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 대해

by 양아치우먼


스물, 앨리스

극과 극, 완전 딴판이다. 긍정 모드 일 때 나는 가나슈 케이크처럼 부드럽지만 분노 게이지가 빨간색일 땐 성질이 많이 거칠다. 할머니는 나의 이런 성격을 미꾸라지 소금 흩어 놓은 것처럼 팔딱거린다고 했지만 실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 화가 나면 성격을 못 참아 팔딱거리는 건. 있는 대로 말하면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다행인 것은 밖에서는 정직함을 드러내지 않고 집에서만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사회관계에 문제는 없다. 평범한 성격의 보통사람인 스무 살이란 이야기다.



글 쓰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이다. 친구들이랑 수다 떨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인생 샷도 건지고 싶고,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거품이 부드러운 맥주로 주량 체크도 하고 싶다. 소개팅, 미팅, 팅이란 팅은 다 하고 싶었지만 원하는 것의 반의 반도 못하고 대학교 1년을 보내고 지금은 비대면 강의에 맞먹는 과제를 하느라 벚꽃놀이 한 번을 못 간 청춘이다. 스무 살은 청춘인데, 청춘은 맨날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 하다니.



어쩌다 보니 간호학과에 와서는 외워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사람의 근육과 신경과 뼈와 혈관과 장기들의 이름을 모두 영어로 외워야 하며 심지어 옛날 명칭과 신명칭까지를 구분해 외워야 한다. 그리고 2학년 1학기인 지금은 질병의 증상과 치료방법을 외워야 한다. 엄마는 사람 몸에는 근육이 몇 개나 있어,라고 묻지만 사람의 근육이 몇 개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셀 수 없기 때문에 몇 개인지 모는 것이다.


사람 몸은 대단히 놀랍기도 하지만 대단히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몸에 관한 것들을 공부할수록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대단하다. 그리고 신비롭다. 반응하고 생성하고 만들어내는 인체는 아직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간호학과는 어쩌다 들어왔지만 배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는 이런 성격이다. 일단 수긍하고 나면 그것에 또 푹 빠져 드는 성격.



태움 없는 간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잘 웃고 잘 떠드는 평범한 스무 살. 알바로 돈을 벌어야 사고 싶은걸 살 수 있는 가난하지는 않지만 아껴야 하는 집의 둘째 딸. 앞으로의 시간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 나는 봄의 외출보다 독서실로, 간다. 지금은 더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물넷, 한데렐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직업으로 갖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라고 했지만 좋아하는 것도 부담이 되면 싫어지게 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맘껏 그려내는 것은 좋았으나 이것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 주체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고 비교하며 어떻게 그려야 한다는 압박은, 내가 그림을 좋아했던 감정을 까먹게 만들었다.



여기까지 와보니, 내가 진짜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학을 들어와서도 동일했다. 그림은 내 맘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내에 교수님의 맘에 드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평가를 받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특히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매번 생각해 내는 일은 피카소와 같은 미술천재가 아닌 나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미술교육이다 보니 서양화, 동양화, 조소, 판화, 공예, 사진인화 등 여러 가지를 골고루 배워야 해서 1학년 때는 기름 냄새가 듬뿍 나는 서양화 그림을 그리다가 웩웩거린 적도 있었다. 조소는 온몸에 석고가루를 뒤집어써야 했다.


사람들은 앉아서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는것라 여기겠지만 나보다 키가 큰 캔버스에 하루 종일 서서 스케치를 하고 유화 색칠 때문에 기름 냄새가 온몸을 뒤덮었다. 특히나 조소는 막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소를 한날에는 코에 검은색 가루가 죽죽 나오는 날이 많았다. "왜 유명했던 화가들이 일찍 죽는지 알겠다. 이러다가 우리도 곧 죽을 거 같아 "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었고, 매번 실기실을 청소하는 날이면 모두 몸살이 걸릴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의 진상들을 다 겪다 보니 나는 이 일을 왜 좋아했는지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한 번씩 생각한다. 그냥 품위 있는 직업을 구하고 그림을 취미 삼아했으면 좋았을 걸.



