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가 아들에게, 너는 누구여?

아들이라는 위선에 대한 펀치

by 양아치우먼

모티브> 치매가 있는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던 아들은 못 알아보면서 자신의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주는 며느리는 아주 기억을 잘합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새언니의 고생이 눈에 밟히고 아들은 왜 가사노동의 밖에서 서성거리는지, 아들이라는 위선에 대해 한방 날리고 싶습니다.



강한 것을 놓는 것 치매

자신도 모르게 치매가 찾아온 황여사의 나이는 87살이었다. 그녀는 하루가 빠르게 기억을 잃어갔다. 육신이 마르기 전에 그토록 총명하던 기억을 비워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죽고 못 살 것처럼 매달리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을 잊었고, 동기간처럼 지내던 동네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을 잊었으며 점점 자식들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간혹 자신이 낳은 자식이 몇 인지 물었으며 그 자식들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되물었다. 자식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이야기할 때면 황여사 눈은 곶감 물어간 호랑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빛냈으나 고작 하루,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아들 태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황여사의 아들 태규는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른 치매 증상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먹을 것에 집착해 냉장고를 파지도 않았으며 욕을 해대 지도 않았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가 길을 헤매지도 않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황여사는 자주 누워 잠을 잤고 가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억지나 떼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에 아들이라고 대답하는 일은 약간 귀찮기는 했지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이 아내의 불평이라면 불평이었지만 그 정도는 자식 된 도리로 해야 될 일이라고 아내의 볼멘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황여사는 매일 아침 식탁에서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여?"

"엄마 아들요."

"니가 내 아들이라고?"

"예."

그럼 황여사는 이상하다는 듯, 혹은 내가 언제 저런 자식을 낳았냐는 듯한 생소한 눈빛으로 아들 태규가 밥 먹는 모습을 한참을 쳐다보다 겨우 숟가락을 들곤 했다. 그건 마치 밤을 새우고 나면 아침을 열어야 하는 의례적인 행사처럼 매일 반복되었다.

"너는 누구여?"

"엄마 아들."

"내 아들이라고?"

태규는 어머니의 반문에 어떤 때는 대답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밥을 먹었다. 황여사는 무심한 남자의 얼굴을 또렷이 쳐다보며 부엌에서 아침을 챙기고 있는 낯선 여자의 등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도 밥을 묵으라 해라."

"엄마, 며느리. 저 여자가 아니고."

"내 며느리?"

"니가 언제 결혼했는데?"
아들 태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해 봐야 내일이면 똑같이 물어볼 것이기 때문에.



태규는 처음 이런 상황일 때가 당황스러웠으나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서서히 다른 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 세상의 기억을 잊고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태규는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건조한 말들로 어머니와의 아침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애틋하듯 자신에게도 황여사는 더없이 애틋했다. 치매 있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수발하는 것 자체로 자신은 아들 노릇, 그러니까 딸 넷을 낳고 기어이 외동아들을 낳고서 신을 모시듯 아들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쏟아부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자부했다.


덕분에 어머니가 하나둘 모았던 모든 재산은 자신의 몫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어쩔 수 없는 경우

요양원으로 모시더라도 아들의 노릇은 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치매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 따위는 정말 일어날 줄 몰랐지만, 3개월 전 어머니가 자신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태규는 출근을 하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낯설어하던 어머니 눈빛은 태규가 태어나 처음 본 것이었다. 애정 깊고 자혜가 눈치던 눈빛에서 모정이란 감정을 걷어 낸 대리석 타일처럼 매끈 한 눈빛, 그것은 타인의 눈빛이었다. 태규는 그런 첫날은 슬펐지만 그다음 날은 덜 당황했고 일주일이 넘어가자 어머니의 물음에 적응했다.


어머니 자신보다 사랑했던 아들, 자신을 잊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태규에게 충격이었지만, 그렇기에 치매라는 병이 얼마나 위험하고 아찔한 것인지. 어머니를 보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죽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에게 위로를 건넸다.



황여사는 새 모이만큼 밥을 먹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밥때를 놓치면 있는 힘을 다해 낯선 여자에게 언성을 높였다. 치매가 왔어도 본디 갖고 있는 성품은 그대로인지 황여사는 욕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낮게 중얼거렸다.


