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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21. 2019

수술과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지겹다

수술실 생중계 II

II

 수술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합니다. 집도의, 퍼스트 어시스트, 세컨드 어시스트, 써드 어시스트, 마취 간호사, 마취과 의사, 의대 실습생까지. 이 글은 세컨드 어시스트의 경험으로 각 참여자마다 서로의 역할 및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비인후과 말고도 신경외과, 마취과, 일반외과, 산부인과를 돌면서 수많은 교수님들을 보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집도를 하시는 김병주 교수님을 좋아합니다. 보통 키에, 누가 이비인후과 아니랄까 봐 코주부 아저씨만큼 코가 큽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 어려운 수술에도 절대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처하는 모습이 외과의사의 표본 같습니다.

 교수님이 보라색 수성펜을 든 채, 메스로 절개할 부위를 표시합니다.

 목은 원래 있던 주름을 따라 절개를 해야 나중에 봉합을 하고 나서도 흉터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사람들이 외모를 더 중시하기에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게 트렌드입니다. 다만 절개 부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시야가 좁고 공간 확보가 어려워 의사로서 더 많은 경험과 노련함이 필요합니다.

 교수님이 입을 열었다.

 “이 환자 나이가 어떻게 되노?”

 “43세입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좀 더 절개해도 되겠네.”

 교수님은 메스로 목에 가로로 그은 선 양쪽 옆을 더 늘립니다. 중지 손가락 길이 정도 됩니다. 교수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끄적입니다. 그러기를 네다섯 번

 "오케이. 시작하자. “

 하고 손을 뻗습니다. 그러자 수술방 간호사, 일명 스크럽 널스가 아무 말 없이 교수님 손에 메스를 척하니 얹어줍니다. 김성찬 선생님도 자동적으로 목에 그어진 보라선 아래 위로 손을 얹고서 피부를 팽팽하게 펼칩니다. 교수님의 메스가 환자의 목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동시에 레지던트 선생님의 손도 메스를 따라 이동합니다.

 절개자국은 직선이면서도 동시에 곡선입니다. 메스가 지나간 선을 따라 피부가 갈라지며 붉은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옵니다. 다시 교수님이 메스를 든 손을 내밀어 펴자, 스크럽 널스는 메스를 가져가고 교수님 손에 전기 소작기인 보비를 전해줍니다. 교수는 보비로 출혈 부위의 혈관을 일명 지지기 시작합니다. 피와 살이 타는 냄새가 하얀색 연기를 타고 방 안을 채웁니다.  

 “석션.”

 제가 수술방 간호사에게 말하면서 손을 뻗자 간호사는 제 손에 끝이 약간 구부러진 빨대 크기의 파란 석션기를 올려 줍니다. 석션기는 원래 피나 액체 등을 빨아들이는 것이지만, 공기도 빨아드립니다. 저는 살이 타면서 나는 연기까지 빨아들입니다. 수술실 미세먼지요? 제가 이 석션기를 쥐고 있는 한 어림없습니다.  

 이제는 노란 피하 지방이 보입니다. 피부는 목주름과 나란하게 수평으로 절개했다면, 피하조직은 근육이나 각종 기관들과 평행하게 수직으로 절개를 합니다.

<실제 갑상선 수술 장면: 피부를 수평 절개하고, 피하조직을 수평 절개하는 과정>

 교수님과 수술방 간호사의 손바닥 위에서 보비와 메스는 수없이 자리를 바꿉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오늘의 목표인 밤톨 2개 크기만 한 갑상선이 보입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 부위에 더욱 다가서서 한 손을 스크럽 널스에게 뻗습니다. 스크럽 널스는 조용히 내 손에 가로 5cm, 세로 25cm 크기의 견인기 두 개를 건네줍니다.

<수술용 견인기, 부위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입니다>

 오늘 제가 몇 시간 동안이고, 잡고 있어야 할 녀석입니다. 이비인후과도 벌써 2주가 넘었습니다. 갑상선 수술만 30번 넘게 참가했습니다. 견인기를 절개 부위에 넣고 양쪽으로 넣고 벌려, 수술 부위를 최대한 벌립니다.

 “오, 성훈이. 이제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하는데.”

 교수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원래는 수술방 분위기는 대체로 수술하는 교수님에 따라 달라집니다. 엄격한 교수님이라면 침묵 속에서, 말씀이 많으신 교수님이라면 대화 속에서 수술이 진행됩니다. 김병주 교수님 방의 분위기는 쾌활한 편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레지던트 김성찬 선생님의 특명도 있으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유, 교수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명색이 사람인 제가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야,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안 피곤하나? 어제는 몇 시에 잤노?"

