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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Sep 14. 2020

언젠가 남해 바래길을 걸을 것이다



착한 늑대와 제주도로

10년 전, 착한 늑대와 단둘이서만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가족여행은 여러 번이었지만 착한 늑대와 단둘이의 여행은 출산 후 오랜만이어서, 사뭇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40대 후반에 들어선 착한 늑대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나와 마찰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미쳤지, 미쳤어? 뭐? 식구가 일곱인데... 회사를 관두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그람 나는? 나는 뭐, 여태까지 맞벌이 하고 싶어 했어? 나는 어쩌라고?"

착한 늑대에게 독하게 쏘아 부쳤다. 그럴거면 헤어지자고 협박까지 하며....그러다 착한 늑대가 좀 안쓰러워졌다. 꽁쳐 둔 비자금을 털어 왜라 모르겠다, 나도 지치는데 같이 여행이나 다녀오자...비행기 티컷을 덜컥 예약하고 후다닥 제주도로 갔다.


순례자의 등처럼

착한늑대는 꼭 한라산을 가고 싶다고 했다.

흠, 한라산 좋지. 그게 뭣이라고? 가자...가.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 착한 늑대도 나도 말이 없었다. 싸우는 사람들 처럼.  진짜 각자의 마음속에서 각자의 주장과 싸우고 있었다.

허락해 버릴까? 그냥 모른 척 받아 줄까?

늦가을, 정상으로 오를 수록 산은 청명했다. 우주의 끝이 있다면 그기로 곧 손이 닿을 것처럼 투명했다.

산티아고는 못가봤지만 순례자의 등 처럼 그냥 걷고 걸었다. 상념의 무게가 배낭 안에서 꿀렁꿀렁 했지만 깊은 침묵으로 우리는 이것들을 꽁꽁 싸맸다. 흘러 나오면 안되는 김치 국물처럼.



 다음 날, 올레 길을 걸었다. 아마도 6코스와 7코스였을 거다. 서귀포에서 멀지 않았으니.

그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덕분에 올레길에 사람 하나가 없었다.

우리 둘은 비옷을 입고 걷다가 파도가 치면 둘이서 미친듯이 입을 모아 고함을 질렀다. 그러다가  춤을 추기도 했고, 달리기도 했다.

허연 비닐로 식당 행색을 낸 볼품없는 식당에서 허기진 배로 해물라면을 들이키면서 너무  맛있어 혼이 나갈것 같다는 추임새에 정신나간 사람 처럼 깔깔웃기도 했다.


20대처럼 많이 까불고 자주 웃었다. 한라산이 무겁고 진중한 것이었다면 올레 길은 가볍고 유쾌했다. 점차 육지의 것이 가벼워 지는 경험. 이상하게 웃어지더라, 그게 걷는 것에서 비롯된 치유의 효과였다.


또 걸었다. 비가 그친 어느 벤치에서는 비옷을 벗고 벌렁 누워 잠을 잤다. 피곤한 탓이었는지 30분을 넘게 잔거 같았다. 그 뒤로 숙소까지 또 걸었다. 차를 렌트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거나 걷은 방법밖에..... 걷는 제주도도 나름..


서귀포 <리사의 집>에 숙소를 정했다,

주인 아저씨가 게스트하우스 수리에 필요한 용접을 하지 못해 고민이라는 이야길 듣고 남편이 훌륭하게용접을 해주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부부와 함께 저녁과 막거리를 마시게 되었다.


아저씨가 일본과 거래하는 무역회사를 다니시다가 딱 착한늑대의 나이에 제주도로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이전했는데, 지금 너무 심심하다고.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남편의 고민에 차분하고 넉넉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셨다. 회사를 다닌다는 게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조직이라는 사람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떠나보니 알겠더라고. 

50대는 아직 너무 왕성할 때다. 그만 둘 때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겠느냐. 아저씨 연세가 남편보다 딱 10살이 많았다. 그날 우리는 서로 살아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감에 대한 위로, 제주를 터벅터벅 걸으며 얻은 것은 그것이었고, 격려가 됐다.




올레길을 걷으며 나는 고향, 남해를 떠올렸다.

제주의 바람이 코발트 블루의 힘을 얹어 세련되었다면 남해의 바람은 새색시마냥 보드라운 바람이었다.

제주의 바다가 멀리로만 아우성 치는 묵직한 파도라면 남해바다는 뭍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냥한 바다였다.

그런 남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남해 바래길이 생겼다. 우리집 박물관이 생긴것 처럼 기뻤으나 아직 나는 한 웅큼의 흙도 바닷가에 날리는 억새들도 만나질 못했다. 원래 집 앞마당처럼 가까운 곳은 하찮게 보는 법이니...


지상에 존재하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가장 최고의 방법은 걷는 것이라고...

스트레스, 고민, 또 어떤 그리움들까지도 걷다 보면 그런것 따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는 일,

걷는 것.

어서 오시다, 안녕히 가시다.

느리게 걸으며 오감을 통해 고향의 진짜 속살을 어떻게 발견하게 될 것인지. 남해 바래길을 꿈꾼다

그 희망으로  오늘의 노동을 기꺼이 감내한다. 견디고 기다린 뒤에야 쉼은 더 매혹적이니까.


남해 바래길을 착한 늑대와 갈까? 아님 팀을 꾸려 볼까? 벌써 상상의 설레발을 마구마구 뻗는다.

코로나가 가기만 하면..!!!


있다아입니꺼, 운젠가는...남해 바래길을 꼭 걸을 낍미더. 좋겠지 예?



바래길                    

바래」는 남해 사람들의 토속어로,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뜻하는데, 그때 다니던 길을 「바래길」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래길 (남해여행정보)



                          

남해바래길은 2010년 11월 27일 남해바래길 제1코스(평산항에서 가천다랭이마을 해변, 총16㎞)인 다랭이지겟길을 열면서 현재까지 8개 코스가 정비되어있어 전국의 도보객들이 찾고 있다. 주로 남해지역의 바닷가를 따라 바래를 하러 다니던 해안길, 산길, 들길 등 옛길을 찾아 동네길과 연결하여 구성되어 있으며, 인위적인 데크시설 등은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생태환경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친환경적으로 정비되어 있다.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바래길을 걷다 보면 남해군의 자연자원인 상주은모래비치, 가천다랭이마을, 독일마을 등과 역사자원인 이충무공전몰유허, 충렬사에 이르기도 하고 망운산 노을을 보면서 자연의 환희를 체험하며, 부지런한 남해사람들이 경작하는 마늘밭, 고사리밭을 만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래길 (남해여행정보)





# 꼭 가봐야 할 곳이 또 하나 있다면, 남해 섬이공원. 

여기서 차이코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처럼 아름다운 남해의 사계를 만날  있다.(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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