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초기수 #1. 2월, 개학 전 등교일, 예비소집일.
학교 첫 방문부터 개학 전 등교일까지.
'최종 합격입니다.'
일단 문자는 받았는데 별로 실감이 안났다.
내 주변의 삶이 별로 바뀐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 게임이나 하다가 졸리면 자고 가끔 술먹는 게 전부였다. 가끔 학급경영 책을 사서 좀 읽거나 초임교사 유튜브를 찾아보는 게 그나마 다른 점이었다.
2월이 되니 슬슬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행정실에서는 병역증명서, 경력증명서,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서, 사진 등등을 언제까지 가져오라는 문자가 왔고, 덤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을 조금 알려줬다.
'수학은 1학년, 2학년 두 학년을 가르치시게 될 거구요, 00과 1학년 0반 담임이시네요.'
헉. 나는 이 때 '빡센데?' 했다. 수업도 두 학년에 담임업무까지? 난 이제 처음인데, 행정업무도 수업준비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욱 커다란 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때는 상상도 못했다...)
이어 수학 주임 선생님과 00과 부장선생님이 연락을 와서 2월 3일, 학교에 처음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이 날은 아침 출근시간에 만나는 거여서 그런지 저번보다도 대중교통이 끔찍한 날이었다. 무조건 학교는 걸어서 다니리라 결심했다.
수학은 두 명이 뽑혔는데, 나와 같이 뽑힌 선생님도 학교 경력이 없는 분이었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두고, 어리고 학교가 낯선 두 사람만 뽑았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는...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일단 두 학년의 교과서를 받았고, 뒤이어 수업계획서와 평가계획서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어느 과의 몇 학년을 가르쳐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과'라는 개념이 나에겐 아주 새로웠다. 직업계 고등학교는 '00과 0학년 0반'으로 분류되며(전기과, 화공과, 등등..), 과 별로 커리큘럼이 상이하다. 교사 처부도 '0학년부'가 아니라 '00과'를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다음주까지 과 별로 그 계획서를 써서 제출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00과 1학년, ㅁㅁ과 1학년, ♡♡과 2학년을 가르치니까 3쌍의 계획서가 필요하지만, 다행히 00과 ㅁㅁ는 비슷한 성취수준이라 둘을 통일해서 2개 정도로 만들면 된다고 하셨다. 이후 학교를 돌아보았다. 학교는 아주아주 넓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는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자취방을 잡았다. 자취방 후보는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과 버스타고 15분 걸리는 역 근처가 있었으나, 아침의 개고생을 겪고나서 고민없이 전자를 선택했다. 그 전에 '학교 근처에 산다는 것'에 대한 아주 많은 단점을 친구들에게 새겨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버스는 싫었다.
이후에는 00과에서 부장님을 만났다. 굉장히 젊은 사람이셨다. 보통 부장님하면 나이가 지긋하신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다들 젊었다. 내가 막내이기는 했지만(학생들과 10살 차이★), 나보다 1살 많은 사람, 3살 많은 사람, 4살 많은 사람...그 정도의 나이대였다. 사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젊은 인원구성이다. 이것은 아주 큰 장점이자 아주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이 2월 3일의 기억. 그 다음에 학교를 간 것은 2월 17일이었다. 2월 17일부터 21일의 한 주가 개학 전 등교일로 정해져있고 24일이 예비소집일이었다. (이후 코로나로 인해 약간의 일정 변경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수업/평가 계획서를 작성했다. 솔직히 '작성'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 수학주임 선생님의 계획서를 거의 베껴서 진도나 일정만 약간 수정하는 수준이었다. 수행평가 역시 같은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이런 저런 방식을 고민해보았지만, 학생들을 아직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실험을 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2월 17일은 정말 당분간 잊지 못할 스펙터클한 날이었다. 첫 출근.
처음으로 전체 교직원회의에 갔고, 교장선생님은 모든 신입선생님의 이력을 PPT로 띄워서, 본인이 왜 이 선생님을 뽑았는지 한 명 한 명 소개하셨다. 정말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다. 누구는 자격증이 많아서, 누구는 면접 중의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누구는 타 학교 선생님의 추천을 강하게 받아서, 누구는 00부장님의 강력한 요청으로...등등. 나는 아무래도 학교와 수업실연과 학원 경력 때문에 뽑힌 모양이다. 이후에는 신입교사 연수가 진행되었다. 기억에 남는 말들은 아무래도, 일이 엄청 많기로 유명한 학교라거나, 기간제의 무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이야기 등등...역시 교장선생님이 퇴근시간이 없다는 말을 그냥 겁주려고 하신게 아니었구나. 아니 그렇게 사업이 많고 바쁘기로 유명한 학교인데 왜 난 전혀 그런 소식을 몰랐을까? 하하.