 '네, 어제 현황표 검사받는다고 새벽 네 시에 잤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이비인후과 의국장에게 인턴들 제대로 잠 좀 자게 해 주라고 할 것이고, 의국장은 그 밑에 2년 차에게, 레지던트 2년 차는 1년 차에게 그 말이 전해질 겁니다. 그럼 어제 당직이었던 게으르기로 유명한 정일원 선생님이 제가 잘 수 있도록 해 줄리 없죠. "야, 그런 걸 교수님한테 말하면 어떻게? 네가 눈치가 있니 없니? 왜 그 정도 힘들면 의사 때려 춰야지." 이럴게 뻔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인턴 주제에 교수님께 레지던트 욕을 한 건방진 놈으로 찍힐게 뻔합니다. 진실게임과 비슷합니다. 진실 게임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지는 겁니다.   

 “충분히 잤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졸지 마라.”

 그렇습니다. 문제는 잠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김병주 교수님은 집도의, 김성찬 선생님은 퍼스트 어시스트, 제가 세컨드 어시스트입니다. 저의 역할은 이 견인기를 붙들고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서 있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수술에 따라 다르 지면 짧으면 2시간에서 길면 5~6시간까지. 첫 주에는 열심히 수술 필드를 보면서 갑상선이며, 부갑상선, 갑상선 동맥, 노란 가는 털실 같은 회돌이 후두신경을 눈으로 익혔습니다. 수술방에 나와서는 해부학 책을 뒤지며 제가 본 구조물을 틈틈이 확인하며 공부도 했습니다. 다만 갑상선 수술은 수술 부위가 좁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매일 똑같은 수술만 들어가다 보니 점점 지겨워집니다. 거기다 팔에 잔뜩 힘을 준 채 견인기만 죽어라 벌린 채 잡고 있으니 곧 피곤합니다.

 하루는 이런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하루는 교수님이 수술방을 나가고, 의대 동기인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3년 차인 성국이에게 단 둘이 있을 때 한 번 물어봤습니다. 의대는 같이 들어왔지만, 저는 3년간 군대를 다녀왔고 성국이는 계속 수련을 받아서 이미 인턴에게는 하늘과 같은 레지던트 3년 차였습니다.

 “성국아, 나 사실 수술이 재미가 없어. 나랑 수술이 안 맞는 건가?”

 “아이다. 솔직히 수술방에서 가장 힘든 게  인턴이다. 수술 집도하는 교수가 제일 재미있고, 그다음이 레지던트고, 인턴이 가장 재미없다. 견인기만 잡고 있으니, 재미있을 수가 없지.”

 역시 그런 것이었습니다.

 수술이나, 인생이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지겹습니다.

 수술을 하는 김병주 교수님은 수술방에서 제일 즐거운 표정이었고, 퍼스트 어시스트인 레지던트 선생님은 그저 그랬고, 견인기만 잡고 있는 인턴인 저는 수술이 지루합니다.  

 첫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운이 없게도 갑상선 수술이 계속 이어졌고, 수술방에 있은 지 6시간이 지나자 양쪽 팔이 벌벌 떨리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온몸에 힘을 짜내어 견인기를 벌렸고, 8시간이 경과했을 무렵에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무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몸을 뒤로 젖혀가며 견인기를 잡고 버텼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마치 앞으로 나란히 하면서 벌을 서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러던 도중이었습니다.

 “으응윽.”

 수술하던 교수님도 레지던트도 심지어는 마취과 레지던트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소리를 낸 저도 제 소리에 놀랐습니다.

 “힘드나?”

 “아, 아, 아, 네, 아닙니다.”

 어떤 인턴이 신과 같은 교수님께 사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참아라. 다 끝나간다.”

 제가 보기 딱 했는지, 오히려 교수님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비인후과 인턴 18일 차, 막일도 하면 요령이 생겨서 더 적은 힘으로 더 많은 벽돌을 옮길 수 있듯이 저도 테크닉이 생겨서 팔에 힘 하나 안 들이고 견인기를 잡고 벌린 채 몇 시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도가 터서, 견인기를 손에 쥔 채 서서 조는 초필살기까지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원래 초필살기란 마지막 순간을 위해 남겨놔야 합니다.

 “그나저나 성훈아, 니 아이디가 ‘길 위에 쓰러져 죽으리라.’데, 이야, 나 깜짝 놀랐다. 너무 강렬한 것 아니가.”

