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머무는 말

가볍고 무겁고 혹은 그립고

by 양아치우먼



스물다섯, 2인의 잔소리

우리 집에는 잔소리쟁이 두 명이 있다. 이 두 명 때문인지 시끄럽지 않을 날이 없다. 1인 남자는 시도때도 없이 잔소리를 시작한다. 주말 아침 일어나면서부터 늦게 일어나느냐, 어제 몇 시에 잤냐. 밥 먹으면서는 시금치도 먹어라, 콩나물도 먹어라, 편식하지 말아라. 그리고 식탁에서 펼쳐지는 주식 이야기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남자 1인의 잔소리는 누군가 자기 물건에 손을 대었을 때 주식 폭등처럼 급상승한다. 남자 1호 물건의 위치를 옮기거나 버렸던 날이면 한 달 이상은 잔소리로 달달 볶여야 한다. 엄마가 키티 칫솔꽂이를 함부로 버렸다가 멀쩡한 것을 괜히 버렸다고 한 달 동안 양치하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 우리는 장난으로 아빠가 죽으면 키티 칫솔꽂이를 같이 묻어줘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무언가 하나 걸려들면 그걸로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세월이 갈수록 아빠의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으로 보아 나이와 잔소리 양이 비례하는 인생법칙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잔소리쟁이는 다른 말로 하면 변덕쟁이, 페르소나를 장착한 여자 1호이다. 기분이 나쁠 때는 우리에게 시비를 걸듯이 잔소리를 톡톡 쏜다. "요새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해?!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임용 붙겠어?" 동생이랑 나는 재빨리 눈치껏 얼른 챙겨서 독서실로 대피할 뿐이다.



그리고 독서실을 갔다가 밤 12시에 돌아오면 그때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상냥한 투로 "아이고 힘들지~? 고생했네~ 간식 좀 먹어~ 쉬엄쉬엄해~ 공부가 뭐 대수라고"라고 말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갱년기의 한 증세일까? 남자 1호의 잔소리 레퍼토리가 일관성이 있다면 여자 1호의 잔소리는 너무도 멋대로다. 맥락이 전혀 없다.



잔소리조차 닮지 않은 두 사람이 아이를 셋이나 낳고 25년을 살고 있는지, 미스터리 한 일이다.



누가 더 괜찮은 잔소리꾼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잔소리꾼 때문에 우리 집은 오늘도 시끄러울 것이다. 엄마는 좋은 말, 곁에 두고 싶은 말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지만 현재 내 곁에 머무는 말은 잔소리다. 그건 행복인지 안타까움인지...


아이유 노래 중에 잔소리라는 노래가 있다. 이것이 잔소리꾼의 맘과 내 맘을 대변해주지 않을까?

늦게 다니지 좀 마
술은 멀리 좀 해봐
열 살짜리 애처럼 말을 안 듣니

정말 웃음만 나와
누가 누굴 보고 아이라 하는지
정말 웃음만 나와

싫은 얘기 하게 되는 내 맘을 몰라
좋은 얘기만 나누고 싶은 내 맘을 몰라
그만할까 그만하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그만하자 그만하자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 없는데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네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그만하자 그만하자
너의 잔소리만 들려





스물, 말을 줍고 모으며 되새긴다


1. 휴대폰 메모장 속 비밀

글을 손으로 적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로 인터넷을 하는 나에게 그런 일은 어렵다. 내게 글을 필사하는 노트를 가지라는 것은 상상 속 동물을 찾아내라는 것과 마찬가지일처럼 어렵다. 복사하기, 붙여 넣기. 단 두 번의 터치로 끝낼 수 있는 간결함으로 나만의 필사 노트를 만들어냈다. 직접 손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좋은 말과 글을 보면 남겨두고 싶은 것은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까.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꽤나 꾸준히 모아 왔다. 내가 본 드라마에서, 읽은 기사에서, 유튜브 댓글에서. 브런치에서... 다양한 매체에서 낚은 글과 말들은 새롭게 읽을 때마다 내게 물을 주는 기분이 된다.



2. 비밀 한 조각
나는 항상 어떤 선택에 있어 고민이 많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한 번은 이런 내 모습을 본 언니가 말했다.
"그런 건 좀 알아서 해라. 혼자 결정을 못해?"
언니의 일침으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는 나를 보면서 소심한 겁쟁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만 하다가 놓친 일이 대체 몇 개인지..


며칠 전에는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다.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미래의 불확실함과 나에 대한 불신이 합쳐져 나를 괴롭혔다.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서야 고민에서 벗어났다. 돌아보니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게 아닌가. 쓸데 있는 고민인지, 없는 고민인지... 그때 이 문장이 들어왔다.


하나도 두렵지 않고 하나도 갈팡질팡하지
않는 상태보다 매우 두렵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실수하며 후퇴하는 일이 있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상태가 훨씬 용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고민 많은 인생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을 보고서 나는 용기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매번 고민을 거듭하는 내 모습은 소심한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게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3. 끝으로
아직도 많은 글과 말들이 남아있다. 내 복붙 노트 속 내용들이 소개될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나는 또 혼자 모으고 되새기며 나만의 필사 아닌 복붙 노트를 꾸려나간다. 내가 찢어준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복붙 노트가 나를 가끔은 지탱해 줄 것이라 믿는다.





오십둘, 엄마 닮은 말은 따숩다.


밥은 먹었냐.

서른 번을 통화하면 엄마는 서른 번을 이렇게 물었다. 나를 걱정하는 말.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으라는 말. 언제나 나를 챙기는 말... 그 말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김이 폴폴 나는 밥처럼 내 안에 들어와 따숩고 배가 불렀다.


상담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도 나는 맨 처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식사는 하셨어요?

낯선 눈빛을 가진 사람들은 이 말에 경계를 자주 낮추었다. 먹고살만하지만 자신의 끼니를 걱정해주는 안부조차도 인색한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사람을 은근하게 몽실하게 사람의 마음을 폭신하게 하는 힘을 가진 말이다.



팔순 다섯의 엄마는 한 달째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물 한 모금조차도 입에 넣지 않는다. 밥 먹어야지. 얼래고 달래도 고개를 흔든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생을 과감하게 중단해 버렸다. 나는 그녀와 곡기를 넣는 싸움을 진행하며 하는 수 없이 콧줄을 꽂았다.


밥은 먹었냐?

다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가장 따뜻한 위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든든하게 지켜준 그 말 때문에 지금까지 이쁘게 잘 살았다.



곁에 두는 말은 이것 하나면 족하다. 말의 매력은 위대함이 아니라 따뜻함이라는 걸, 나의 모든 말들이 우리 엄마들과 닮았기를 바란다.

밥은 먹었어요?


이기주 언어의 온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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