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세 번째 글감

by 양아치우먼


오십둘,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콩나물해장국은 파도다.

맑은 멸치 육수에 바지락조개를 품고 바글바글 끊어 오르는 국물.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반들반들한 부추를 한 움큼 넣는다. 쓱쓱 저은 뒤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국물을 한수저 떠먹는다.

크윽.

몸 어딘가에 정박해 있던 걱정의 닻이 꿈틀거린다. 뜨겁지만 시원한 콩나물 국물을 아이 달래듯 조금씩 먹어치운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언짢았던 사람, 심기를 건드렸던 말들, 잘난 놈들의 갑질. 그것들은 금방 쪽도 못편다. 콩나물해장국의 끊어오르는 시원함이 파도처럼 한방에 후르룩 갈겨 버린다.

찰싹!!! 아이고... 시원타.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나는 양식, 그러니까 돈가스나 스파게티나 혹은 스테이크나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여겼다. 결혼기념일 남편이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물으면 여지없이 레스토랑을 짚었다.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불빛 속의 세팅, 달가닥하고 조심스레 부딪히는 접시와 포크의 수줍은 소리들, 그리고 곁들이는 와인. 물론 남편은 우아함보다는 우악스럽게 칼질 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장면은 드라마틱했으나 내장은 불편했다. 분위기는 이상이고 내장은 현실인 셈이다. 한껏 분위기 잡고 나면 라면 국물이라도 한 사발 들이켜야 속이 진정될 것 같았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비싼 탓에 남편에게 내색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느끼해,라고 하면 앞으로 계속 싼 아내. 어쩌다 똥폼 잡는 이 핫한 분위기 조차 날아가버릴 것 같아 그 말을 꾹꾹 눌렀다.


그렇지만 내 내장들은 너무 착했다. 느끼함에 항복해 늘 신호를 보냈다. 이런 말탕구리 같은. 특별한 날 쪼끔 특별하게 칼질은 안 되겠니?



그래도 자존심에 20년은 잘 버텼고, 자발적으로 나는 싼 여자가 되었다. 부부싸움 뒤 화해의 액션,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남편의 운전대를 내가 돌렸다.. 콩나물해장국집으로 가. 남편이 새삼 토갱이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레스토랑 가도 돼. 밥값 아끼려고 그러는 거지. 아저씨 드라마 너무 많이 봤네. 아니라고, 진짜 콩나물해장국 먹고 싶다니까. 내가 진실을 말할 땐 목소리 옥타브가 올라가는 것을 아는 남편은 거듭 또 거듭 물었다.

진짜 콩나물 해장국이지, 콩나물 해장국 맞지.

그래, 어쩔 수 없이 콩나물해장국이다.




매서운 찬바람이 마음 어디에 꽉 들어찰 때가 있다.뭐든 부정적이고 매몰차다. 냉랭하고 무감각해지며 날카로워진다. 내가 통제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로받지 못했거나 충분히 쉬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다.


쓰읍... 후루룩.....

펄펄 나는 연기를 헤쳐가며 나흘은 굶은 여우마냥 머리를 처박고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바지락과 멸치육수가 만나 우려낸 바다의 깊은 지혜들.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갯벌에서 바지락이 되었구나. 콩나물의 허연 발들은 더 길어야 하는데 짧기만 하다. 머리에서 김이 난다. 온몸이 뜨끈하다. 뭐가 어땠는데. 뭐가 문제였는데....


헤헤, 결국 내 마음이 그랬네. 그냥 저렴하고 단순한 여자가 되어 헤헤거린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콩나물해장국.

어디서건 저렴하게 나를 위로하는 방법. 한 사발 후루룩하고 나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아줌마로 변신한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싸고 저렴한 내장, 이제야 나는 고백한다. 콩나물과 멸치육수와 바지락의 만남에 나는 꼼짝할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음을.




스물넷,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나는 망나니였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는 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젊기 때문에 마구 놀았다. 친구들과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알딸딸한 기분으로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주말 아귀찜 알바가 11시에 끝나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아침에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또 알바를 하러 갔다.


지독스럽게도 놀았다. 한 달 택시비가 20만 원 가까이 나왔고, 술값을 포함해 용돈은 한 달에 100만 원을 넘게 써댔다. 그달에 벌어서 그달에 노는데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병이 나서 앓는 날에는 응급실을 가 링거를 맞는 날도 있었다. 술을 많이 먹어서 죽겠다고 하니 응급실 의사는 “ 젊을 때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의사는 실실 나오는 웃음을 내 앞에서 숨기지 않았다.



대학교 1~2학년을 그렇게 보내니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었다. 나는 생후 8개월 어린 몸으로 장중첩 수술을 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다. “죽을뻔한 거 살려놨더니 ~ 어릴 때 요놈 수술하는 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 할머니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쳐내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내 작은 몸뚱이를 생각해내곤 했다. 아무 기억이 없어서 내 배에 있는 쭉 그어진 흉터만 떠올린다.



