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서툰것들

이번 생에 여자는 처음이라서

by 양아치우먼



스물넷의 첫 경험은 바로 나,

<K-장녀는 매번 싸운다>

나는 우리 집 첫째다. 그것의 의미는 엄마, 아빠, 할머니 모두에게 나는 첫 경험이라는 것이다. 육아의 처음 대상은 모두 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줄 모르는 엄마 아빠 때문에 충돌이 있기도 했고 엄마 아빠의 육아 실수가 내가 되기도 했다. 생후 7개월 때 장중첩 수술도 그런 의미, 첫아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내 사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쯤인 중학교 이후로 아빠와 많이 싸웠다. 첫째인 나는 아빠한테 무엇이든 첫 경험을 안겨주었다. 친구들과 유행에 맞추어 색색깔 입고 다니던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 아빠는 비싼 패딩을 사면 칼로 찢어버리겠다고 마구 소리쳤다. 나는 아빠에게 멋모르고 대항하고 맞서는 작은 개미의 반항처럼 패딩 왜 안 사주냐고,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고 또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완전 철부지였다. 아빠는 내가 첫아이라서 무엇이든 사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버럭 화부터 내었다. 공부에 필요한 전자사전 조차도 말이다.


지금 생각하건대 그냥 아빠는 모든 게 처음이라서 또 자신과 세대가 다른 나한테 왜 그걸 사줘야 하는지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할머니 손잡고 아빠 몰래 사서 잘 쓰고 다니면 아빠는 모른 척, 동생들에게는 수월하게 사주곤 했다. 첫째는 동생들이 순탄한 길을 걷게 하기 위해 한 몸 받쳐 아빠에게 반항하고 투쟁해야 했다.

아이폰을 처음 샀을 때,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학에 들어가니 너도 나도 대학 신입생이라고 잔뜩 꾸미고 손에는 입학 선물로 받은 멋진 최신 아이폰들을 들고 다녔다. 나는 그것이 매우 부러웠다. 아이폰을 쓰는 것은 왠지 세련되고 시대를 따라갈 줄 아는 20대 같아 보였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10명 중 8명은 아이폰을 썼고 한 친구는 "남자를 소개받을 때 아이폰 스페이스 그레이 아니면 조금 정 떨어져"라고 정확한 아이폰 색상까지 들먹이며 말했다. 나는 그 당시 아빠가 폰 가게에서 최고 싼 "0원" 휴대폰 삼성 보급제 휴대폰이었다. 친구들의 최신 아이폰에 비하면 아주 후져 보였다. 최신 아이폰이 아주 매우 갖고 싶었다. 친구들이 모두 들고 다니니 내 폰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이폰을 통해 나도 세련돼 보이고 20대 성인의 똑똑하고 멋진 어른이라는 것을 마구 뽐내고 싶었다.



그 당시 아귀찜 알바를 통해서 통장이 두둑했던 시절이라 바로 아이폰을 사도 내 통장은 끄떡없었다.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빠한테 말은 해야 될 거 같아 그날 저녁 내 돈으로 아이폰을 사도 되냐고 살짝 물어봤다. 그날 우리 집에서는 전쟁이 났다. 나는 수없는 아빠의 말폭탄에 멍든 전쟁 피해자가 되었다. 아이폰을 사면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삼성은 어떻게 되겠느냐, 남들 따라 무조건 아이폰이라고 좋아하는 니 머리에는 똥이 잔뜩 찼다느니. 어쩜 그렇게 대학을 가도 철이 안 드냐느니 등등...아이폰을 쓰면 안 되는 이유뿐만 아니라 아이폰을 쓰는 모든 사람을 완전 매국노로 몰아간 아빠는 나를 허세에 잔뜩 물든 생각 없는 대학생으로 몰아부쳤다. 말이 아니라 칼을 꽂았다. 나도 지지 않고 아빠에게 험한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아빠의 말에 순종하는 착한 딸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빠 보란 듯 폰 가게에서 협상하여 최신 아이폰을 현금 90만 원 퉁으로 바로 결제를 해버리고 왔다. 폰팔이한테 순진하고 멋모르는 손님으로 약간의 사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폰을 사낸것이 좋았다. 그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 말 잘 듣는 순종적인 착한 첫째 딸이 되지 못해 미안해.
그 이후 아빠는 조금 변화하여 둘째 동생한테 자발적으로 폰 가게에 같이 가 최신 아이폰은 아니더라도 가격이 약간 낮은 아이폰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엄마도 큰 힘듦 없이 아이폰으로 바꾸었다. 내가 그때 투쟁의 힘으로 샀던 아이폰은 내가 최신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막내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이제는 아빠 본인도 아이폰을 써볼까라고 한다. 더 늙기 전에 젊은이들의 감각을 따라가 보려는 맘으로.

