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에 애들이 주구장창 하고 있길래 한번 해봤는데, 은근 중독성 있더라... 옛날에 1010!이라고 비슷한 게임이 있었는데 좀 더 중독성이 심하다.
왜냐? 블록들이 예의가 있다.
1010!은 블록 잘못 놓으면 막 새 블록 3개 나오자마자 둘 데 없어서 바로 게임오버가 뜨곤 했는데, 얘는 내가 아무리 개판으로 블록을 쌓아둬도 반드시 기회를 준다. 주어진 블록으로 어떻게 잘만 하면, 절대로 게임 오버가 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엔 핸드폰으로 좀 스케일 있는 게임을 많이 했었는데, 점점 뭔가 하찮은 게임만 하게 된다. 이거 아니면 Threes(2048게임의 원작) 같은 거.
나이들수록 게임에 쓰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싶은가보다. 게임에 풀집중하기보다, 뇌를 대충 내려놓고 다른 생각을 정리하면서 지맘대로 손이 움직이게 두는 편이다.
나는 게임에 감정 이입을 잘 하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 본 책이 '붓다(데즈카 오사무)'여서 그런가 오늘 버스 기다리면서 게임을 하는데 갑자기 이 블럭들에 감정 이입을 해보게 되었다. (스포: 붓다라는 만화책에는 동물들에 자기 영혼을 주입하는 캐릭터가 나옴)
아아...나라는 블럭은 이유도 모른 채 이 게임판에 던져져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인가....
뭔 소리래? 싶다면 정상이다. 이 글뭉치는 주구장창 이런 흐름으로 간다. 온갖 영양가 없는 것들에, 좋게 말하면 삶의 의미를 은유해보는...나쁘게 말하면 개똥철학을 구태여 불어넣는...그런 방식이다.
아무튼 블럭을 생명에, 게임판을 우주에 이입해보니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몇 개 떠올랐다. 아마 바람이 차가워서 떠올랐을 것이다. 잡생각이 없었다면 내 관심사가 추위로 쏠렸을테니.
1. 게임판에 던져진 블럭으로서는, 내가 왜 여기에 던져져 파괴되어야 하는건지 알 도리가 없다.
:근데 그건 솔직히 플레이어조차 정확하게 모른다. 플레이어(절대자)의 의도는 명확히 존재한다. 블럭끼리 절묘하게 들어맞아야 꽉 찬 블럭이 사라지고, 그래야 점수가 오르니까.
근데 더 깊이 들어가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 블럭이 사라진다고 절대자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건지. 아니 애초에, 그저 숫자가 커진다는 사실이 왜 보상이 되는건지 조차.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름 블럭들의 입장에서는 함께 던져진 다른 블럭이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실제로는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지도, 그것조차도 아닐지도 모른다.
2. 아주 깔끔한 모양의 내가 원하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블럭을 10개 정도만 넣어봐도, 슬슬 내가 원하는 모양이 생긴다. 여기서 딱 1자 블럭이 나와줘야 하는데, 여기서 ㄱ자 블럭이 나오면 완벽한데...
근데 보통 딱 그렇게 안나온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더 꺾여있거나 방향이 돌아가있거나 해서, 모든 블럭을 깔끔하게 지우지 못하고 찌꺼기가 좀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완벽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고 그 블럭을 제때 쓰지 않았다간? 금방 죽는다. 중간에 빈 칸이 좀 생기더라도, 이 선택이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길 몇 개를 막게 되더라도, 일단 지금 살아남으려면 대충 쑤셔넣어서 지울 수 있는 걸 지워야 한다.
대부분의 일들도 사실 그렇다. 주어진 모든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대처 방안을 쓸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적당한 대안을 발견하면, 어느 정도의 위험이나 부작용이 있더라도 쓰긴 써봐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교육학에서 배우는 정책 결정 과정 중 합리 모형 vs 만족 모형, 알고리즘 vs 휴리스틱 같은 내용들이 얼핏 떠오른다.
3. 별 것 아닌 빈 틈이 결국 모든 것을 끝장낸다.
:하다보면 엔간하면 블럭 사이에 닫힌 작은 빈칸이 생긴다. 보통 그거 때문에 죽는다. 빈칸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칸이 포함된 가로와 세로 줄은 절대로 한 번에 정리될 수 없다는 뜻이기에. 보통 죽을 때쯤 되면 후회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저 빈칸을 만들지 말걸.... 근데 그게 될까?
쉽지 않다. 그 빈칸은 나름대로 플레이하면서 고민고민한 결과 나온 것이고, 그 빈칸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언젠간 다른 빈칸이 나왔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에서 비슷한 빈칸이 등장한다. 검사 이반 일리치는 행복한 순간 중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을 계기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거는 스포일러 아니겠지...? 제목이 이미 스포인데.) 죽음의 순간에 다가가는 이반 일리치는 그 때의 빈칸을 두고 신에게 오열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빈칸 때문에 죽게 되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들을 지나왔느냐, 어떤 선택들이 나를 '이렇게' 죽게 만들었느냐다.
4. 블럭들은 서로 부서지며 합쳐지고 섞인다.
:각각의 블럭은 서로 다른 색이다. 함께 태어나 모여있는 블럭들은, 다른 블럭과 상호작용하며, 쌓이고 또 부서지며 달라붙는다. 결국 플레이가 끝나가는 후반부에는 처음 시작된 각 블럭의 모양은 기억할 수도 없는 형태로 형형색색의 블럭들이 섞이게 된다. 아무리 어떤 블럭을 원본 그대로 두고 싶다고 해도, 게임을 플레이하고자 하는 이상, 언젠가는 원형을 파괴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또한 동시에, 모든 블럭은 다른 블럭과 함께 엮이며 세상을 채워나가는 그 순간에만 의미를 지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형태로 이 세상에 던져졌느냐보다도, 타자와 접촉하며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느냐다. 크리스 나이바우어라는 뇌과학자에 따르면, 좌뇌가 자아(ego)를 견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러한 범주화에 속지 않고 세계와의 합일을 인식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던져진 블럭이며, 모든 블럭은 모양이 달라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