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가없고 장황하네 글이
2025.12.31.
올해는 모든 일이 새로웠음에도, 자극이 너무 많아 오히려 각각의 재료의 신선함을 충분히 맛보지 못한 채 전부 지나쳐보내버린 것만 같은 아쉬움이 크다. 오늘이 정말 올해의 끝이 맞긴 한건가? 아직도 내가 벌려놓은 일과 내가 벌리지 않은 일들이 마무리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사실 정신이 없다.
원래는 연말에 내 나이나 년도를 소재로 수학적인 억지 해석을 갖다붙이는 자그마한 나만의 풍습(?)이 있었는데, 해가 갈수록 뭔가 아이디어도 떨어지고 나이를 밝히기도 조금 민망한 느낌이 생겨서 올해는 패스한다. 대신 https://limnum.vercel.app 에 수비학 점성술 사이트를 만들어두었으니 각자 본인의 나이나 생일 등을 입력하여 올해의 운을 대충 점쳐보길 바란다.
정말...되돌아보면 올 한해동안 진짜 정말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갔던 영국 여행(그것도 나랏돈으로)을 시작으로, 온라인 학교라는 완전히 생소한 환경에서 제로부터 시작해서 아무튼간 어찌저찌 시스템도 함께 구축했고, 손 달달 떨면서 교장선생님들 연수도 몇번 하고, (작년/재작년엔 수강생이었던) 교실혁명 선도교사,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강사도 해봤고, 저 먼 나라에서 찾아온 소중한 손님들에게 한국 교육을 소개해보기도 했고, (정작 내 유튜브에 많이 소홀해진 것 같지만) 내 채널이 아닌 다른 채널 운영도 하고, 꼴에 멘토랍시고 영상 제작 강의나 검수도 해보고, 처음으로 책도 내보고(나름 yes24 교육분야 1위 찍음...뭐 딱히 제가 잘해서 된건 전혀 아니지만서두), 신문 인터뷰도 해보고, 원격연수도 찍어보고, 바이브코딩으로 프로그램이나 사이트도 막 만들어보고(아직 갈길이 먼 것 같지만...mei랑 수식싹싹은 계속 디벨롭할거에요), 연구회 분과장도 해보고, 디지털 튜터 사업도 운영해보고(튜터님들 감사했습니다), 처음 학교 들어올 때 가장 걱정했던 ‘인공지능 수학’이라는 과목도 어찌저찌 스스로 만족할만큼은 잘 마무리했다.(인공지능 수학 재밌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거 하나 때문에 정컴 부전공 연수 신청할 만큼.)
여기까지가 sns에 기록된 타이틀들이고 사실 기록하지 않은 일들도 훨씬 많이 있었다. 대혼돈의 전세 계약, 태어나서 처음 겪는 교통사고(사람 아야한거 기준), 소중한 사람과 이런저런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서른 넘게 먹어놓고 한 번은 펑펑 울기도 했으며, 다정함이 기본인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기도 했고, 최근에는 도파민이 부족해서 도형퍼즐 좀 빨리푼다고 지나치게 으스대는 사람들 모임에도 슬쩍 가입했다(별로 달라진 건 없고 단톡방만 3개 늘어남). 몇개의 커다란 연수가 외부 사정으로 인해 어그러지기도 했고, 앞에서 고맙다고 최고라고 하던 사람들이 뒤통수치는 일도 있었고, 당연히 여느 선생님들과 같이 애들 때문에 기쁘고 슬프고 하는 일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달린걸까? 얘기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른 곳으로 새는게 확 느껴져서 급하게 핸들을 꺾어본다. 요번에 수업한 ‘인공지능 수학’ 수업의 가장 큰 테마는 이거였다.
‘인공지능은 어떻게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걸까?’
그리고 교과서가 제시하는 정답을 숫자와 영어를 빼고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모아서 경향성을 나타내는 추세선을 그리고, 실제 데이터와 오차가 적당히 작아질 수 있도록 오차 함수라는 걸 잘 조절해서 예쁜 추세선을 만든다. 이 예쁜 추세선을 만들기 위해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경사하강법’이다. 첨부한 영상과 같이, 말하자면 오차의 언덕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사하강법에 두 가지 함정이 있었으니, 첫 번째는 '고원 현상(Plateau)‘이고 두 번째는 '지역 최솟값(Local Minima)' 문제이다.
(굳이 누가 들어가보겠나 싶지만...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https://gderror.vercel.app에서 체험 가능하다. 모바일 최적화는 안했다.)