그저께 최근에 130만 원가량 최신 아이폰을 구매했다. 물론 아빠 몰래. 아빠가 알면 미쳤다고 또 철이 없다고 소리 칠 것이다. 아빠의 자녀 첫 경험인 나는 매번 무엇을 사던 투쟁 해야 한다. 다른 아빠들도 이러나 항상 궁금했다. 처음의 경험은 힘든 일이다. 처음 뒤에 오는 것들의 경험은 충격이 줄어들어 더 수월해진다. 변화라는 것은 어디서든 쉽지 않다. 아빠와 나는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싸우고 또 적응하고. 그리고 인정하며 살아간다.
아빠 또 사고 쳐서 미안해요 ~ 그렇지만 꼭 사고 싶었어요, 사랑합니다.

아빠의 첫째 딸이라서 참 고마워요.




스물, 핵폭탄 딸입니다.


20년 차 딸입니다. 매일 3시간씩 약 10년을 훈련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에 따르면 저도 '딸'이라는 분야에 있어 이미 전문가가 되어야 할 텐데요.. 여전히 '딸' 분야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가족분들도 각자의 분야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고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는 그런 존재라고 인식했습니다. 특히 엄마는 제가 어떤 투정과 짜증을 부려도 화를 내지 않아서 항상 웃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딸 11년 차쯤일까, 잠자던 엄마 머리맡에 놓인 안경을 제가 그만 밟고 말았습니다. 당시 엄마는 시력이 많이 좋지 않아서 안경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든 정도였습니다.(다행히 지금은 수술을 해서 안경을 쓰지 않습니다.) 자고 있던 엄마는 안경을 밟는 소리에 깼고 눈앞에 벌어진 참사에 화를 냈습니다. 아마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엄마가 최고로 화낸 순간 top 3에 들지 않을까 합니다. 화를 잘 내지 않던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에 많이 속상해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나에게 화를 냈다.'라는 순간에만 사로잡혀 괜히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한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앙살 부릴 때 모습이 그대로 엄마와 똑 닮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목소리는 빠르고 톤은 높고 주먹으로 벽을 치기도 하며 마구마구 성질을 부리는 모습. 빵.... 하고 핵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파.



저의 별명은 핵폭탄입니다. 집에서 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핵이 터지면 지구는 무사하지만 가족은 무사하지 못합니다. 핵이 내는 성질이 어머어마하거든요. 나이가 제일 많은 스물넷은 제가 성질을 낼 때마다 '핵폭발한다' 1,2,...... 하며 카운트다운을 합니다.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동생이 가져가서 함부로 한다든지. 내가 먹으려고 숨겨두었던 아이스크림을 다른 사람이 먹어 버렸다든지. 요 최근에는 공부해야 하는데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상황, 가기로 했던 아르바이트가 코로나로 취소되면서 성질이 빵 하고 터졌습니다.



그러나 핵을 터뜨리는 행위는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기분을 그대로 다 드러내는 행동이며 아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을 한번 터트리고 나면 아주 많은 자괴감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옵니다. 핵담당을 벗어날 것이라는 다짐은 늘 하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밖에서는 안 그러는데 집에서는 성질을 다 드러낸다고 내가 이중적으로 느껴진다고 엄마에게 말을 하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집에서까지 감정을 숨기면 스트레스받아 죽는다고 합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위안을 받았습니다. 물론 얼마 뒤 당근 직거래 실패로 핵은 또 폭발했지만요.



딸 20년 차가 된 지금은 부모님이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저와 같이 사소한 일에 짜증 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딸 11년 차에 들었던 엄마의 분노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제가 딸이 처음이듯,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일 것입니다. 의도치 않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의 핵폭탄 횟수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타고 난 핵폭탄을 숨기고 있다가 가끔씩 드러내는 엄마를 보며 저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저도 완벽하게 숨길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생에 가족은 처음이라서 미숙합니다. 동시에 처음이라서 더욱 소중하기도 합니다. 저도 연차에 상관없이 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노래를 덧붙입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저를 비롯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나 기숙사 붙었어. 3월이면 갈 수 있어.... 그니까. 있을 때 잘해.




