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초기수 #4. 겨울방학이 온다. (완)
정신 없던 2학기를 마치며.
글쓰기에 공백이 길었다.
당연한 일이다. 시험 준비도 바빴고, 학교 일도 바빴고, 어쩌다보니 사랑도 손에 넣어 바빴다. 아직 모든게 미완인 상태지만 지금으로서는 모든게 나쁘지 않다. 임용 1차는 붙었고, 생기부만 쓰면 별탈 없이 학교 일도 끝날 듯 하다. 사랑은 감사할 뿐이고.
이 글타래도 잊고 있었는데. 처음 쓸 때는 한 12편으로 적을 계획이었으나, 역시나 흐지부지. 그래도 완결은 내야 다른 글로 마음 편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글 올리다가 발견하고 허겁지겁 끝마쳐보려 한다.
일단 한 해가 끝났고. 아직 종업식은 다다음주다. 이번 주는 재택근무가 있어서 좀 편안했는데, 다음주는 또 전면 출근이다. 천천히 올 한해를 뒤돌아보기엔 글이 길어져서 귀찮고, 2학기만 뒤돌아보자.
자체 Q&A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Q. 그래서 특성화고 기간제하면서 임용 준비할 만한가요?
A. 체력과 정신력이 있으면 가능하다. 근데 솔직히 난 둘 다 별로 없었다. 특히 체력이 없었다. 학교 끝나고 행정업무 처리하고 애들 상담 겸 대화도 좀 나누고 하다가 분식집에서 저녁먹고 들어오면 한 7시쯤 된다. 다음 날도 학교가야되니까 일찍 자야지 하고 11시쯤 자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 한 10시쯤까지 공부 계획을 잡는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절대로 1시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리가 없지만, 누가 태클걸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한다.) 그러면 가용 공부시간은 3시간. 그러나 3시간 풀 집중? 못한다. 나는 합격수기 쓰고 그럴만한 클래스의 위인이 못 된다. 수업 준비하고 가끔 상담오는 애들 전화 받고 유튜브도 보고 페북보고 그러다보면 하루 1시간 반 정도도 겨우 한 것 같다. 까놓고 말해서 1년 동안 공부해서 실력이 올랐느냐? 아니다. 오히려 떨어졌다. 특히 수학은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뇌 상태를 유지할 때가 훨씬 유리함을 느꼈다. 웬만하면 대학교때 교수님한테 강의 듣고, 그 수업의 핵심 부분이 잊혀지지 않을 시점 쯤에서 승부를 보는게 좋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절망적이니까 장점도 좀 말하자면, 물론 첫째는 수입이고, 둘째는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그로부터 오는 동기 부여와 현장 경험 및 근자감, 셋째는 어차피 게을러서 시간 많아도 안할 놈이었기에 그래도 수면 기상 패턴이 강제화되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공부한 것일 수도 있다.
Q. 그래도 기간제 병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반계/직업계? 공립/사립?
A. 일단 공립/사립은 무조건 공립....위계관계가 그래도 이거보단 덜 할 것 같고, 어차피 임용도 공립교사를 뽑는 시험인 만큼 임용에서 요구하는 스탯을 좀 더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아 진짜 공부 열심히 해서 공립가야겠다라는 동기 부여를 받고 싶다면 한번 와보는 것도 좋다. 어차피 임용 붙으면 못 해볼 경험이니..이럴 때 해본다 생각하고. 하지만 다음카페든 지인이든 물어서 학교풍토는 파악하자. 나는 그러지 않았었고 그건 좀 후회한다.
