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phrase, Perforated

[서사의 분말상자] 2017.10.30.

by 림팔라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영어단어장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새롭게 배우는 영어단어는 90% 이상이 수학 용어라서, 가끔씩 괴상한 비유를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삶에서 사용될 일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럼에도 가끔 귀에 들어오는 새로운 영어단어들이 있는데, 좀 그럴싸한 단어들을 요즘은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있다. 오늘은 P로 시작하는 두 단어만 이야기해보자. 이 글을 쓰면 핸드폰 메모장에서는 아마 사라질 듯하다.

Paraphrase : (단어 획득 시기 : 오늘 점심 수업시간 발표 조 토론 도중) 패러프레이즈란 동일 어구가 반복되거나 단어가 부적절하게 표현된 경우, 이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는 행위를 말한다. 글을 쓰는 경우에 한 번이라도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이 글을 한 번 퇴고했다면, 윗 문단의 '그럴싸한 단어들을'과 '두 단어만'에서 나타나는 '단어'라는 어휘의 반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전자를 '그럴싸한 녀석들을' 정도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치환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비록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글을 읽을 때의 리듬감을 살릴 수 있고, 의도하지 않은 단어가 자기 맘대로 강조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입장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에 정확히 동일한 단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두 언어가 정확히 같은 하나의 대상을 지칭한다고 하더라도, 언어 자신 또한 동일한 위상을 가지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위험하다.
익숙한 예시로는 '계피'와 '시나몬'이 있다. 물론 이 두 어휘는 실제로 지칭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반론이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일단 두 단어가 정확히 같은 식물(또는 식품)을 가리킨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 경우에도 '계피는 싫지만, 시나몬은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무식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언어는 지칭하는 대상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발화되는 세계와 개인의 경험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계피'의 세계는 수정과와 오래된 전통과자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의 세계, 즉, 필요 이상으로 강한 향취가 일으키는 투박한 자극의 세계인 반면, '시나몬'의 세계는 지친 하루를 끝마치고 난 뒤의 작은 위로로써 존재하는 마키아토 위에 뿌려진 포근한 시나몬 파우더의 세계일 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계피와 시나몬 사이에는 명백한 맥락 차이가 실존한다. 단어의 치환은, 이와 같이 필연적으로 단어의 맥락 또한 변형시켜 버린다.

Perforated : (단어 획득 시기 : 오늘 밤까지 끝내야 할 숙제를 손도 대기 싫어서 멍하니 노트 표지만 바라보던 중) Perforated는 구멍이 뚫려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멍이 뚫린 모든 경우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구멍이 뚫려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된 양말 따위에는 Perforated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Perforated는 점선의 절취선이 뚫려 쉽게 뜯을 수 있게 만든 노트나, 건축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가공된 구멍뚫린 강철과 같은 경우에만 사용된다. 어떠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필요에 의해 뚫려버린 구멍이라는 말이다.
나쁜 습관일지도 모르지만, '구멍이 뚫린다' 따위와 같은 어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구멍 하나 뚫려있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어디 있으랴-와 같은 문장들은 내게 익숙하다. 거기에 더해진 새로운 어휘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제공한다. 내 마음의 구멍들 중 어떤 것은 Perforated 되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가.
사람을 위로하거나 싸움을 중재할 때, 우리는 종종 '아마 그 사람도 너를 상처입힐 생각은 없었을거야.' 한다. 그러나 아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상대방이 상처입을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 보통 그런 행위가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유효한 경우인데, 말하자면 '너는 도통 똑바로 하는 일이 없어!'와 같은 말들은 곧 그런 말이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무언가를 조금 더 똑바로 해내기를 (물론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에 똑바로) 유도할 수 있을 거라고 인식할 때에만 발화된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구멍을 뚫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다. 본인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가 구멍을 뚫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이미 뚫려버린 마음의 구멍을 쉽사리 메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들어진 구멍들 중 어떤 것이 특정 의도로 perforated된 것인지 파악해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그러한 행위는 나의 마음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타인의 의도 또한 다른 관점에서 추측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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