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급식체'라는 주제로 국어 논술 문제를 만들다 보니, 입에 아주 이상한 표현이 붙어버렸다. '띠용~~~~~'이라는 조금 과하게 익살스러운 의태어인데, 일반적으로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운 상황을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어휘가 대체 내 혓바닥에 왜 달라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 며칠 간 이 두 글자를 400번 이상은 발화했던 것 같다. 하도 남용하다보니, 주변에서 다양한 피드백이 들어왔는데, 그 중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의 주제를 '띠용'으로 정하게 되었다.
당신은 '띠용'이라는 발음이 한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서 의미를 가진 채 사용된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었는가? 아주 놀랍게도, 다음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띠용(抵用)이란 쓸모가 있다, 유용하다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한테 니띠용~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은 쓸모가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 같다. 이 사실 자체도 재미있지만,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抵(띠)라는 글자의 의미이다. 抵(띠)의 원 의미는 고이다, 떠받치다, 버티다, 저항하다 등이다. 用(용)이야 우리가 알다시피 사용한다는 의미이고, 그러면 띠용은, 사용하는 것에 저항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어떻게 이것이 '쓸모있다'라는 의미로 변모하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抵(띠) 라는 글자 자체의 의미 변모에 의한 현상일 듯 하다. 즉,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버티고 저항하는 존재는, 분명히 어딘가 단단하고 견고하여, 어떤 일에 사용하기 좋은 상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저항하는 존재는 쓸모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있다'라는 어휘는 사용하고자 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한국어 '띠용'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조별 과제로 제시한 제시문 중 (다)를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 합법적 언어(한국에서는 표준어로 지칭되는)는 권력 상층부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한국 표준어의 경우,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명백한 상층부의 이데올로기적 강요가 존재한다. 따라서 대중은 권력 상층부 집단에 의해 정의된 합법적인 언어만을 사용할 것을 강요받으며, 동시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는 검열된다.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서, 합법적인 언어를 그 형태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급식체'란 곧 경직된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권력 투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띠용'이란 어떤 의미일까?
'띠용'은 결코 formal한 용어가 아니다. '띠용'에는 그 특유의 익살스러운 어조와 해학적 상징성이 내재되어 있다.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모습이라니, 어찌 웃음을 자아내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찬사보다도 진실된 표현이다.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상찬(칭찬)의 경우, 사실 대부분 그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순수한 경탄의 의미가 아닌 칭찬, 즉 칭찬이라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목적성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아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진실된 칭찬이 아닌, 그저 공식적인 위치에서의 예의치레 등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떤 행위에 대해 '띠용~'이라고 발화하는 화자는 비교적 진실되다. 그의 경탄은 최소한 어떠한 사회적 규범성 때문에 강제된 것이 아니다. 그의 경탄은 그 대상을 바꾸기 위해 발화될 가능성도 적다. (칭찬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사람은 대체로 본인의 권위를 떨구기를 원하지 않는다.) 즉, '띠용'이란 발화자와 대상, 단 두 존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순수한 경탄의 진솔한 표출이다!
두 언어 모두에서 '띠용'의 발화는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저항의 의미 덕에, '띠용'이 선사하는 칭찬은, 다른 어떠한 칭찬보다도 진솔하고 순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혹시 여러분도, 너무나 놀라워서 입을 다물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띠용'을 외쳐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