일반계/직업계는 한 마디로 답해주기 너무 어렵다. 진짜 어렵다. 학교마다 분위기도 다를거고. 개인적으로 직업계의 장점은, 이런 말 할 때마다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수업 부담 및 평가•생기부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엄청난 오만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 오만함은 변하지 않았으나, 확실히 초임교사는 미흡하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실연 준비하고 학원 일하고 하면서 신기한 수업, 쪽집게 수업, 배움 중심 머시기 다 해왔어도, 학교 현장의 분위기와 애들의 성취 수준을 파악해서 가장 효과적인 수업을 제공하는 건 정말 힘들다. 일반계고에서 이렇게 수업하면 진짜 애들한테 얕보였겠구나 싶은 순간까지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솔직히 수학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다. 수업 중에 실수가 있어도 잘 알아채는 학생은 몇 없고, 관심이 아예 떨어지면 안 듣는 학생도 부지기수. 그만큼 학생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수업, 다양한 활동을 활용한 수업..즉 2차 실연때 좋아들 하실만한 수업 경험을, 본인이 원한다면 마음껏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재밌는데 수학은 재미없어요.' 소리를 들었을 땐 맘이 좀 복잡해지긴 했다만.
평가는...정말 고민을 오히려 손톱만큼도 안해야만 한다. 평가 변별도를 고민하면 무조건 난이도는 올라가고, 그러면 애들 평균이 30점도 안나온다. 상대평가긴 한데 성취도는 뜨고, 애들 성취도가 DDDDDCEEEDCBEEEEED...막 이러면 원망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미안해 얘들아.
진짜 최대한 쉽게 내야 된다. 이번 시험은 진짜 기말고사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서 이를 악물고 쉽게 냈는데도, 결국 평균 50은 못 찍었다.
생기부 역시, 과세특 행발 자율활동 진로활동 등등... 최대한 열심히 우수 예시 사례를 보고 기록해보지만, 결국엔 촉박한 시간의 벽과 기록하는 습관의 부재에 한탄하며 매크로와 함께 걷게 된다. 자신에 대한 질책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지만..그래도 다행인건 솔직히 내가 여기에 어떤 글을 써도, 인문계에 비해서 학생들의 삶에 미칠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대학가는 아이들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진짜 절대로 막 쓰고 끝내진 않았다. 그래도 다른 학교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모자라진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편견이지만, 애들이 '계산적이지 않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끔 사고를 치거나 바보같은 소리를 할 때는 있지만, 진짜로 한 눈에 봐도 뭔가 적극적으로 나쁜 아이는 없다. 물론 내가 아주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나한텐 학생들과의 담임경험도 아주 좋게 기억되었고, 이것도 장점이다.
단점은, 전 글에서 썼듯, 기업체 발굴, 중학교 홍보, 강제 참여 워크숍(=술자리), 랜선 까기(?) 등등...일반계에서 거의 할 일 없을 일들이 많기에...거기에 시간을 많이 뺏기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또, 자신의 수업이 옳게 되고 있는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맞는건지 이런걸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줄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있지만, 솔직히 교사로서 여기 있는건지 뭐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가는 사람도 많다. 내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대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쳐주려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아주 행운아. 또, 반에 따라 자괴감이 심하게 올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1학기에 비해 2학기에 좀...전체적인 학업성취도가 낮은 과에 가게 되었는데 (난 이것도 좀 불만이다. 왜 가르치는 과가 학기 단위로 바뀌지. 인원 변동도 없는데.)....초반엔 진짜 상처 많이 받았다. 진짜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고 신경쓰지도 않는 느낌을 받았기에. 물론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몇몇 애들과 그럭저럭 수업을 했지만, 솔직히 수업 자신감과 열정이 팍 떨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뭐 관점에 따라 미리 겪는게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는데, 암튼 2차 시험에 필요한 자신감을 갖기가 좀 어렵더라.
