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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02. 2020

딸이 처음으로 제 그림을  50만 원에 팔았다

격려라는 또 다른 선물


용가리가 딸 그림을 사겠다고 했다

토요일이었고 한 달만에 이루어지는 아쏘 공(아줌마가 쏘아 올린 공) 모임이 진주 수목원에서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부산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한데렐라는 방에서 굴러 나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며 내 발목을 잡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 궁둥이 한번 만져주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초등학교 동창생 용가리 한테서 톡이 왔다. 한 줄의 간단한 안부를 묻더니 1년 전에 내 카스토리에 올린 한데렐라 호랑이 그림을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잉? 그 호랑이 그림은 현재 우리 집 안방문 어귀에서 현관을 향해 힘차게 이빨을 드러내며 2019년부터 놓여 있는 그림이었다.




용가리 말에 의하면 호랑이 그림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으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그림이 잘 없다는 것과 내 카스토리에서 본 그림이 맘에 든다는 것이었다. 또한 호랑이 같은 동물 그림을  현관이나 출입구를  향해 놔두며 나쁜 기운이 못 들어온다는 설이 있어서 그림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워낙 제 그림에 애착이 강한 녀석이라 여전히 거실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는 한데렐라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더니20만 원 이상 주면 팔게 라고 했다. 요 녀석 돈이 궁하긴 하구나. 동양화 그림은 고모가 가져갔고 작은 유화는 삼촌이 가져갔고 기린 그림은 현재 우리 방문 앞에 있다. 용가리에게 그림 사이즈와 가격을 말하니 흔쾌히, 아니 오히려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고맙다고 했다.


용가리에 얽힌 비밀

용가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중학교 3학년까지 한 학교를 다닌 친구이다. 남해 촌구석이니 45명 한 반이 쭉 6년을 같이 다녔고 용가리는 우리 동네와는 좀 떨어진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얼마 전 동창회(매년 기수별로 돌아가면서 체육대회 겸 동네잔치를 주관하는 행사)를 할 때 내가 용가리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마도 기말고사쯤 되었을 것이다, 미혼이었던 초등 담임선생님은 우리 동네에서 자취를 하셨다. 시험 채점을 해야 하는데 아마 다른 일이 많았든지 자취방으로 가져와 채점을 하시면서 나에게 채점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선생님 자취방과 우리 집은 불과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번호를 불러주면 선생님이 채점이 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는 모두 수동이었으니까.

그렇게 채점을 이어가다가 용가리 시험지를 채점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은밀한 눈빛이 되더니 이거는 너랑 나랑 평생 비밀로 해야 한다, 하시더니 용가리 시험지를 보여주셨다. 모든 과목이 만점이었고 과학에서 딱 한 문제가 비스듬한 세로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정답이 4번이었는데 용가리가 1번을 적었다.  용가리가 이번 시험에서 올백을 받으면 아마 앞으로 더 열심히 할 텐데.....


선생님은 용가리한테 올백을 주고 싶다고 하시더니 내 의견을 물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1번을 4번으로 고쳐 동그라미를 만들어주셨다. 시험성적 발표가 있던 날 용가리는 올백으로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선생님이 흐뭇해하셨다. 그 뒤로 용가리가 성적이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격려해주고 싶었던 선생님 마음이 어른이 된 다음 이해된다.


그때 80년대 초반의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부모님들이 농사를 지었기에 공부하라는 말보다 쇠꼴을 비거나 고구마를 캐거나 군불 때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용가리의 성적은 지금의 올백보다 훨씬 갑진 성장이었다.

과외도 지금처럼 인터넷 강의도 없었고 오로지 표준전과에 의지한 공부였을텐데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아마도 잠을 쫓아가며 공부를 했을 터였다. 용가리가 올백으로 상을 받았을 때 나는 누구보다 더 신나게 박수를 쳐 주었다. 용가리가 독하게 해 냈을 공부가 이해되었다.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을 간진 한 채  오랫동안 정말 가슴에 묻어두고만 있었다. 그 선생님은 6학년까지 우리 담임을 하셨고,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애정을 쏟으셨는지 졸업한 지금까지도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참다운 스승님이시다.


용기가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고 격려 해 줄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임을, 그런 격려가 살아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 수 있다.



살다보면 추억도 힘이 된다

솔직히 그 뒤로 용가리 성적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는 남녀로 반이 나뉘었고 사춘기 시절이라 남자애들과 별로 말도 섞지 않고 중학교를 지냈다. 그 뒤로 나는 언니를 따라 진주로 나오면서 친구들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고향 체육대회 주관기수가 되면서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참이었고  나는 이 이야기를 동창회 때 털어놓았다. 원래 동창회는 학교 시절 흑역사가 안주거리가 되는 법이니까.


먹고사는 일이 참 팍팍했는데 네가 해 준 이야기가 또 새로운 힘을 주는 것 같아 고맙다.


친구 부모님이 상을 당하면 먼 곳에서도 달려오는 용가리는 마음이 선한 아내를 만나 동창회도 함께 자주와 어울렸다. 착하고 선한 아내를 만나 낯선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며 사는 용가리에게도 살아감은 올백처럼 어려운 일이었는가 보다.

우리 초등학교 기수중 유일한 여자 회장은 나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모든 행사가 중단되면서 초등학교 모임도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봤던 용가리도 만나질 못했다. 통화를 하니 해외수주가 20% 정도밖에 안된다고 타격이 크다고 했다. 견디면 또 좋아질 날이 올 거니 괜찮다고 한다.


착한 늑대에게 용가리 이야기를 하니 자기는 어릴 때 그런 친구도 추억도 없는데 부럽다고 한다. 아직도 안부를 묻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있다는 게 부럽고  자신은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기껏 해봐야 짱 먹던 녀석이랑 어쩌공 저쩌공....꽁시량 꿍시랑.... 자기 초등학교 때 시절 생각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보다 더 많이 한다.

그렇제....

맞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한 반이었지만 당신은 여섯 반이라고 했지.....

초등학교 시절은 꺼내는 게 아니었어...

제발 신호 좀 보고 가자....


여보, 안드레아 보첼리 목소리 너무 좋지 않아? 가을에 딱 어울리는 음색이더라고? 한번 들어볼래... 재빨리 지니로 sogno를 켠다. 음악 볼륨을 높인다.  차 안에 보첼리의 부드러운 음색이 가득하다. 먼 상념에 빠진 착한 늑대의 기억이 멀리 흐르는 듯하다. 나도 그때 그 시절 선생님의 눈빛 곁으로 가 살짝 앉는다. 용가리의 수줍어하던 때꼬작물 흐르던 얼굴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너의 격려가 또 다른 선물이 될 거야

한데렐라가 미술교육학과를 다니면서 그린 그림을 제일 높은 가격으로 거래했다. 한데렐라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 덕분에 집에 놓여 있던 그림을 보내면서 살짝 눈물을 흘렸다.

내 작품이 이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인가? 하는 마음에 살짝 들뜨기도 했고 그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누군가 구매해 준다는 것에 새로운 격려와 용기를 얻은 것 같다. 사무실에 걸어 두고 싶어 한다는 구매자의 마음이 한데렐라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어 오늘 화물택배를 보내면서 뿌듯하기도 섭섭하기도 한 얼굴이었다.


선생님의 격려처럼 너의 그림 구매도 우리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격려가 될 거라고 믿는다.

딸의 가치를 인정해준 네가 아주 고맙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원치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키울수 있는 법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즉, 스스로 희망을 기획해 낼 수 있어야 한다.

- 가치를 다시 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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