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은 메시지를 함유하고 있다. 어떠한 옷을 입는 것은 곧 특정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의도한 바와 같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대상에 대한 감상자의 해석은 언제나 다양하다. 방금 전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긴 모자를 쓴 사람을 보았다.
Life is too Short Smile (물론 가운데 정렬이다.)
모자에 자수를 박던 사람이 의도했던 원 의미는 아마도 이것이다. 'Life is too short, SMILE! (삶은 너무나 짧으니, 웃어라!)' 그러나 쉼표 혹은 마침표의 부재로, 이 문장은 다르게도 읽힌다. 'Life is too short smile.' 인생은 너무나 짧은 미소이다.
빽빽한 삶의 시간축 속에 진실된 미소를 짓는 순간은 어쩌면 실수 축 위의 유리수만큼이나 적다. (시험기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미소짓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그 순간들은 분명히 실존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에는 그렇지 않은 무리수의 순간들이 월등히 많다. 혼자 있을 때도 히죽히죽 웃고 다니지 않는 이상,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따라서 언젠가 나의 삶을 정의하고 정리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 요약본 안에 미소의 순간은 짧은 찰나조차 포함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렇지 않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미소 하나 없었던 인생으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미소의 순간의 총량은 오히려 미소짓지 않는 순간의 총량을 뛰어넘기도 한다.
미엘린 수초와 랑비에 결절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생물수업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감각을 전달하는 뉴런세포에는 미엘린 수초와 랑비에 결절이라는 것이 있다. 신체의 자극 전달의 효용성을 위해, 수용된 자극은 뉴런의 축삭을 서서히 흘러가지 않고, 축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절연체인 미엘린 수초들을 뛰어넘어, 전체 길이에 비하면 0에 가까운 랑비에 결절에만 도약전도된다. 기나긴 뉴런의 축삭에서 정말로 유의미한 부분, 자극을 전달하는 부분은, 길이가 0에 가까운 아주 작은 부분의 총체라는 의미이다.
삶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개개인의 삶 속에 미소지을 순간이란 전체 인생에 비하면 0에 수렴할 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야말로 그 삶을 구성하는 유의미한 성분이며, 삶이란 그 짧은 순간들의 총체로 표현되는 모양새일지도. (그러나 물론 그 외의 순간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미엘린 수초가 없다면 축삭은 그 정도의 길이를 가질 수 없고, 자극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