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인디-밴드'라는 낱말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즈음이다. 2007년, 중학교 1학년이었을 그 때의 기억은 (당장 저번 주에 뭐 먹고 살았는지도 가물가물한 나에겐) 이상하리만치 정확하다. 지금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우리집 삼성 텔레비젼에서 (얼마 전에 바꿔서 지금은 LG이긴 한데), 어떤 촌동네 축제로 보이는 방송이 틀어지고 있었고, 초대 가수로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 입술이 달빛
가수 이름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라니, 그 당시의 나는 저 사람들이 가수가 맞는지 의아해 했던 것 같다. 가수 이름부터 윤도현밴드나 버즈처럼 깔끔하지도 않고, 무슨 대구시립교향단? 그런 종류의 느낌이라서. 아마 그냥 지방행사 다니는 무명가수겠거니 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노래도 좀 조촐했다. 악기는 무슨 음악시간 수행평가 때도 이제 안 쓰는 멜로디언 하나와(사실 그 때도 멜로디언을 불었는지 그냥 반주를 틀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통기타 하나 뿐이고(지금 노래를 들어보면 드럼 정도는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뭐 보였을 리가 없다), 심지어 가사도 정말 별 게 없었다. '입술은 달빛을 먹고 내게 얘기하고 따뜻한 입맞춤을 어어 커다랗고 예쁜 손 포근히 감싸네' 이정도 말고는 1절 내내 띠뚜대~ 헤이헤이헤이~만 하다가 끝나버린다. 들을 때는 그냥 멍하니 흘려보냈는데, 그 멜로디가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나는거다.
그래서 아마 소리바다에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쳐서 나오는 노래를 다 받아서, 그 당시 최신 mp3였던 Yepp YP-T8에 집어 넣었다. (이걸 초등학교 때였나 아빠가 디지털프라자에서 사주자마자 1주일도 안지나서 카메라 기능이 추가된 YP-T9가 출시되고, 이 시점을 기점으로 물건 사는 타이밍에 징크스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건 여담이다.) 이전까지 거기에는 인기순위 탑 100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는데, 미스터투의 하얀겨울, 윤도현의 사랑했나봐, 이수영의 Grace, 뭐 말하자면 그런 곡들이 무더기로 들어있었다. (생각해보면 'AMP-허수아비', '바닐라 유니티-내가 널 어떻게 잊어' 같은 곡들도 들어있었는데, 그 밴드들이 인디라는 건 생각도 안하고 들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이하 소아밴) 1집의 곡들도 모조리 듣게 되고, 이런 노래가 더 없나 찾아보다가 디씨 인디밴드 갤러리같은 곳도 찾아보게 되고, 브로콜리 너마저, 뷰렛, 요조, 한희정, 타루, 오지은, 루싸이트 토끼…끝없는 밴드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벅스 재생목록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이후 더 많은 용량이 필요하게 된 내 mp3는 그 시대 최고의 명기라 불리는 코원 D2 DMB로 바뀌고, 노래를 더 잘 듣고 싶어서 이어폰도 MX400으로 바꾸고, 그 뒤에는 소니 E888로 바꾸고..그런 시절이 흘러갔다.
얼마 전 청춘시대2를 보는데, 가장 꽁냥한 장면에서 갑자기 너무 익숙하고 아련한 노래가 흘러나오더라. '티키붐 티키뱅 티키붐 티키뱅 터지는~'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소아밴의 '사랑'. 오랜만에 옛날 감성에 아련해져서, 이제는 mp3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불법다운받은 128k짜리 mp3파일이 아닌 벅스 FLAC 스트리밍으로(불법이 아니게 되었다 뿐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두 방식이 아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슬픈 사실인데, 이 역시 여담이다.), 소아밴의 노래를 전곡 재생해서 듣던 중.
그 시절 홍대 여신(사실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가 '여싱'으로 축약되고 그게 와전되어 '홍대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웹사이트 널리 퍼져나갔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너댓 명 중 그 대표 격이었던 요조(Yozoh)의 대표곡 'My Name Is Yozoh'가 흘러나왔다. 사실 이 앨범은 요조가 소아밴의 객원 보컬로 들어갔다가 홍대 인디씬의 아이콘으로 팍 떠버리면서 주객이 전도된 것이었더랬다. (그 시절 소아밴 메인 보컬과 요조 사이의 갈등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는데, 나도 졸려서 안봤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버전은 '마이 네임 이즈 요조~ 당신을 사랑해요~ 원하는 걸 줄게요~'라는 후렴구이지만, 사실 Radio Edit 버전은 엔딩 부분의 후렴구가 다르다. '마이 네임 이즈 요조, 언제나 신나는 밴드 소규모,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Psycho say!'라는 가사와 동시에 'Thank you for let me be myself'라는 코러스가 흘러나온다.
'Thank you for let me be myself'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이 한 문장에 내가 그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인디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이유가 축약되어 있는 것 같다. TV에서 보았던 그 사람들은 비록 누군지도 모르고,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유명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이 너무나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된 수많은 인디밴드의 음악들은, 사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너무나 각자 아예 다른 것들이었다. 어떤 노래들은 아주 따뜻했고, 어떤 것들은 아주 어두웠으며, 때로는 가사가 거의 없었고, 때로는 한 노래에 가사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있는가 하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단어들로 약간만 새로운 시선을 이야기하는 가사도 있었다. 그 모든 노래들의 공통점이라고는 굳이 찾자면, 내 mp3에 들어있던 탑 100들 과는 많이 다르고 제각기 자기 맘대로 말하려고 한다는 점 정도였다. 인디-밴드. Independent-Band. 자본의 규제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정의하는 그 시절의 용어였다.
내 인생의 지향점도 (당장 국가라는 가장 거대한 체계의 구성원인 학교 선생님을 꿈꾸고 있다는 것과는 모순되게도) 어딘가에 묶이지 않은, 규정되지 않고 정의되지 않고 완결되지도 않고 해석되지도 않는 고정되지 않은 그러한 종류의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런 곳을 바라보는 이유는, 나 스스로도 알고 있듯이, 나는 영혼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탓이다. 무언가가 창고에 쌓여있어야 하고, 내일에 대한 계획이 (비록 지켜지지 않더라도)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오늘 해야할 의무는 어떻게든 끝마쳐야만 하는 성미를 가진 종류의 인간이다. 그 어느 것도 쉽사리 내려놓지 않는다. 만약 무소유계의 스페셜리스트인 법정 스님이 나와 두 시간 정도 인생 계획을 짠다면 혀를 끌끌대다가 실수로 내게 침을 뱉으실 지도 모를 일이다. 무소유의 미음도 모르는 놈아!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언젠가는 내일의 해야 할 일이라는 짐을 완전히 바닷가에 던져버리고 탱자탱자 놀면서, 'Thank you for let me be myself!'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다른 어떤 의무감도 없이,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 자신일 수 있는 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