"나를 굶겨 죽일 작정인겨"

황여사가 치매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밥에 대한 집착이었다. 반찬과 국이 연속해서 두 번 올라오면 황여사는 숟가락을 탁 놓으며 싫은 내색을 했다.


"내가 치매가 왔다고 같은 반찬을 또 주는 모양인디, 내 입은 정확한디. 이람 못쓴다!"

때문에 태규의 아내는 미칠 지경이었다. 매일 다른 반찬을 만들어 내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외식을 하더라도 바깥출입이 힘든 황여사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자주 새로운 반찬과 국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태규의 아내는 그것조차도 아이들 영어 과외를 하면서 수발하기에, 벅찬 일이었다. 얼마 전부터는 요양보호사가 황여사의 목욕을 도맡아 주었기에 그나마 버티고 있었다.

황여사는 가끔 그녀에게 물었다.

이녁은 누구요?

황여사는 태규의 아내를 완벽하게 낯선 여자로 인식했다.


그날도 4월의 봄 햇살이 거실로 얌전히 그림자를 드리운 날이었다.

아침상에 느릿하게 앉은 황여사에게 낯선 여자가 턱받이를 해 주었고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국을 오른손 옆에 두었으며, 계란과 두부와 콩나물 같은 반찬이 서너 개 올라와 있었다.


황여사가 물을 찾자 낯선 여자가 물을 갖다 주었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잔 태규도 느긋하게 황여사 옆에 앉았다. 그런 태규를 또 처음 본다는 듯이 황여사가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여?"

"어머니 아들요."."

"내 아들? 니가?"

"네".

그때도 낯선 여자는 식구들의 시중을 드느라 싱크대 앞에서 엉거주춤 허리를 굽힌 채 재빠른 손놀림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앞서 밥을 먹은 두 아이들의 그릇이었다. 황여사는 수저를 들지 않고 느긋한 눈길로 낯선 여자의 굽은 허리를 바라봤다. 낯선 여자는 한 번도 자신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진짜로 네가 내 아들이 맞냐?
"그렇다니까요, 엄마 아들 이태규!"

순간, 황여사가 숟가락을 들어 태규의 머리를 퍽! 하고 내리쳤다. 놀란 행동에 낯선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이마를 맞은 태규는 이제 어머니가 정신이 어떻게 되었다고. 어머니의 꽉 쥔 숟가락을 보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니는 내 아들이람서 어째 내 밥을 한 번도 안 챙기냐? 저 여자가 맨날 내 밥을 챙기냐고?"

갑작스러운 황여사의 노여움에 태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치매 온 노인네의 힘이 얼마나 센지, 맞은 이마가 얼얼했다.

"엄마!"

황여사는 이내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국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아들이모 아들 노릇을 해야지. 맨날 밥을 넘의 손에 차리게 하고."

억울한 태규는 황여사에게 언성을 높였다.

"낯선 여자가 아니고 어머니 며느리, 내 아내라고."

그러자 태연하게 밥을 떠먹던 황여사가 쇄기를 박았다.

"내한테는 며느리가 없다! 니가 내 아들인께 내 밥은 니가 챙기라. 안그라모 인쟈는 밥도 안묵을란게."



그 대목에서 태규의 아내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치매도 이상한 치매였다. 이상하게 그것만큼은 황여사가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아 아들 태규는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아침상을 차리고 황여사의 수발을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황여사가 수저를 들지 않았으므로. 황여사가 물을 달라하면 태규가 갖다 주는 물만 먹었다. 그것은 마치 지금까지 너를 신으로 모셨으니 너도 나를 신으로 모시라는. 일종의 부채를 받는 당당함이었다.

종종 황여사는 낯선 여자에게 말했다.

"아짐매는 아짐매 집에 가소."

그 뒤로 황여사는 태규에게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고.



#가족의 관계에서 연결선(아빠, 엄마, 아들, 딸, 며느리, 사위)을 지워 버리면 훨씬 더 이성적인 감각이 빛나게 된다.

그 연결선 때문에 누군가 많이 불편해하지 않는지. 우리는 가끔 연결선을 지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족이란 줄을 지우고 하나의 완성된 주체,

인격체로 대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21세기의 가족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변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연결선에 화살표가 꽂혀 다른 사람들의 심장을 겨누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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