어릴 때부터 약해서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대해 노력하진 않았다. 모두가 그렇듯 젊고 건강할 때는 건강에 대해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탈이 났다. 몸을 아끼지 않고 놀아대고 알바를 해대니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그날도 알바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세시에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이어진 구토와 배를 뒤트는 고통이 잠을 못 자게 만들었다.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장유착이 일어나서 당장 콧줄을 꽂지 않으면 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에 벼락 맞는 소리인가?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폭풍 오열을 하면서 간호사와 내 코로 호스를 밀어 넣는 의사를 원망했다. 여기서 콧줄은 장이 붙어 있으므로 긴 호수를 코를 통해서 위까지 넣어 콧줄로 음식물과 공기를 빼내어 장을 뚫어주는 시술이다. 그냥 완전 죽음이다. 콧줄을 위까지 넣을 때 고통은 상상도 못 하고 계속 걸리적거리는 콧줄은 하루 이상을 잠들지도, 편히 시 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해에는 콧줄로 해결이 되었지만, 1년 후 2020년 5월 10일 나는 또다시 장폐색, 장유착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콧줄로 해결이 안 되어 일요일 새벽 3시에 복강경 응급수술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수술 같은 것은 무섭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주 무섭고 매우 아프다. 그 이후로 언제 다시 장유착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과 콧줄과 수술이라는 공포를 평생 지니며 살게 되었다.



건강은 우리 삶에 매우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입원해 있을 때도 옆에 아줌마는 별거 아니라고 매일 이상하게 쑤시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내일이면 집에 갈 거라고 말하더니 위암 말기로 판정나 큰 병원으로 옮겼다. 우리의 평화롭고 조용한 인생에 건강은 무서운 벼락과 먹구름을 몰고 온다.


나는 20대에 갑작스러운 건강위기를 경험하며,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마음껏 술을 먹지도 못하고, 치킨과 햄버거 피자를 배가 터지도록 먹지 못한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우리 일상은 특별하지 않아서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더욱더 특별하다. 나는 내 잃어버린 건강을 찾기 위해 오늘도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 배가 아픈지 체크하고 불안한 마음을 놓지 못한다.



하루하루가 아프지 않고 편히 지나가 줘서 너무나 감사하다. 아프지 않은 하루, 그런 하루가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날이다.





스물,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그때가 내 비번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숫자들의 조합이 많다. 생일이라던가, 가족이 같이 쓰는 휴대폰 번호 뒷자리라던가. 이런 숫자 조합들은 닉네임, 아이디, 비밀번호 등 각종 '~입력하세요.'에 다 쓰인다.


여기서 조심스레 밝히는 비밀 한 가지, 내 통장 비밀번호는 생일도, 휴대폰 번호 뒷자리도 아니다. 내게 의미 없는, 전혀 생뚱맞은 번호 네 자리다. 이 생뚱맞은 번호 네 자리의 정체는 바로 처음 내 통장을 만든 시간이다. (통장을 대신 만들어준 엄마의 아이디어) 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으며 현재는 통장을 만들어 준 엄마조차 비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순간의 4자리 조합은 내가 어디든 입력하는 특별한 숫자가 되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비번이 되었다.


내가 특별한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슈바이처 위인전을 인상 깊게 읽고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계에 한 획을 긋는 거장이 되는 게 꿈이었다. 어린애 특유의 변덕에 따라 내 꿈도 휙휙 뒤바뀌었다. 고3 때는 내가 바라던 학교에 합격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어느 지방대학의 평범하고 또 평범한 학생일 뿐이다. 내가 특별한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철없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다.

평범해서,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할 수 있다.
생일 또는 휴대폰 뒷자리 등이 통장 비밀번호라면, 아마 개인정보 유출로 비밀번호가 탄로 날 것이다. 하지만 생뚱맞은 조합인 내 비밀번호는 1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을 뚫어야만 맞출 수 있다. 특별하지 않아 0.0001%라는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 특별한 숫자가 존재한다. 현재까지 그 특별함이 유지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두에게 있는 특별한 숫자가 계속 특별해지는 것이 안전이다. 때문에 아무도 내 통장 잔고를 모르는 것이 가능하며 나는 좀 많은 척 뻥 튀길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위대한 의사, 애니메이션 계의 거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특별한 아이며 내 베프에게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이며 여드름 쟁이 남동생을 때리며 충고해주는 특별한 누나다. 내가 몰래 입고 나간 언니 옷을 하필 그날 언니가 입고 나가려고 찾는 자녀의 텔레파시. 나도 언니에게 겁나게 맞는다. 이런 특별함, 나는 거장에 못지않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77억 분의 1의 확률. 우리의 삶은 특별하지 않아서, 역설적으로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오십 둘에겐 콩나물 해장국, 스물 넷은 아프지않은 하루, 스물에게는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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