연수가 끝나고 나의 자리를 찾았다. 00과 한가운데. 내가 속한 과는 학교 전체에서 가장 깊숙하고 외진 장소에 있었다. 정문에서 걸어서 8분은 걸리는 곳. (그 말은 물론 출근 시간도 10분은 당겨야한다는 뜻이다.)올해에 개편된 과여서 꽤 정신이 없었다. 교내에서는 다양한 공사와 청소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공인인증서도 없고 심지어 인터넷도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있었다. 그것은 바로 몸쓰는 일.
한 3일 정도는 진짜 몸쓰는 일만 잔뜩 했던 것 같다. 파티션을 떼서 옮기고 벤치를 버리고 책상과 의자를 옮기고 눌러붙은 스티커를 떼어내고 캐비넷을 옮기고 뭘 버리고 뭘 옮기고.......(물론 과의 모든 선생님들이 같이 일했다! 오해하실까봐ㅋㅋㅋ) 약간 내가 교사인지 이삿짐센터 직원인지 자아개념이 혼미해질 때쯤 되니 차차 00과 사람들이 익숙해졌고, 금세 예비소집일이 찾아왔다. (그 사이에 인터넷과 인증서가 가능해졌고, 윈도우 포맷을 하다가 몇몇 쌤들과 친해졌고, 한번 회식을 했다가 필름이 끊겨버리는 등 수많은 일이 있었으나 분량상 넘긴다.)
예비소집일에 앞서 학생들에게 선생님 소개와 학급 규칙 등등 다양한 것을 이야기하는 ppt와 안내문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출신 대학교'를 밝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는 원래 전혀 밝힐 생각이 없었다. 전혀. 하지만 주변 선생님들(경력은 3년차 정도, 담임은 다들 처음이다.)은 무조건 밝혀야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솔직히 학생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는 아직 나에게 없고, '명문대 출신'이라는 그 꼬리표가 학생들의 이목을 끌만한 거의 유일한 무긴데 그걸 왜 안쓰냐는 것.
더욱이 '수학'이라는 과목은 마이스터 고에서는 오히려 약점이었다. 인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라도 열심히 해야하는' 게 수학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 곳은 '수학이 싫어서 온 애들이 태반'인 곳이라고 했다.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동기 유발과 다양한 활동이었다.
결국 올해는 밝히기로 했다. 전화번호는 고민하다가 투폰을 써보기로 했다. 뭐 늦은 시간 연락이나 프라이버시보다도, 그래야 좀 업무관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완벽한 관리를 위해서는 애당초 이 학교에 지원할 때부터 세컨드 폰의 번호를 썼어야했을 거 같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물론 이 글을 애들이 보면 그건 그거대로 민망하니까 그 역시 투폰의 원인.->쪼끔 하다 접음...귀찮아서 못해먹겠더라 폰 2개 쓰는건;) 그리고 출석, 휴대폰, 급식, 학교폭력 등등 여러 부분에서의 유의점을 한 장짜리 안내문으로 정리했다. 이건 부장쌤이 보시더니 과 전체에 공유해도 되냐고 물어보셔서 그냥 다 드렸다. 이거야 뭐 다들 바쁘고 나도 그렇게 정성들인 자료는 아니어서 부담없었지만, 앞으로 자료 공유를 어느 선까지 해야 할 지는 늘상 고민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 나를 희생할 수 있느냐. 지금은 이 문제가 가장 어렵다.
학교생활의 아주 많은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대부분 예스맨 상태로 거의 시키면 그냥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민이 되는 순간이 많다.
