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 등교라는 굉장히 미묘한 형태가 되었지만, 아무튼 학생들은 학교에 왔고, 역시나 굉장히 정신이 없었다.
학교 수학 선생님으로서의 공식적인 첫 오프라인 수업은 아무래도 조금 혼란스러웠으며, 밀릴 대로 밀린 진도 때문에 마음은 급하고, 격주 등교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수행평가는 빠르게 빠르게 진행해야 하다 보니 골치가 아프다. (2주에 한번 와도 이렇게 수행평가 폭탄인데 도대체 3주에 한번 오는 중학생들은 어떻게 수행평가를 다하는걸까?)
그 와중에 담임반 아이들은, 뭐.. 6월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미묘한 학기초 분위기다. 같은 컴퓨터/자격증 학원을 다니거나 같은 중학교 출신인 아이들은 이미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자주 만나서(....코로나 조심하고 사람 많은 곳 피하라니까 얘들아ㅠㅠㅠ) 이미 친해질 애들은 친해지고 사귈 애들은 사귀고 싸울 애들은 싸우고, 그 모든 이벤트를 경험한 반면, 집에서 조용히 혼자 수업 듣던 아이들은 이제서야 처음 옆자리 아이들과 말을 트기 시작한다. 근데 또 쪼끔 친해져서 같이 놀까 하면 한 주는 온라인 등교고 뭐 그렇다. (어차피 친해지면 학교 아닌 곳에서 만나지 말래도 만나서 노는거 알고 있다만)
그 와중에 갑자기 아픈 친구도 있고(평소라면 큰 일이 아니었을 증상도, 현재 상황 상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등교중지 및 선별진료소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오프라인 등교 때 수행평가며 뭐며 시험도 잔뜩 보는데, 그걸 또 미응시하게 되어 상황은 더욱 꼬인다.), 교실에서 싸우는 애들도 슬슬 생기고, 전학이나 자퇴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요런 종류의 뭔가 초임교사 스타일의 고민들은 일단은 적당히 일기장에 적어두겠다. (뭐 사실 일기 안쓰지만.) 이거 아니어도 비슷한 글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써봤자 읽는 이에게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사립 직업계 고등학교 교사라는 상황이기에 마주치게 되는, 독자들에게 그닥 익숙하지는 않을 업무에 대해서만 적기로 하겠다. 뭐 일단 수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필자도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 대해서 할말이 많지만, 이제 진짜로 그걸 적었다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최대한 학교 특성은 배제하고 적어보도록 노력하겠다. 일단 이 곳이 내가 뼈를 묻을 곳은 아니구나 싶었다는 점만 분명히 해둔다.
지금까지가 근황토크였고 이제 서론이다.
서론: 너무 뜬금없지만 함수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어차피 수학하는 사람이 많이 볼테니까 대충 설명하자면, 함수는 정의역과 치역의 대응관계다. 즉 정의역 X에 있는 놈을 데려다가 치역 Y에다가 하나씩 때려박아야 함수다.
이걸 조금 바꿔 말하면, 정의역과 치역이 정의되지 않으면 함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 함수의 특성이 y=2x건 y=(1/2)x건 뭐가 되었건, 그건 둘째 문제다. 함수가 함수로서 살아남아서 세상에 존재하려면, 일단 정의역과 치역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도 하나의 함수다. 입학생을 정의역으로 두고 졸업생을 치역으로 두는 함수.
미안하다 특수효과 쓰고 싶어서 어그로 끌었다. 아무튼 학교가 존재할라면 일단 정의역이랑 치역이 있어야 한다는거다. 입학하는 학생이 없으면 과도 사라지고 학교도 사라진다. 학교 졸업하고 갈 곳이 없다면 그 학교는 망하는거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를 배당받게 된다.
학교 수업준비? 평가? 담임업무? 행정업무? 우리가 생각했던 교사로서 해야 할 그 모든 건 애초에 학교가 지속가능할 때에나 의미가 있는 거라고 하더라. 관리자 입장에서는 일단 학교의 Input과 Output을 유지발전시키는게 최우선 과제인 것이었던 것이었다.
사립 공고의 업무 순위가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학교 홍보가 1위, 취업처 발굴이 2위이며 수업 및 생활지도 및 행정업무는 3위에 불과하다.
그렇다. 이 사립 공고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학교 홍보다.
아니 진짜로. 수업이고 뭐고 중학교 홍보 시즌이 되면 수업 다 내팽개치고 중학교로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홍보를 하러 뛰어다닌다. 그것도 홍보 기념 선물이나 학교 안내 포스터나 리플릿이나 이것 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애들이랑 부장교사 및 3학년 담임교사한테 막 뿌린다. 홍보 관련 연수도 자주 하고 홍보를 지역 별로 나눠서 교사 팀을 편성하고 회의도 한다. 2인 1개조로 또 그 팀 내부에서 조를 짜서 조별로 어느 학교에서 내신 몇 이상 몇 명은 데려와야 한다고 할당량을 준다. 홍보 잘하면 인센티브로 돈 주는 학교도 있더라.
뭐 이게 교사야 다단계야 영업사원이야 뭐야? 싶지만 아무튼 진짜 그렇다. 교사마다 명함을 막 몇 백장씩 준다. 학교에다 뿌리라고...