Q. 기간제 경험이 2차 준비에 도움이 될까요?
A. 나도 모르겠다. 시험 끝나야 느낌 올 듯.
올해는 근데 워낙 특이한 해라서...일단 전체 등교일이 한 180일이라 치면 오프라인 등교가 한 80일 밖에 안된다. 나머진 온라인. 그래서...사실 뭐 판서 연습이나 발성 연습 이런건 제대로 못했다. 마스크끼고 수업하니까 감사하게 마이크도 주시더라고.. 그래도 실연 때 현장 분위기 상상해서 순회지도나 학생 답변 넣는건 좀 자연스러워졌지 않을까? 근데 2차 준비 할라면 솔직히 중학교 가라. 고1,고2...올해 안나오지 않을까?? 오히려 불안한 점도 있다. 약간 나쁜 수업 습관이 많이 들었다. formal하지 않은...교탁에 기대고 앵앵대면서 설명하고 뭐 그런...ㅋㅋㅋㅋ 면접은...솔직히 좀 더 진실되게 말할 수는 있게 된 것 같은데 오히려 점수따기용 면접능력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뭐 온라인 수업 관련 질문엔 잘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뭐 현장감은 확실히 생겼으나, 이게 득일지 실일지 모르겠다 아직은.
Q. 2학기는 어땠나요? 임용을 떠나서 그냥 직업적으로.
A. 참 소중했고 참 짜증났다. 올해는 어른들한테 스트레스 받고 아이들에게 치유받았다. 첫 담임 업무, 스스로 생각해도 당연히 많이 부족하고 어설펐는데도. 아이들이 나를 좋게 생각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열심히 따라와주는게 참 고마웠다. 이제 이러나 저러나 학교를 떠나겠지만, 애들한테 참 미안한 것 외에는 학교에 미련이 없다. 아, 함께 많이 이야기했던 기간제 쌤들도 좋은 인연이 되었다. 물론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다 지나왔으니. 흠.. 개같은 공간 속에서도 많은 꽃을 피웠다. 그러나 1년 더하기엔 전혀 얻을 것이 없을 것 같고 오히려 많은 것이 빛바랠 듯 하다.
Q. 꼴에 얘기할만한 팁이나 조언이 있다면?
A. 스터디를 웬만하면 하자. 본인이 의지력이 높고 막 그러면 상관 없는데, 나같은 경우엔 진짜 스터디 안했으면 공부 지금 한거 절반도 안했을듯. 스터디 숙제가 있으면 최소한 그거라도 하게 된다는 점이 진짜 중요하다. (1.01)^365=37.74...정도다. 하루에 아예 하나도 안하는 거랑 그래도 쪼끔이라도 하는건 1년쯤 지나면 차이가 크다.
너무 과몰입하지 말자. 특히 학교 일의 많은 부분에서 화도 나고 마음도 복잡해질 때가 많다. 거기 너무 신경쓰면 아무것도 못한다. 나같은 경우엔 오로지 우리반 애들한테만 과몰입했고 다른 일들엔 열심히 생각하는 시늉만 했다. 그래도 된다.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자책도 많이 했지만 진짜로 그래도 된다. 학교는 어차피 잘 굴러가고, 내가 열성을 다해서 해도 결국 학교 일 관심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 땜에 일은 미뤄진다. 진짜 내 행동 결정 하나 하나에 영향을 받는건 우리 애들 뿐이다. 애들 관련된 것만 소홀하지 않았으면 된거라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임용에 너무 다 쏟아붇지 말자. 솔직히 기간제를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올인은 아니니까. 당연히 올인한 사람들에 비해 들일 수 있는 노력의 양과 시간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자신의 여가 시간에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이건 위험하다. 그렇게 사는게 점수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물론 나이가 더 먹을수록 마인드가 달라져야겠지만, 나는 일단은 운명이 이끄는 곳으로 가겠지 하고 편하게 마음 먹었긴 했다. 안되면 그래도 기간제 경력이라도 쌓였으니 내년엔 일 구하기 좀 낫겠지...안되면 실업급여 좀 받고 공부하구...이런 정도의 뒷길은 남겨뒀다. 배수진은 너무 위험하다.
아무튼 격변의 한 해가 갔고, 또 새해가 온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달아주시라. 대답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상세히 말해줄테니.
해피 뉴 이어합시다. 올해는 무슨 글을 쓰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