 ‘길 위에 쓰러져 죽으리라.’는 내 메일 끝에 붙는 서명입니다. 20대 중반에 한참 여행에 미쳐있을 때, 설정해 놓고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습니다.

 “아, 네. 그게 한 때 여행에 빠져서 여행자로 길 위에서 죽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 너 책도 썼다며?”

 “부끄럽습니다. 본과 마치기 전 마지막 여름 방학에 뭘 하면 의미 있게 보낼까 해서 혼자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는데, 그 이야기입니다.”

 “대단한데. 안 힘들더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교수님도 대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간 적이 있었다는 둥, 자전거에서 여행, 책 이야기까지..........  


 암이 붙어 있는 갑상선을 단박에 떼어내면 좋겠지만 수술은 아주 천천히 진행됩니다. 한 번에 몇 mm 정도 갑상선과 주위 조직을 분리하고(이를 '박리'라고 합니다), 출혈이 생기면 지지고, 혈관이 있으면 묶기도 합니다. 주위에 있는 작은 실처럼 생긴 노란 신경들을 확인과 동시에 손상받지 않게 조심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갑상선을 몸에서 벗겨냅니다. 박리하고, 지혈하고, 구조물 확인하고, 또 박리하고, 지혈하고, 묶고, 정상 조직 피하 하고. 큰 밤톨 두 개만 한 갑상선을 때어내는데 무려 2시간이 걸립니다.

 집도의인 김병주 교수님은 어깨를 움직일 일도 별로 없습니다. 오른쪽 갑상선을 박리한 후, 왼쪽 갑상선을 때기 위해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자리를 한 번 바꾼 것 외에는 팔꿈치, 손목, 손가락 정도만 움직일 뿐입니다. 저는 계속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고, 눈도 빠지는 것 같은데 교수님은 기지개 한 번 펴지 않습니다. 와, 대단하다.

 "성훈아, 니는 무슨 과 할 거고?"

 "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수술 한 번 할래, 외래 환자 40명 볼래?"

 '헉, 수술 한 번에 외래 환자 40명, 아, 어떡하지, 수술은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외래 환자 40명, 교수님이 수술 하루에 2~3건은 하니까 외래 100명 봐야겠네, 끙.'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실감이 확 듭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수술실에서 피가 막 솟구칩니다. 외상이나 응급 수술에서 가끔 일어나지, 이런 정규 수술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의사가 수술하다 실수로 동맥을 건드렸을 때나 그렇습니다. 제가 인턴 때뿐만이 아니라 전공의까지 포함해서 수술 퍼스트 어시스트 및 세컨드 어시스트를 100번 넘게 했는데, 그런 경우가 딱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명은 절단기에 팔꿈치 바로 아래쪽을 다쳤는데 요골동맥이 파열되어서, 지혈대를 풀자 피가 벽까지 닿을 정도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레지던트 선생님이 처음으로 메스를 잡고 편도의 일부를 제거하다가 동맥을 건드렸을 때입니다. 피는 겨우 5~10cm 정도 높이로 뿜어져 나왔지만, 지혈하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렇게 김병주 교수님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2시간 동안 부지런히 쉬지 않고 갑상선을 몸에서 떼어냅니다. 그동안 견인기를 잡은 내 손은 멈추어 있었지만, 저의 혀는 단 1분도 쉬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다했습니다. 평소 견인기만 잡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잘 흘러갑니다.

 "철퍼덕."

 드디어 나비넥타이만 한 갑상선이 김수정 환자 몸에서 떨어져나와 수술 접시에 다겨 나옵니다.

"음, 여기 구슬 같이 암 덩어리가 만져지네."

 교수님은 김성찬 선생님을 보면서

 “자, 마무리 부탁한다.”

 말하고는 수술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수술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교수님 등을 보면서 90도로 인사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수술방을 나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은 정말로 멋집니다.  

 교수님이 나가시자, 그동안 아무 말 없었던 김성찬 선생님이 입을 엽니다.  

 “아, 성훈 선생님. 오늘 완전히 굿. 멋졌어요. 다음 수술도 그렇게 해 줘요.”

 오늘 교수님에 이어서, 김성찬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남은 건 10cm가량의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먼저 수직 절개를 한 부분부터 봉합을 합니다. 봉합은 김성찬 선생님이 하고, 저는 가위를 잡고 한 땀, 한 땀 뜨고 나서 실을 자릅니다. 초등학생한테 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 뭔가 한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커팅할 때는 항상 몰려오던 잠이 오지 않습니다.  