(왜냐면 그렇게까지 안하면 애들이 그냥 안오니까. 애초에 공고라는 장소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친구들이 많은데, 그 와중에 주변 공고들이랑 경쟁해서 그 몇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 경쟁하는 학교가 7갠가 되던데?)
참고로 중학교 홍보 시즌은, 대충 10월 말 11월 초 이 쯤이다. 임용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홍보하러 중학교 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TMI지만 마이스터고 입학전형 끝나자마자 특성화고/직업계고 입학전형이 시작된다. 그래서 또 마이스터고 떨어진 친구들을 다 꼬셔서 데려오자고 전략을 짜기도 한다. 혹시 이런 학교 경험해보면서 임용준비 하고 싶으면 그나마 마이스터고가 아주 약간 시기상 나을 것 같다. 물론 당연히 학교바이학교라는 진리는 거스를 수 없다.)
중학교 홍보 말고도 그냥 학교 홍보 자체에도 관심이 많다.
교장쌤의 연설에 따르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서 특성화고를 평가할 때 중점적으로 보는 기준이 '언론노출도'라고 한다. 이거 때문인지, 그냥 그분이 학교가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인지, 뭐 명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학교의 이름을 언론매체에 알리는 것에 엄청난 신경을 기울이고 계시다. 내가 다른 학교를 안가봐서 모르겠는데, 원래 학교에 다른 학교 교장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뭐 매일 한팀씩 오고 그러나? 진짜 피크 때는 3주 내내 매일 다른 학교에서 손님이 찾아와서 보고가서 매일 강제 수업장학당하고, 매일 특별 실습실 개방하고 그랬다. 어쩔 때는 뭔 교육감님도 찾아오던데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그래서, 언론에 나올만한 '혁신적인' (작은 따옴표를 쓴 이유는 나는 절대 안쓸 형용사라서다.) 일을 많이 시킨다. 뭐 스승의 날 Zoom 온라인 감사 이벤트 같은거도 연출하고, 전공교과 온라인으로 실습하는 모습도 보여주려 하고, 화공과에서는 직접 손소독제를 제작해서 학생들한테 배부하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기사로 낼만한 걸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래서인지 이 곳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그럴 듯 하게 연출하는 문화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홍보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두 번째로 중요한 업무는 취업처 발굴이다. 이건 특히 직업계고라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인데, 솔직히 홍보랑 느낌은 비슷하다. 내가 교사인가 영업사원인가? 하는 느낌적인 느낌.
취업처 발굴이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분야가 있기는 하다. 아예 학교 졸업생 몇명 뽑아서 해당 기업에서 채용해주세요 하는 종류의 취업 계약, MOU도 있고,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니 일병행학습제니 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일주일에 3일은 학교 나오고 이틀은 기업가서 일하고 이런식으로 번갈아다니며 직업훈련을 받는 제도도 있고, 뭐 그렇다.
아무튼 핵심은, 그 학교와 기업 간 연결관계를 어디 고용노동부나 교육부에서 맺어주는게 아니라는거다.
그냥 교사들이 막무가내로 기업에 막 전화해서 우리 애들 좀 뽑아주세요 하는 시스템이다. 무슨 기업 리스트가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뭐 근처 산업단지 돌면서 명함 뿌리거나(그마저 코로나땜에 지금은 못한다.) 일자리 구하는 백수마냥 잡코리아나 사람인이나 알바천국같은 어플 켜서 그냥 사람 뽑는 곳 찾아서 뜬금없이 학교 얘기 던지는거다. 말하고 보니 영업사원이라기보다 텔레마케터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것도 아주 중요하다. 아웃풋이 없으면 자연스레 인풋도 없다. 실제로 우리반 애들한테 너네 우리학교 왜왔냐고 물어봤더니, 중학교 홍보 온 쌤이 취업 잘된댔어요 하는 애가 대부분이었다.
암튼 이거는 취업처 한 곳 찾을 때마다 10만원인가 인센티브 주더라 우리 학교도. 근데 뭐 진짜 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갓 졸업한 고딩을 별로 뽑고 싶어하지도 않고, 더욱이 졸업 안한 2학년짜리를 학교랑 병행시키면서 쓰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슨 고용노동부에서 이런 저런 혜택이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진짜 성실하고 잘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 이런 커리큘럼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을 애가 다룰 수 있습니다 등등 여러 레퍼토리를 통해 반쯤 빌다시피 해야한다. 홍보도 그렇겠지만, 취업처 발굴은 약간 더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 아이들이 졸업하면 받게 될 시선이라는게 이토록 차갑구나 싶은 생각도 좀 들면서 여러모로 씁쓸함이 남을 때도 많다.
아무튼 이런 부분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한 직업을 이제 겨우 3~4개월 했는데도 꽤 여러 직업을 체험한 느낌이다. 저런거 할때는 영업사원 같다가, 학교에 랜선 없어서 애들 실습용 utp 케이블 까서 조립할때나 와이파이 할당ip 같은거 설정 잡을때는 뭔 인터넷 설비기사 같기도 하고, Zoom 수업할 때는 인강 강사같다가, 오프라인 수업 때는 베이비시터같기도 하고, 가끔은 코미디언 같기도 하고 그렇다.
1년 하고 말거니까 그나마 기쁜 맘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6개월이었으면 완벽했을텐데, 이럴 줄 미리 알고 초임 교사를 뜬금없이 1학년 담임 자리에 때려박아놨나 싶기도 하다. 우리 애들 두고는 도망 못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