한다. 즉,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타이밍을 주지 않고 곧바로 상대방과 같은 모습으로 변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구애스카프' 같은 스피드를 올려주는 아이템을 지니게 하면, 상대방보다도 먼저 공격기회를 갖게 되어, 상대방의 기술로 상대방을 날려버리는 그런 전략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점점 괴짜메타몽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당장 나만 봐도, 불과 한달 전까지는 무작정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최대한 많이 머리에 때려박아넣는 가짜모범생을 연기해야 했음에도, 1차 시험 끝나자 마자는 바로 가상의 학생을 배려하고 참여하게 하여 성공적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그러면서 교육청의 시책과 자신의 교육철학을 뚜렷히 인지하고 있는, 경험많은 참교사를 연기해야 하는 책무를 갖게 되었다. 주위를 보면 다들 감추는 법을 잘 배워가는 것 같다. 그럴싸하게 드러내는 법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상대방이 눈치채기 전에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을 숨기는 능력은, 점점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기초적인 스펙으로 인식되는가 보다.

여기서 또 떠오르는 이야기의 타래가 있는데, 글을 쓰다보니 드디어 좀 졸리다. 새벽 여섯시 삼십일분에 글을 마친다. 어차피 아홉시 반엔 또 깨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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