 피부는 팔과 다리면 0.5에서 1cm 간격으로 듬성듬성 봉합하지만, 목은 표피 밑 봉합이라고 해서 피부 안쪽으로 꿰매서 실이 보이지 않게 꿰맵니다. 꽤나 어려운 술기입니다. 끝으로 봉합부위를 소독을 하고, 거즈를 데고 미리 잘라놓은 반창고를 김성찬 선생님에게 하나씩 때서 내밀면 김성찬 선생님이 열심히 붙입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 환자를 깨우는 건, 재웠던 마취과의 몫입니다.

 “성훈 선생님, 5번 방 들어가서 스크럽 서고, PK 쌤도 같이 5번 방 들어가세요.”

 'PK 쌤? 헐, 도대체 소리도 없이 언제 들어왔지?'

 고개를 돌려보니 실습을 하러 나온 의대생이 수술방 한쪽 벽에 붙어 있습니다. PK는 독일어로 poliklinic, 영어로는 student doctor로 병원에서 가운을 입고 실습을 도는 의과대학생의 줄임말입니다. 하지만 아는 건 하나도 없고, 할 줄 아는 건 더더욱 없기에 괜히 나서서 뭔가를 하면 환자를 잡기 십상이라는 뜻에서 농담조로 patient killer, 줄여서 PK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키가 180cm는 되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가 마스크를 쓴 채 벽에 딱 달라붙은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습니다. 와, 정말 대단한 존재라 존재감 자체가 없습니다. 의사가 아니라, PK는 차라리 닌자를 하면 이름을 널리 후세에 남길 수 있을 텐데요.


 저도 몇 년 전에 저랬습니다. 교수님이 레지던트를 끌고 회진을 돌 때, 실습생인 PK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환자 상태 파악이나 교수님이 진료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교수님 앞 길을 막지 않는 것이었었습니다. 회진을 돌 때, 가장 먼저 주치의가 교수님을 안 내하고 교수님 옆과 뒤로 레지던트, 인턴이 호위를 하고 마지막이 PK 순입니다. 실습생인 PK는 가끔 간호학과 실습생이 나올 때나 간신히 맨 뒤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맨 끝이어서, 잠시 정신을 팔고 있다가는 환자를 보고 돌아 나오는 교수님이나 레지던트들과 부딪혔다가는 교수님뿐만 아니라, 레지던트, 같이 실습을 도는 동료들에게까지 메스보다 날카로운 눈빛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실습 성적은 일단 한 단계 내려갑니다. 거기다 일주일도 안되어서 어느 개념 없는 PK가 회진 돌다가 교수랑 부딪혔다고 전병원에 소문이 퍼집니다.


 제가 실습할 때에는 <하얀 거탑>이 유행이었습니다. 하얀 거탑의 주인공인 김영민이 자기 뒤로 수십 명을 이끌고 복도를 가득 채운 채,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하고 근엄한 얼굴로 회진을 도는 것에 자극을 받은  OO교수님은 자기도 한 번 해보자며, 의대생에 간호실습생까지 총동원 20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끌고 회진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환자에게 가서는 환자 얼굴을 한 번 쓱 보고,

 “괜찮죠?”

 하고 묻고는 환자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서 나오셨습니다. 그럴 때, 환자와 보호자의 눈에 비친

당혹감을 그 교수님은 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저는 장갑과 수술복을 벗고, PK와 함께 수술실을 나갑니다. PK는 인턴인 내 뒤를 따라옵니다.  

 처음 보는 PK 였으나, 왠지 측은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복도에서 말을 건넵니다.   

 “많이 지겹죠?”

 “네. 존나 지겨워요. 3시간 동안이나 벽에 붙어 서서 제가 뭐 하고 있는 짓인 줄 모르겠어요. 도대체 비싼 등록금 내 가면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건가요. 솔직히 이렇게 벽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의사 되는 거 맞나요? 전 정신병자가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PK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미친 사람 아니면 감옥에 갇힌 범죄자 말고는 없으니까요.

 저의 질문에 마스크 위로 보이는 큰 눈 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으로 봐서 저보다 나이 많을 게 분명한 남자 PK는 웃으면서

 “아니에요. 나름 재미있었어요.”

 라고 뻔하디 뻔한 정답을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좀 솔직한 학생입니다.

 “뭐, 인턴인 제가 이런 말 할 입장은 안 되지만 원래 옆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가장 힘들대요."

 "아, 네. “

 역시나 경직된 목소리이지만 적극적으로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 대답이 따라옵니다. 당신은 역시나 모범 학생입니다. 마지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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