나는 원래 학교에서의 활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임용공부를 그래도 병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올해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강조하셔서 국영수 교사는 '무조건'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하기 원하신다. 이 경우? 나를 희생했다. 방과후는 그래도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름 돈도 된다.(사실 희생이라기도 좀 그러네.) 무엇보다 사립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공립과는 다르게 정말 사장님 정도의 파워가 있다. 특히 우리 학교는 더 센 거 같기도 하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앞으로도 많이 배워야 할 수학주임 선생님이 봉사 동아리를 같이 담당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원래 담당이 2명인 동아리인데 같이 하는 선생님이 바쁘셔서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계신 상황. 그런데 봉사 동아리 특성상 토요일에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이 경우? 희생 못했다. 당장 동아리 외에도 수업, 담임, 행정업무 다 처음인데다가 토요일에 임용스터디 계획도 있다. 아무리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오히려 열심히 한다고 오케이했다가 도움도 못되고 고생만 할 내가 보였다.
공식(이것도 솔직히 정식 계약 전이고 돈도 한푼 안나오지만)적으로 2월 24일까지 출근이고 그 이후 3월에 출근하면 되지만, 아직 학교에 청소가 필요한 '실습실'(마이스터고 전공교과 실습용)이 있고 그 청소에 내가 유용하기 때문인지, 은근히 선배 교사로부터 나와줬으면 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부장선생님을 비롯한 정교사 선생님들은 그거 때문에 출근한다. 물론 나는 수학이고 그 분들은 전공교과지만 아무튼 같은 과다.) 아...이건 고민 좀 했지만 희생 안했다. 이제 개학 전(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은 1주일 연기됐지만)이라 수업준비도 진짜 해야 되고, 솔직히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데, 힘든 거야 같이 뛰어서 백번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원래 ㅁㅁ과에서 하던 도제업무, 특히 거점학교 업무를 못하겠다고 우리 00과에서 맡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업무랑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으며 사실 ㅁㅁ과 수업이랑 연계가 되어서 사실 ㅁㅁ에서 맡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 경우? 놀랍게도 희생한다. 이것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과의 위험성이라고 한다. 모든 다른 부서의 타겟이 되기 좋다. 젊다는 것은 만만하다는 것이기도 한가보다. (한 편으로 교장선생님은 젊은 과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이 역시 양날의 검이다.) 약간의 사소한 태도상의 문제점이 보이면, 이후의 모든 업무처리에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 생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 이외에도 고민할 상황이 끝도 없지만 생략.
마침내 예비소집일. 정말 정신이 없다. 신입생들을 모으고 교실을 이동하고, 교과서를 나눠주고(정말 책 2권 가져간 사람 없어??) 준비한 ppt를 보여주고 (빔프로젝터는 왜 말썽이야) 가정통신문 6개를 나눠주고, 인적사항을 조사하고, 진로캠프 참여자 명단을 수합하고... 그래도 그나마 신입생이라 덜 혼란스러웠다.(오히려 2,3학년은 작년의 쓰레기를 다 치우고 버리느라 정말 카오스였다.) 아이들은 당장은 착해보인다. 그냥 누구는 메이플스토리하고 누구는 방탄소년단 좋아하는 그런 애들. 내가 가지고 있던 '공고애들'의 이미지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느끼게 된다. 나는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 진짜 사립, 진짜 마이스터고, 진짜 기간제의 장면을 촬영해가기 위해서.
생각보다 빠르게 계약서 작성을 했다. 2월 24일. 11호봉인줄 알았는데 군대가 1년 9개월이라 10호봉이다. 아,학원경력증명서로 어떻게 잘 비비면 11호봉 될 수도 있었을 것도 같은데..뭐 어쩔 수 없지. 아무튼 1년 기간제 계약을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고작 7일 정도지만) 기간제는 참 미묘한 위치에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정교사들과 미묘하게 구별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항상 나쁜 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이 다름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 그리고 '그만둘 수 있다'라는 사실을 역이용하는 것이 기간제 교사의 가장 큰 무기라는 조언도 들었다. 마이스터고 경력은 인문계 교사들에게 얕보여서, 처음 시작을 마이스터고로 끊으면 계속 전문계만 돌게 될 거라는 경험담도 들었고. 대체 왜 그 학교를 나와서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냐는 말도 꽤 많이 듣고 있다. 그 정답은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아무튼 아주 많은 모르던 세상을 겪게 되었고 아마 더 겪게 되겠지. 어찌됐든 이제 정말 실전이다. (코로나 땜에 애들 보는건 한 주 미뤄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