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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팔라 Apr 07. 2020

사공초기수 #2. 뜻밖의 사태

예비소집일 이후~온라인 개학 준비기간

초반에 쓰리라고 예상했던, 그나마 상식적인 선에서 상상가능했던 시나리오를 너무 벗어나버려서 사실 더 이상의 글을 쓰는 것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약 한달 반의 행보를 개략적으로만 적어보겠다.


처음 직업계고 선생님이 되어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나의 경험을 그려내며 미래의 나와 비스무리한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대충 이런거구나' 하는 감을 제공해주는 그런 글타래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거 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보편적이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뭐 동아리? 방과후 수업? 모두 백지화 되었다. 지금 학교의 온 신경은 '온라인 수업'에 맞추어져 있다.


처음에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활용하여 ebs 수업을 보여주는 것으로 학습 공백 기간 (그때는 길어야 2주일 줄 알았다.)을 대체하려고 했다. 공백기간 동안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학습자료와 과제를 만들어 올렸다.


그러나 'ebs를 틀어줄 거면 교사가 왜 필요하냐'라는 설득력 있는 의견에 의해, 교사들이 직접 강의를 찍어 영상을 ebs클래스로 업로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강의를 촬영하고 업로드한다'가 이 과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내에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이 시스템 역시 전문계고가 아닌 인문계고를 기준으로 제작되어 있고, 솔직히 ebs 강의를 활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이 업로드가 40분 넘게 걸리는 점을 포함해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우리 학교상황에 맞게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일단, 이 온라인 클래스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아무도 없었다. 연구부도 정보부도 교무부도 모른다. 이 업무가 대체 어쩌다가 말단의 말단 교사인 나한테까지 굴러떨어졌는지는 더 모르겠다.

아무튼 ebs 온라인 클래스의 핵심은 학생들을 클래스에 초대해서 학생들의 진도율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라 클래스를 개설해서 학생들을 초대해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1번. 학급별로 클래스를 개설하여 각 반 학생들을 각 클래스에 가입시킨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가장 일반적인데, 이 방식의 문제점이 두 가지 있더라. 첫째는 교사 가입 기능이 별도로 없다는 것이다. 즉, 학급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강의를 각 클래스에 올려야 되는데, 교사로 가입할 수가 없다. 클래스에  가입하려면 다음의 절차를 걸쳐야 한다. 먼저 교사가 각 반 클래스를 만들고 권한 생성 메뉴에 들어가서 학생 관리와 강좌 관리가 가능한 권한을 하나 만든다. 그 다음 각 과목 교사가 반 번호를 실제 학생과 안겹치게 1학년 2반 100번 같은 느낌으로 각 클래스에 가입한다. 그러면 담임교사가 해당 교사를 가입시킨 뒤 새로 만든 권한을 부여한다. 각 교사가 자신의 강의를 수업 들어가는 각 클래스에 클래스별로 각각 올린다. (5학급 수업 들어가면 강의를 한번에 5개 업로드 해야한다는 점이 문제다. 업로드 자체도 렉 걸리는데 한 번 수업영상 만들면 올릴 횟수가 많다. 그런데 이게 그나마 낫다. 초안은 과목별로 한 두명 씩 영상 찍는 거였는데 이러면 업로드 담당 교사를 정해서 한 선생님이 28개의 클래스에 가입해서 매일 영상을 28번 업로드 해야한다는 방식이었다. 지금보니 믿기지가 않지만 실제로 이럴 계획이었다.)


이게 싫다면 두 번째 방식은 교과 별로 클래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직업계고만의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학생이 가입할 때 '학년반번호' 만 기입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를 적지 않으면 학생들의 소속을 구분할 수 없다. ebs는 학생이 학년/반/번호 이외에 소속 과가 있다는 사실은 관심조차 없다. 애초에 직업계고를 고려해서 만든 시스템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사실 해결 가능하다. 그냥 과별로 코드번호를 부여해서 하면 된다. 예를 들면 화공과 1학년 2반은 1학년 17반, 전기과 1학년 1반은 1학년 18반 이런 식으로 번호를 주면 된다. 솔직히 이 방식이 훨씬 편하다. 영상을 한번 만들고 한번 업로드하면 되니까. 물론 교사 권한부여 문제는 똑같지만 그래도 영상 하나 당 28번 업로드 노가다하는 거 보다는 낫다.


이 두가지 방식을 바탕으로 (왜 정보부도 아닌 일개 학급 담임인 내가 만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매뉴얼을 만들어서 전 교사에게 전송했다.

2안이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하지만 1안이 결정되었다. 학생들의 편의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1번 방식은 학생들이 자기 반에 한번만 가입하면 되지만, 2번은 학생들이 과목마다 가입해야해서 헷갈릴거라는 거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 너무 답답했다. 이 글을 읽을 정도의 모바일/컴퓨터 사용자는 사실 꽤나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라는 걸 그 땐 몰랐기에. 권한 부여라는 방식을 고안해내고 설명했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당장 ebs 회원가입이나 교사인증 급에서 막혀서 헤멜거라는건 상상도 못했기에.


아무튼 글로 적기 싫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ebs 온라인 클래스를 쓰기로 정했다. 그런데 이 결정은 하루만에 엎어졌다.


하루만에 이 방식 말고 쌍방향 수업을 하고 싶으시단다. 그런데 그 방식으로 '카카오tv(구 다음팟)'을 골랐다. 뭐 나름의 장점이 있겠지만 카카오tv의 가장 큰 문제점은 '딜레이'다. 방송하는 사람이 말하는 시점과 시청자가 듣는 시점이 거의 15초 차이가 난다. 이러면 사실 쌍방향으로 실시간 의사소통이 안된다. 서버도 좁아서 잘 튕기고 그렇다.