오십 둘의 첫 경험, 내가 경험한 성희롱

담당계장의 커피를 타는 것은 주로 그 팀 막내들의 일이었다. 일명 커피 셔틀. 여직원들은 주로 개인컵을 썼지만 남자 직원들은 종이컵을 썼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또 아는 손님이 오면 또 한 잔. 탕비실을 드나들지 않는 계장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매번 쓰레기로 버려지는 종이컵도 안타까웠다.


그날은 점심시간이었다. 식사 뒤 보통은 팀원들과 시청 근처를 산책하는 게 일반코스였지만 그날따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팀원들에게 일이 많아서 먼저 사무실로 들어간다고 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직원이 자리를 비울 때는 사무실 불을 다 꺼놓는 터라 약간 컴컴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의자에 반쯤 드러누워 있던 계장님이 보였다. 나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 일어나면서 계장님께 물었다. 커피를 달라고 했다. 저기 어디쯤에도 직원이 있었기에 안심했다. 커피를 타서 전달하는 순간 그놈은 양손으로 내 손을 쓰윽 훑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순간 놀래서 얼른 손을 뺐다. 이상한 소문이 있더니 이게 그거였구나.


기분이 확 더러워졌다. 더러운 기분을 글로 표현하자면 개똥 밟았을 때 느낌, 개똥을 안 밟아 봤다면 남이 토해놓은 그것들을 밟은 기분. 그것도 안 당해봤다면 잘못도 없는데 난데없이 싸대기를 맞는 기분. 그런 것 까지 경험이 없다면 팀장이 아내랑 싸웠다고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와서 내 조인트를 까는 기분.... 아무튼 그때 기분은 나라를 뺏긴 것처럼 치욕스럽고 모멸스러웠다.


그러니까, 좋으세요?

저는 cc-foot 기분 나쁘거든요.

라고 말학고 싶었으나 아무말도 못했다.


그리고 휑 돌아서 커피를 화장실에 갖다 부어 버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연히 팀의 여자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조치를 한다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 뒤로 일을 하다가 간혹 계장의 눈빛을 살폈다. 여직원들이 치마를 입은 채 다른 직원과 업무 협의를 한다고 허리를 숙이면 여지없이 계장은 여직원의 치마를 힐끔거렸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여직원의 뒤를 가리며 귀띔해주었다. 일을 하느라 몸을 숙이면 지나가는 척 힐끔거렸다. 눈빛에서 묻어 나오는 음흉함. 내가 출장을 간다고 하자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따라온다고 하길래, 놀래서 출장을 연기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내 출장에 동행하려는 움직임은 멈추었지만 여러 면에서 불편했다. 1년 넘게 같은 팀에 있다가 그 계장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직장 내 성희롱 교육을 상하반기마다 매년 실시하고, 성인지 예산을 배정하고 직원 알림을 수시로 띄웠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매번 생겨났다. 가해자는 뭘 그런 것 까지 시비를 거느냐라고 말하고 피해자는 기분은 더럽지만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게 태반이다. 요즘 갑자기 빈번해진 성희롱이 아니라 이전에는 숨겨왔고 말하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 이슈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 올라와야 한다.



우리는 여성으로 겪는 난감한 일들을 더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당신들의 딸이 겪을 일이고 적응해야 할 일임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불이 났을 때 입을 막고 몸을 낮게 숙이고 비상구로 나가야 하는 행동요령을 매번 교육하고 연습하는 것 처럼,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을 때도 그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주무부처에 신고해야 함을 수도 없이 가르쳐야 한다. 솔직히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나도 그때는 그랬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담당 계장인데. 심각한 것도 아닌데. 한번 똥 밟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시끄럽게 하면 나만 귀찮아지는데. 정년도 얼마 안 남았다는데... 가장 큰 것은 이런 일까지 시비 걸면 나만 이상하고 별난 여자로 인식될 거야. 내가 페미라고 자부했지만 그래서 내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이 하찮지만 소중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내 한계를 극복하려 해야한다. 대단한 편견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행동에는 생각과는 다른 결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내가 그렇게 어정쩡하게 무마하고 넘어가는 사이 우리들의 시간은 0.05시간 더 퇴보했다. 그놈의 음흉한 눈빛은 더 날개를 쳤다는 사실. 나도 엄밀하게 말하면 방관자였던 셈이다.


나에게 더 엄중하게 말한다. 너는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사는 용기있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전 06화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