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 무엇 사이

사이: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

by 양아치우먼



스물, 돈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


학원 알바 대타를 가줄 수 있냐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전에도 친구 부탁으로 대타를 간 적이 있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학원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일은 학원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해주고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 오래전에 배워서 기억이 안나는 수학 개념을 학원에 오는 아이들의 나이에 맞게 설명하는 것은 약간 낯선 일이다. 20십대의 뇌세포를 다시 10대로 돌린다는 것은 서툴지만 힘든 건 아니다. 다른 알바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원에 들어가면 벽면 곳곳에 '00고 합격'/'00중 합격' 등등. 우리 학원 애가 이렇게 좋은 고등학교, 중학교를 갔어요~ 벽면이 온통 자랑질로 난리법석이다. 이 학원에 오면 무조건 저런 곳에 갈 수 있는 것처럼. ** 과학고 몇 명 입학! 초등학교 입학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애가 엄마와 손을 잡고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카운터에 앉아서 과연 무엇이 옳은 일인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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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선생님은 학원 카운터 앞에서 애들이 오면 상냥하고 친근하게 다가갔다. 언제나 웃는 낯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음 좋은 분이시군. 오랜만에 간 학원은 모든 것이 똑같았다. 아, 작년과 달리 '2020년 합격!' 종이가 한 장 더 붙었다는 정도?


나는 맡은 애들을 다 보내고 할 일 없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카운터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다가 내 앞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종이컵과 커피, 녹차 등이 들어있었다. 한 잔 하시려나보구나. 원장 선생님은 녹차를 한 잔 타 마시며 학원을 나갔다.


할 일도 없고 폰 배터리도 나가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원장 선생님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내 앞 서랍을 열었다. 방금 드셨는데 설마 나를 한 잔 주시려고 하나? 컵과 녹차를 집는 원장 선생님의 손을 보며 생각했다. 녹차를 타서 원장 선생님은 또 후루룩 마시며 학원을 나갔다.



한 잔 먹을래라든지, 먹고 싶으면 먹으라든지.

그런 흔한 친절은 절대 없었다.



나는 앉아있는 병풍인가? 문득 내가 알바 때문에 저녁도 못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원생들에게는 과하게 웃으며 온갖 친절을 다 베풀면서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티끌만큼의 친절도 베풀지 않는 태도. 돈의 플러스는 친절하고 돈의 마이너스에게는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원장은 진짜 친절한 게 맞나? 이게 바로 자본주의인가. 그래야 지만 이렇게 어리어리한 건물에서 넘쳐나는 학원생을 거느리나?


돈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에서 자본주의와 사람이 주는 약간의 쓸쓸함을 생각한다. 뭉개진 자존감을 견디고 내 통장의 플러스를 가져온다.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일한 대가만으로 아르바이트할 수는 없을까?





스물넷, 꿈과 현실 사이


어릴 때 꿈은 여러 가지였다. 매일매일 미래 어른의 모습은 꿈꾸듯이 바뀌었다. 하루는 패션모델이 되었고 하루는 멋진 비행 승무원이 되었으며 하루는 멋진 연예인이 되기도 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그때 보던 드라마 '궁' 주인공 윤은혜가 되어 어린 맘에 혼자 연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 나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어른이 되면 남자 친구가 있을까? 어른이 되면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화장을 이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까?


항상 스무 살을 기준으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25살이 된 현재는 또 다른 어른을 꿈꾼다. 내가 지금 꿈꾸는 어른은 멋진 선생님이 되어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취를 하며 내 차로 드라이빙하는 나의 모습이다. 아침에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출근하고 퇴근한 저녁에는 필라테스와 같은 나만의 일상을 꿈꾸며 불금을 즐기고 주말을 기다리는 나를 꿈꾼다.


