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제 멋대로 쓰다

by 양아치우먼


스물, 나에 대한 근거

언제나 생각한다. 인생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일이라고. 법정에서는 진술과 증거가 필요하듯, 인생에서는 나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는 거창할 필요도 없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사소한 것조차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든지, 우체국 직원에게 글씨가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다든지. 만보클럽 때문에 가보지 않았던 곳까지 산책을 가야만 했다든지.



크고 작은 근거가 나로 존재한다. 그것들이 모여서 나의 자신감을 구성한다. 계속 작은 근거를 찾아 나 자신에게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납득시키는 것. 근거를 매일 줍는 일, 그게 인생이 아닐까.





오십둘, 나의 돈키호테에게

이순신 장군보다 두 살이 어렸다는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팔 한쪽을 잃었다고 한다. 노예생활과 감옥도 갔던 그는 <돈키호테>, 편력기사의 무모함을 무모하게 그린다. 한쪽 팔로 두팔이 있는 우리가 읽기도 힘든 책을 쓰다니....

돌진, 꿈의 시그처가 된 돈키호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가 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꿈이라는 의미를 알지 못할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한 울림을 주목한다. 문학은 이런 힘으로 위대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시공간과 존재를 초월해 연결된 힘을 토해내는 것. 과학은 미래를 이끌지만, 문학은 미래를 이끄는 인간을 이끈다는 것.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예상치 못한 코로나는 우리를 이렇게 가두었지만 우리는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 안에 수많은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말하듯

나에게 말한다.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 알도록 노력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쓰도록 하게.



글은 또 다른 나를 향한 의미라는 것.

내 안의 돈키호테에게 자꾸 말을 건다.





스물넷, 엄마의 페미니즘에 조금 반대한다.

엄마는 임고생인 나에게 글을 쓰라고 재촉한다. 엄마는 요즘 페미니즘에 푹 빠졌다.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빌려와 책상 가득 올려놨다. 설날 때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을 것이라고 미리 빌려놓은 것이다.



"엄마~~~ 밥 차려줘 ~~~~"

"꼭 엄마가 밥을 차려줘야 하니? 네가 좀 차려 먹어."

엄마의 페미니즘은 겉포장에 불과하다.

엄마는 출근하고 일하기만 바빴지 사실상 집안일과는 거리가 멀다. 할머니가 실질적 집안일의 대장으로써 매일 빨래하고 음식하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엄마가 완전히 집안일에 해방된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엄마가 청소를 하거나 명절이 되면 가끔 큰며느리 역할을 하는 것. 아주 억울해한다) 나는 엄마의 기본적인 역할을 거부하며 페미니즘을 외치는 엄마가 굉장히 밉다.



어릴 때부터 가정통신문을 읽어주고 숙제를 체크해주는 엄마, 1년에 한 번 있는 부모님 참관수업에 오는 엄마, 장기자랑이나 학예제에 참여하는 엄마가 매우 부러웠다. 사회생활로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가 있기 마련이었다.



아빠보다 엄마가 바빴기 때문에 엄마의 부재에 익숙했던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라왔지만 어린 마음 한편에는 나도 <전업주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항상 존재했다.



크니깐 조금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직업을 고민하며 결혼을 생각하고 아이를 낳을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 엄마처럼 본인의 인생을 굳건히. 본인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도 엄마의 역할에 다 만족 한 건 아니겠지만.



현재 우리 집은 엄마가 페미니즘을 주장할 만큼 엄마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아빠가 설거지하고 밥을 차려주며, 평일에는 할머니가 식사를. 그동안 엄마는 앉아서 브런치 글을 쓰거나 친구들의 모임에 참가하고 집에 없다. 혹은 일 때문에 늦거나.



명절에도 나와 아빠가 자청해서 튀김과 전을 같이하고 엄마는 튀김을 하다가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가서 잔적도 있다. 심지어 우리 집에 촬영 온 피디님은 왜 할머니가 밥 차리고 있는데 이렇게 스트레칭만 하냐고 놀란 토끼눈을 했다.


나는 페미니즘 엄마보다 밥 차려주는 엄마를 원한다.

여자라서 밥 차려주고 집안일을 해라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외면하는 일들은 할머니나 아빠가 하게 되어 있다. 엄마의 역할에 더 충실하라!!

페미니즘 여성으로 주장하는 엄마의 딸인 나는 불편하다. 엄마의 이중성을 밝히고 싶은 큰딸의 아우성으로 엄마의 페미니즘을 조금은 반대한다.




스스로 힘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으면 안돼요, 절대로.
그 힘을 꺼내서 꼭 쓰시길 바래요.
-글로리아 스타이넘


네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