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이 깁니다.
서사의 분말상자 season 2
어쩌면 인생의 전환기가 될 방학.
마음가는 대로 살도록 내팽개쳐진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놀랍게도 독서를 하고 있다.
심지어 전공 지식이나 교육 관련 책도 아니다.
고전을 읽고 있다. 난데없이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보통 나는 방학 때면 (언제나 독서를 해야지 하는 목표만 세워두고) 볼륨이 큰 콘솔 게임을 하나나 두 개 정도 클리어하곤 했다. 어디 해외에 놀러가는 것보다 준비할 것도 없고 도파민은 많이 돌고, 가성비가 좋아서였을까?
아무튼 흘러가는 대로 냅두다보니 나름 국문 이중전공인데 맨날 책을 읽는 척만 하고 하나도 안읽었다. 사긴 많이 샀다. 그래서 하나도 안 읽었는데 제목이랑 저자만 아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것만 아는 척 해도 이 사람이 그 책을 아는구나 하고 많이 착각하더라.. 그래서 허세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겉으로는 뭔가 있는 척 하지만, 점점 속은 텅텅 비어간다는 사실이 숨기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 부랴부랴 책을 집은 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오랜만에 책을 읽으니 좋았다. 꽤 오래 잠들어있던 글쓰기의 욕망이 뜬금없이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론이 길었다.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대학생 때 나 혼자 '서사의 분말상자'라는 이름으로 조각글을 쓰곤 했었다.
(브런치에 그 흑역사들이 고스란히 모여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살면서 일어나는 별 것 아닌 일들에 쓰잘데기 없이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며 마치 뭐라도 된 양 인생의 진리에 한 발짝 다가간 기분을 내어보는 것이었다. 읽는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꽤 재미있었다. 배설에 가까운 일이다 보니 일단 휘갈겨놓고 대부분 나중에 다시 보지는 않았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어쩐지 갑자기 다시 써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명맥을 이어가보려 한다. 가제는 '사색같은 걸 끼얹나'...
좀 올드한 것 같다. 요즘 친구들은 '물 같은 걸 끼얹나?' 밈 자체를 아마 모를듯? 하지만 올드한 것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 돈 받고 쓰는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간다.
변덕같은 거라 얼마나 꾸준히 글을 쓸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은 방학 중 따로 할 일 없는 날 1일 1글이 목표다.
서론이 길대놓고 두 블락을 더 썼다.
버스타는 30분 정도 글을 쓰려고 했는데 아무 계획 없이 써내려가다보니 서론도 안끝났는데 벌써 내릴 때가 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낀 점이 있는데, 나는 글을 간결하게 잘 줄이지를 못한다. 글 뿐 아니라 말도, 생각도 그렇다. 항상 언젠가 책 한 권 쯤은 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이래서야 나무들한테 미안해서 출판은 못할 것 같다.
근데 사실 뭐 다 그렇지 않나? 우리의 삶도 하루 24시간 중 많아야 두 세 시간 정도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 시간은 다음 주쯤 되면 기억도 잘 안난다. 핵심적인 내용으로만 빼곡한 건 내가 살면서 본 것 중엔 수학 전공 서적 뿐이다. 걔는 진짜 농담 한 마디도 안하고 지 할 말만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책을 써야 지구한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칸트, 니체, 비트겐슈타인...
같이 술마시면 뭔가 되게 짜증나게 굴 것 같은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내 글은 사실 다들 소주 삼병 맥주 사천오백 때리고 서로 뭔소리하는 지 모를 때쯤 떠드는 그럴듯한 헛소리랑 크게 차이가 없다. 기록될 가치가 있을까? 별로 없는 듯. 이렇게 글을 낭비할 수 있는 건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이 파피루스나 나무판자가 아니라 이진법의 전기 신호로 이루어진 판교의 하드 디스크 어딘가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호화롭기 그지없다.
옛날에는 MMS라고 해서 문자 40자 넘어가면 추가요금 내고 그랬는데,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은 굉장히 인터넷 상에서 과묵한 사람이 되어있었을거다.
슬슬 떠들만큼 떠든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뜨뜻한 침대에 누워있다. 오늘 진짜 춥더라. 앞으로 쓸 글들도 대충 이런 느낌이다. 누가 이걸 다 읽을까? 내가 보기엔 10명도 감지덕지다. 솔직히 읽는다고 크게 인생에 도움될 것도 없다. 근데 인생에 큰 관계 없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가 접근성이 좋은 것 같긴 하다. 삶의 고뇌와 철학을 담은 3시간짜리 명작 영화는 맨날 위시리스트만 담아두고 몇 년 째 못봐도, 수염난 실없는 아저씨가 이상한 알피지게임 하는 영상은 7시간도 보게 되는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