어른은 언제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꿈꾸는 모습을 완성하더라도 또 그다음의 어른을 기대할 것이다. 현재의 어른은 또 내일의 어른을 상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그냥 꿈꿀 수 있는 용기가 대단했다. 무한한 꿈을 가졌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투명한 현실을 깨달으며 한계를 짓는다. 어릴 때 가졌던 겁 없던 꿈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어쩌다 불쑥 도전이란 용기가 튀어오를때도 있지만, 용기는 현실에 맞닿아 금방 사그라들어 버린다. 물에 닿아버린 솜사탕처럼.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 또 언젠가는 세계여행을, 어른이 또 되면 아프리카 봉사활동도 가보고 싶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고 싶다. 메마른 현실에 희망이 시들지 않기를, 겁 없이 튀어 오르는 용기가 주눅 들지 않기를. 언젠가라는 용기를 잠시 지갑에 모셔둔 거라고. 가슴이라는 지갑에 고이 넣어둔 거라고, 내게 말한다.


아직 내 열정은 두둑하다고.




오십, 책과 나 사이


출장을 갈 때마다 한 권의 책을 가방에 넣을까 말까 망설인다. 디지털에 취약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e북도 있는데 종이로 보지 않으면 책을 읽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브런치에서 샐러드 먹지 않은 느낌, 목욕탕 가서 등 안 밀고 온 것 같은. 책은 활자가 머리를 거쳐 가슴까지 도달해 감동이든 감응이든 가슴을 툭 한번 건드리고 나와 나도 모르게 펜으로 쭈욱 줄 긋게 하는 행위를 해야 읽는 맛이 난다.



줄 그은 흔적은 다음에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이동하며 어떤 마음으로 줄을 그었는지기억을 상기시킨다. 가끔 그때의 감응이 되새김질될 때도 있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삼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가가 야무지게 버무려주기 때문에 다시 내 것으로 삼키는 것은 감칠맛이 난다. 글맛이 맞지 않을 땐 대충 삼킨다.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은 그랬다.

나의 감정들이 작가의 글을 빌어 내게로 다시 들어오는 행위. 그것은 나를 재해석하거나 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나를 객관화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아무 때나 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고요함이 배경으로 깔려야 한다. 큰 고민거리가 없어야 하고 분주함, 밀려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끔 저녁 일과를 마치고 혼자 커피숍에서 책을 읽는다. 따뜻한 라떼를 주문해 놓고 책표지를 살피고 서문을 살짝 읽는다. 그때는 작은 설레임마저도 든다. 새 책은 일부러 냄새도 킁킁 맡아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고맙다. 책을 읽는 행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으니까.



책과 나 사이에 펑퍼짐하게 자리 잡은 고요, 평온들을 좋아한다.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등 뒤로 울리는 남편의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 책을 읽고 있는 내 등 뒤를 껴안는 아들의 두 팔, 어느새 내 허리를 안고 내 배를 까며 물어뜯는 딸, 질세라 내 무릎을 베고 눕는 큰딸의 뻐드러짐. 그러거나 말거나 헤드셋을 쓰고 영어 단어를 반복해 외우는 남편의 셋~솄 하는 영어 발음의 교정 소리.....



그러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어느 한 대목을 이야기해주면 금세 귀를 쫑긋하고 가만 듣고 있거나 자기 이야기를 보태는 녀석들. 책과 나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잔잔한 일상은, 일상이어서 좋다. 아이들이 읽을지 안 읽을지 모르지만 좋은 책에는 읽고 난 뒤에 내가 느낀 무엇들을 적어 둔다. 언젠가 이 녀석들이 내가 보았던 책을 읽으며 그때의 나를 알아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흔적을 더듬어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양육과 부양의 관계가 아니라 소통의 관계이다. 이것이 브런치 글을 함께 적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은 말이 전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내뱉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감정을, 생각을, 기억을.... 803호 여자 셋이 브런치로 더 끈끈한 느낌이 드는 건 그 이유 때문이겠지?


책은, 책과 나 사이에는 평온함이 폭신하게 끼여 있어 가장 좋은 한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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