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기를 시작하며
글을 쓸 때면 글을 몰랐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없을 때 시장을 가거나 뭔가 메모를 남기거나 혹은 시장에서 사야 할 물건들이 많았을 때 엄마는 서툰 기호들을 그렸다. 매수아(명순아), 뜨부(두부), 콩나무(콩나물), 미쑤가리(미숫가루), 밥무거라(밥먹어라). 구부러지고 일정하지 않은 크기 글자들을 쭉 읽다보면 엄마가 남긴 쪽지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글자가 틀렸잖아."
뜨부가 아니고 두부라고 쓰야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가 엄마의 글자를 바로 잡으려고 하면 엄마는 왜 그게 뜨부가 아닌지 이해를 못했다. 분명 뜨부라고 말을 하는데 왜 발음하는 대로 적지 않고 두부라고 적어야 하는지.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애살이 있었다면 우리가 쓰는 말은 남해 사투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텐데. 저기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뜨부라고 하지 않고 두부라고 한다고 말해주었을 텐데. 이해를 하지 못한 엄마는 그 뒤로도 쭉 뜨부라고 적은 구깃한 종이를 들고 1년 12번이 넘는 제사장을 보러 남해읍내를 쫓아다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네모반듯한 두부만 보면 엄마의 <뜨부>가 생각난다. 두부보다 뜨거웠던 <뜨부>때문에 나는 두부를 제대로 쓸 줄 알았으니.
나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다 알지 못할 수 있다. 제 안의 것을 표현해 낼 수 없는 갑갑함은 어쩌면 상상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명백한 것은 글을 배워야 하는 시기, 엄마는 일제 초등학교 시절, 반대한 할아버지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해 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왜놈 글을 배워봐야 뭐하겠냐고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우리 봉여사는 가난해 학교 문턱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뜻일 게다.
글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아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은 글이 주는 특별한 행위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읽지 않고 쓰지 않는다. 소통이 기호로만 글을 이용하기 때문에 sns에만 집착할 뿐 성장의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드물다. 글을 안다는 것 자체의 경이로움을 옆에 두고도 모른다.
글을 모르는 사람을 너희는 아직 모른다.
뜨부라고 평생 알고 산 할머니가 밤새도록 삼베를 짜며 딸 셋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쓰고 싶은 할머니의 욕망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엎드려 글을 써 내려가는 딸의 뒤통수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너희들은 모른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망인 것을 너희는 아직 모른다. 그런 것들 알기에는 다른 해야 할 일, 혹은 공부해야 할 많은 과정(취업)이 남아 있으니. 그러나 언젠가는 읽고 쓰는 일이 너희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삶이 허허로울 때,
새로운 지혜가 필요할 때,
그리고 내가 너희들 곁에 없을 때
물려주고 싶은 것과 물려받고 싶은 것이 달라서 조금 뚱하겠지만 어느 날 나는 너희들을 귀찮게 달달 볶았다. 애원도 했다.
글 쓰자.................
싫어. 엄마나 해.
볼 때마다 꼬드겼다.
그럼 얼마 줄 건데?
치사한 녀석들. 꼭 결정적일 때 돈을 들고 나온단 말이야. 안 주면 안 한다고 할 거니까 일단 딜은 건다. 한편에 오천 원. 에잇. 안 해.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만원. 둘 다 얼굴이 밝아진다. 진짜? 당연하지. 글도 노동인데 대가를 줘야지. 그렇게 만원으로 결정. 글맛을 물려주려니 돈이 들어간다.
네이밍을 정해 봐.
세 사람의 포옹, 어떻니. 엄마 클리셰적이야. 희망, 포옹 이런 단어는 싫어하는데. 세 사람의 입맞춤?
뭐야. 우리 뽀뽀해? 세 사람의 글 맞춤... 오! 좋다.
그리고 아쏘 공 줌 모임을 끝내고 나니 한데렐라가 이렇게 적어왔다.
스물스물넷 오십 둘의 글 맞춤.
자기네들 나이는 고정하고 내 나이는 내년의 나이로 정했지만 어감이 이렇게 딱 좋단다. 네이밍 확정.
그리고 몇 달 후 803호의 여자들로 네이밍을 수정했다. 제목이 너무 길다고. 이제 한 집에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같이 사는 동안 803호의 여자들로 하잔다. 흐흠, 벌써 의미를 두는구나. 이것만으로도 글을 쓰자고 조른 내 목적은 성공한 셈이다.
엄마와 딸이고 한 집에서 24년을 넘게 살았지만 나는 너희들을, 너희는 엄마를 다 모른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그래도 마음 한 켠은 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너희들을 통해 나를 보고 또 다른 세대를 형성한 너희의 생각을 본다. 지나간 그때의 일들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너희들의 아픔도 본다. 나보다 더 훌쩍 자린듯한 글들에 내심 기뻤다고나 할까.
늘 앙살은 부리지. 돈 줘. 돈을 줘야 글을 써주지. 그리고 쓰기 싫은 주제가 나오면 주제를 바꾸자고 또 앙살을 부렸다. 주제 하나를 정하는데도 한 달이 걸리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다는 말 조차도 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읽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써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좋은 시나 아주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더라도 엄마랑 나눌 수 없었다는 건, 맛있는 음식을 엄마랑 먹어보지 못한 것보다 더 서글픈 일인 것 같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는 건 <뜨부>라는 글을 내가 따라갈 것을. 남해 사투리로라도 엄마에게 편지를 써 볼 것을....., 그런 후회가 이 글 맞춤에 들어 있다고 고백한다.
말이 하지 못하는 것을 글은 미련하게 하고 있는 게 있다. 고백하는 것, 사과하는 것, 약간 머쓱해서 숨기고 있던 것, 마음을 드러내는 것.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또 말보다 글이 더 명확하다는 것.
글을 쓰려면 자신과 마주 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 행위, 나를 자주 뒤돌아 보거나 하나하나 손으로 짚는 것이 얼마나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돈보다 너희들을 더 야무지게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너희에게 글 한편에 돈 만원씩을 주고 온갖 구박을 들으면서도 글 맞춤을 진행한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가 하기 싫은 마음들을 글로 내뱉으며 조금씩 서로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으며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