‘고원 현상(Plateau)'은 공이 목적지로 안 굴러가고 기울기가 없어서 멈춰버리는 현상이다. 내가 작년에 삶 속에서 가장 고민했던 내용이다. 정체감. 스스로 에너지를 갖고 달려가지 않으면 그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해야 나태와 타성에 침몰되지 않고 새롭다는 감각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가.
아무튼 첫번째 함정은 잘 피해갔다. 도무지 고원이 찾아올 수가 없도록 나 자신을 굴리고 굴리는 환경을 만들었고, 정말 원없이 굴러다녔다.
그러나 두 번째 함정인 ‘지역 최솟값(Local Minima)'는 넘어서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지역 최솟값 문제는 여기 첨부한 영상처럼 진짜 최적의 목적지인 전역 최솟값(Global Minima)에 닿지 못하고, 출발점 주변의 적당히 낮은 골짜기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올해의 내가 좀 그랬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다보니 나름대로 훌륭한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활개치고 다녀도 괜히 헛돌고 맴도는 느낌이 났다. 내가 나의 목적지를 찾아 나아간다기보다는, 주변에서 나를 찾아주는 대로 휩쓸려다니는 느낌이 더 컸다. 말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타성, 이리저리 찾아헤메는 듯 보이지만 결국 적당한 안식처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는 형국이다.
이거는 또 어떻게 해결할까?
인공지능 수학자들은 ’모멘텀‘이라는 요소를 추가한다.
대충 설명하자면 일종의 관성, 공의 무게감같은 걸 좀 부여하는 거다.
그러면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좀 더 실세계에서 공 굴리듯이 가속과 감속이 추가된 형태의 탐색이 가능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아래와 같이 고원 현상과 지역최솟값 문제를 둘다 맛보고 끝날 수도 있다.)
나도 나의 모멘텀을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무게감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는 뭘까?
일단 오늘 드는 생각은 ‘관계’였다.
학기말에 늘 하듯이 수업 평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사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처음 가르쳐보는 과목, 처음 맞는 온라인 환경, 다소 빠듯한 수업별 시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솔직히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업을 할 때도 꽤 있었고, 그냥 뭔가 이 친구들이 오프라인 수업을 들을 때만큼은 이 수업에 진심이 아닐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냉철한 평가를 듣고 내년엔 정신 좀 차려야지 하는 의도로 설문을 뿌렸다.
근데 아니었다.
물론 통계적으로 중학생보다 예의를 더 지키는 나이라서 좋은 것만 말해준 부분이 있을 것 같다만...생각보다 학생들은 수업에 진심이었고 내가 혼자 떠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사실은 이들에게 의도대로 가닿고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나 스스로 아이들한테 조금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 수업이 아이들에게 그냥 인강 틀어놓듯이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하이러닝이 있어서 그나마 학생들 문제풀이 피드백이나 질문같은 건 필담으로 얘기 나누었지만, 마이크 하울링 문제 때문에 발표할 때만 마이크를 키도록 하다보니 아무래도 오프라인만큼 애들이 자유롭게 떠드는 말들을 들을 수는 없었는데, 이게 학생들이 마이크를 꺼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이들이 스피커도 꺼둔것마냥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온라인의 장벽은 사실 내 마음속에만 있던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오늘 무슨 교육장 표창도 받았는데 솔직히 표창보다 애들 리뷰가 이백배정도 기분좋았다. 사실 원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수업이 맘에 들게 된 날은 어디 연수를 해도 영상을 찍어도 좀 당당한데, 설명을 좀 조진(?) 날엔 아무리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고 뭘 해도 약파는 사람이 된 기분이고 그랬다. 결국, 단순히 어떤 성과를 냈느냐 하는 계량적 지표보다는(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일상적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같이 호응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느끼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나의 방향을 결정하는 꽤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학생뿐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유의미한 동료, 연인, 가족이 모두 중요하다.
2026년에는 좀더 본질에 집중하고 관계를 지켜나가는 부분에 무게를 둘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주제곡으로 동물원의 ’변해가네‘를 골라본다. 최근에 우연히 이 노래를 듣다가 많이 놀랐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후렴의 ’너무 쉽게 변해가네 너무 빨리 변해가네~‘ 만 듣고 사실 십수년 동안 이 노래가 지드래곤 삐딱하게 마냥 시니컬한 내용이겠거니 지레짐작을 했었는데, 사실은 진짜 정반대다.
원래 세상에 혼자남겨진 살쾡이마냥 지맘대로 달리던 내가, 너를 만나니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어’지는 그런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