아무튼 카카오tv로 수업시연을 한번 전교사 앞에서 보여줬으면 좋겠다구 해서 준비했다. (이것도 왜 그 정보부 사람들 아니고 나한테 시키는 걸까?) 출근일 아닌 날도(그래도 이땐 사회적 거리두기 문제로 출근을 안하는 날도 있었더랬다.) 출근해서 리허설했다. 그런데 수업시연은 정말 정말 개판이었다. 나는 카카오tv를 활용해서 수업을 시연하는 장면을 보여주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에 따라 우리반 애들을 겨우겨우 가입시켜서 수학 수업을 진행하는데, 막상 보러오는 교사는 내 수업 따윈 X도 관심없고, 이 프로그램 어떻게 쓰는지만 관심이 있던 거다. 수업하다가 중간에 소리지르면서 어떻게 방에 들어가냐고 물어보거나, 수업하는 캠 앞까지 튀어나와서 웹캠말고 스크린 공유는 어떻게 하냐고 막무가내로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시연을 망친 건 물론이고, 그 장면을 애들이 보고 '저 쌤 왜 다른 쌤한테 혼나?'소문이 돌게 된 것과, 그렇게 망한 수업을 보고 여러 쌤들이 맥락 고려 안하고 '저 쌤 수업 망했대' 퍼뜨리고 다닌 건 덤이다. 대체 지금 생각해도 저 날은 뭔 쇼를 한건지 모르겠다.


암튼 카카오tv는 반려되었고 Zoom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넘어갔다. 또 애들을 가입시켰다. 이게 말이 쉽지, 태어나서 딱 두번 만난 (예비소집일 때 한번, 온라인 수업 때문에 교과서 챙겨가라고 한 날 한번) 애들 스물 몇명한테 사이트 3개를 (하루에서 이틀 간격으로) 가입해라 쪼고 관리하는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데이터 안되는 애들한테 문자로 하다보니 벌써 문자를 다 써서 추가 요금 장난 아니다. 대충 3번을 닦달하면 반응이 온다. 학생이 20명이면 금방금방 해주는 애 5명, 보통 10명, 진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겨우 한번 톡 봐주는 애 5명 치면 도합 60,70번은 닦달해야 하나의 행정업무를 끝낼 수 있다. (온라인클래스 가입, 카카오tv가입, Zoom가입, 건강상태 자가진단 설문조사...각각을 그렇게 하면..)뭐 개인 톡을 여러명한테 보내는 기능도 있으니 저건 좀 과장한거고 그래도 아무튼 10번은 문자나 카톡, 전화나 학부모 연락을 돌려야 '학급 전원이 ~했다'라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Zoom은 조금 그래도 카카오tv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웹캠 켜고 '들리니?'하면 바로 '네~'가 돌아오니까 출첵할 때 나았다. (그러나 소리만 딜레이가 없고 영상은 여전히 딜레이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는 다시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Zoom의 단점은 너무 생소하다는 점이다. 누구도 zoom을 모른다. zoom은 심지어 프로그램 설정이랑 인터넷에서 계정 로그인해서 할 수 있는 설정이 달라서 그 두 설정을 다 써야되는데, 대부분 선생님은 이거는 커녕 사용법에서 다시 한번 막혔다. 전체 음소거 기능, 호스트 넘기는 기능, 추천 스크린 지정 기능, 화면 공유 기능, 화면 공유할 때 학생들이 낙서 못하게 주석 취소하는 기능, 등등... 무궁무진한 설정들을 이해하기엔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힘드셨던 것 같다.


사람은 불안하면 화를 낸다. 모를 수는 있는데, 왜 모르는 걸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온갖 짜증과 강압을 내는걸까 고민해본 결과 스스로 내린 답이다. 내가 느끼는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부담감보다, 좀 더 고연령층의 부담감이 더 크긴 할 것 같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솔직히 근데 나도 Zoom 모른다. 애들이 소리가 안들려요 영상 안나와요 하면,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는 나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 와중에 대학생 누나가 노트북 뺏어간 애들도 있고, 폰이 오래돼서 Zoom켜면 충전시켜도 몇십분만에 배터리 방전되는 애들도 있고, 너무 많은 참여상의 어려움이 있다. 솔직히 학생들 출석 확인과 상태 체크에 쌍방향 수업의 의의가 있는 건데, 여러 문제로 그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솔직히 이걸로 진심으로 온라인 개학을 해서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Zoom으로 며칠 간 수업테스트를 해봤고, 이제 진짜 온라인 개학이 코 앞에 남았다. 일단 지금의 당황스러운 재난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보편적인 경험담을 제시할 수가 없어서, 이 글타래도 쓸일없을 것 같다. 솔직히 이 글도 잘 짜여진 글이 절대 아니며, 그냥 술 먹고 쓰는 신세 한탄이다. 더 신세 한탄하면 듣기 싫을 것 같아서 교무실 타일 새로 깐다고 모든 책상,파티션, 사물함 다 뺐다가 다시 배치한거나, 그 랜선 케이블 얼마나 한다고 그거 사는게 아까워서 선생님들한테 직접 애들 통신선로 기능사 실습용 라인 가져다가 직접 피복 까고 선 8개 색깔별로 배치한 뒤 캡 꽂아서 압착하고 해서 utp케이블 42개 만들라고 한거나 그런 잡다한 일은 적지도 않았다. 내일은 zoom이 답이 없어서 교내 인터넷 공사를 하고, 그로 인해 온라인 수업 테스트를 못하는 우리 전 교원은 오전 내내 학교 대청소를 한다. 아 결국 이거까지 신세한탄이네. 아무튼 이렇게 살다가 좀 안정되면 다시 글을 쓰든 말든 하겠다. 이 글타래는 일단은 무기한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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