미술로 외워하는 미술 역사 노래는 40가지가 넘는다. 노래로 외워야지만 잘 안 잊어 먹는다고 하는데, 한두 곡도 아니고 40곡이라니, 이걸 또 다 노래로 만든 사람도 대단하다 싶다. 잘못 선택했든 실수이든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길이기 때문에 내가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 후회, 진로 변경 따위 같은 건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 지금은 직진 구간이다. 나의 예민한 장이 예민하지 않기를 관리하며 지금 나는 취업을 위해 시험에 올인하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다.


나머지는 그다음 돌아볼 요량이다. 이 틈에도 글을 쓰라는 엄마는 철부지가 아닐까 싶지만, 글 한편에 돈 만원이면 솔솔 한 알바니. 철자랑 맞춤법이 좀 틀려도 그냥 쏘아 준다. 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살짝 적어 보내는 것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장점이기도 하다. 말보다 엄마는 글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글을 써 보내면 조금 미안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열공 중,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오십둘, 양아치 우먼

그렇게 아픈 일이 없었고 그토록 슬픈 일도 별로 없었다. 다만 매우 기쁘게 성취한 일이 있다면 그건 글쓰기였다. 생활이 어려웠을 때 공모전에서 상금을 노리고 쓴 글이 당선되어 오백만 원이 내 통장에 꽂혔을 때 나는 글도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그 이전부터 나는 글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 하동 세무서에서 주최하는 세금에 대한 글짓기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상식에 참여하려고 엄마와 새벽밥을 먹고 무려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하동 세무서 시상식에 갔다. 어린 눈에 시상식장은 넓었고 제복을 입은 세무서 직원들의 정렬된 몸짓들이 퍽이나 멋져 보였다. 촌부인 엄마와 달리 멋진 어른들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시상식은 어깨를 으쓱 이게 했다.


하필 상품이 세계 위인전이었다. 또 세 번의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모녀에게 세계 위인전의 무게는 무거웠지만 엄마는 아무런 타박을 하지 않고 그 위인전을 가슴으로 껴안아 들었다. 아마도 내가 그 위인들처럼 세계적으로 뛰어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읍내 짜장면 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짜장면을 먹었다. "네가 글을 잘 쓴 게 을매나 좋냐?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너를 보고 박수를 다 치고." 엄마는 위인전의 무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에 대한 기특함이 엄마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위인전을 껴안고 왔으나 나는 위인이 되지 못했고 다만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돈을 벌기 위해 두 번째 상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짜장면 대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다음에도 상을 받았고 나를 위해 옷을 샀다. 글을 쓰고 난 뒤 상금이란 경제적 보상은 나의 존재를 인식케 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리고 낙선하는 글도 생겨났다. 더 많은 애정을 들인 글들도 낙선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망했지만 좌절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상금은 덤으로 오면 괜찮은 것이었고 어느덧 쓰는 행위가 나를 지키고 있었다.


시부모님과의 30년 된 동거, 아이 셋의 양육, 25년 동안의 워킹맘. 그 안에 내포된 힘겨움과 고됨과 기쁨과 희열들이 모두 글 안에서 버무려졌다. 글이 나를 살렸다. 글 안에서 나의 숨 쉴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경기에 나를 붙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못된 여자다. 내가 아프거나 힘들면 피곤하다고 자 버린다. 숨기거나 아닌 척하지 않는다. 내 몸이 피곤하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자버린다. 누군가가 저녁을 하거나 아님 시켜 먹거나, 어떻게 되겠지. 일단은 피곤한 내 몸이 피곤하지 않게 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남편도 그 누구도 내가 잠을 잘 때는 깨우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래서 나를 양아치 엄마라고 부른다. 그것도 괜찮다. 어떤가, 엄마라고 다 착한 엄마일 필요는 없으니까. 누군가 위인전을 상으로 주었다면 나는 그 위인전을 바닥에 내팽개쳤을 텐데.



부당한 일에 대해 늘 위인전을 생각한다. 껴안지만 말고 던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때로는 삐딱하게 신발 좀 꺾어 신고 다리 한쪽은 건들 거리며 사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양아치 엄마, 그것도 때론 나를 살게 하는 생존 방식이니 괜찮다. 그동안 너무 착하게만 살아서 조금은 삐딱하게 살아도 신은 아마 용서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쭉 양아치 우먼으로 살아 보려 한다.



착한 여자는 천국을 간다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고 하지 않든가. 살아보니 나쁜 여자도 나쁜 게 아니더라. 나쁘다는 기준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준일 뿐. 어디든 가고 싶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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