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Dec 23. 2018

첫 경험, 그리고 실수들

어떻게 의사가 되는가 1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설레기도 하지만, 반대로 두렵기도 하다. 수 십 번, 이 상황을 생각하고 또 연습했지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의 생각이 멈춘다. 멈춘 머리와는 정반대로 심장은 쿵쾅거리고, 그녀를 향해 내민 입술조차 떨린다. 처음이란 언제나 그렇듯 어설프고, 서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사랑은 항상 잘 안된다고 한다.  슬프게도 모든 의사, 간호사에게도 처음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소중한 어린 딸에게 주사를 놓는 저 간호사는 이제 갓 간호대를 졸업하고 어제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우리 딸이 첫 경험일 수 있다. 심한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혈압을 올리는 약(승압제)과 각종 항생제 투여를 위해 필요한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기 위해, 좌측 갈비뼈 2번과 3번 사이로 10센티가 넘는 빨대만 한 주사기를 찔러 넣는 레지던트는 우리에게 말을 안 했지만, 몇 번의 실패만 하고, 아직 단 한 번도 중심정맥관 삽입을 성공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그 레지던트는 단순히 실패가 아니라, 시술 합병증으로 기흉(정상적으로 공기가 있어야 할 폐가 아니라, 폐와 흉곽 사이의 공간에 공기가 차서 숨쉬기가 힘든 질환)을 만들어 지금 머릿속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우리 아버지의 뇌수술을 담당할 신경외과 의사는 나와 우리 형 앞에서, 두개 뇌압을 낮추기 위해 머리를 열고, 피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이미 수많은 경험을 한 듯,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사실은 수십 번의 어시스트 후에 이번이 첫 집도라서 보호자인 나보다 더 떨릴 수도 있다. 

 그 어떤 환자와 보호자도 소중한 자신의 몸, 가족의 몸을 처음으로 시술, 수술하는 간호사, 의사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 의료 처치가 수액 주사를 놓는 것이라면, 여러 번 찌를 확률이 상승하고, 수액을 맞은 부위가 퍼렇게 멍들어, 며칠간 고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시술이 중심정맥관 삽입술이라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부작용은 단순 멍과 통증이 아니라, 기흉, 혈흉이 되고, 심한 경우에는 그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런 처음이 시술이 아니라, 쌍꺼풀 수술일 수도 있고, 충수돌기염(일명 맹장염) 일 지도 모르고, 암수술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시술, 수술뿐만 아니다. 간수치가 높아서 입원한 삼촌을 담당한 내과 전공의가 이번에 파트가 바뀌어서 소화기 내과를 처음 도는 레지던트 1년 차라면, 어떤 검사를 하고, 약을 줘야 되는지 잘 몰라, 회진을 돌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전에 소화기 파트를 돈 동료에게 전화로 물어보거나, 아니면 일주일 전부터 읽었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 가운 오른쪽 호주머니에 꾸깃꾸깃 접혀 있는 인계장을 뒤져서 하나하나 오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 앞에서 당신과 같은 환자들 수 없이 봐왔다는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질병의 증상, 경과, 치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그 의사는 사실 그 질병을 책에서만 보았지, 환자로서는 당신이 처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이 진료실 밖을 나가자마자, 눈앞의 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쉰 다음, 의학서적과 의학 사이트를 뒤져서 당신에게 처방할 약을 찾아보거나, 동료들이 있는 단체 창에 “야, 이런 이런 경우에는 무슨 약 줘야 하노?” “빨리, 빨리, 나 급하다”라고 카톡을 올리기도 한다. 


 인턴으로 병원 근무를 하기 전이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께서는 인턴들 앞에서 동맥 채혈하는 방법(환자의 손등 쪽 손목에 받침대를 대고, 환자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적당히 꺾은 다음(extension), 왼손 2, 3번째 손가락 끝으로 혈관의 박동을 느끼며, 바늘이 들어갔을 때 혈관이 움직이지 않도록 누르되, 혈류가 막히지 않게 적당히???? 누른 다음 연필을 쥐듯이 45도 각도로 찌른 다음, 바늘 끝에 피가 보이면, 살짝 더 찔러 넣고, 동맥의 압력에 의해 저절로 주사기가 뒤로 밀리는 것을 느끼면서 주사기 몸통은 고정시킨 채, 실린지를 뒤로 당기면 된다)뿐만 아니라 지혈법(5분 이상 꽉 눌러주고, 반드시 출혈이 멎었는지 확인하고) 및 주의사항(지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심하면 동맥류가 생기기 한다. 척골 동맥의 맥박이 만져지지 않는 경우, 동맥 천자의 합병증으로 요골 동맥이 손상되면, 손목에 혈류 공급이 안 되기에 손목을 절단할 수 있으므로, 척골 동맥의 맥박을 꼭 확인하고 검사를 해야 한다)을 알려주고, 직접 시범도 보여줬다. 

 보았으니, 이제 해야 할 차례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한 의사 면허증에 찍힌 보건복지부 장관의 빨간 도장 인지가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여자 친구와 나는 짝이 되었다. 사람들이 향수를 뿌리는 곳에서 우리는 피를 뽑아내야 했다. 나는 작은 빨대 직경만 한 요골동맥에 주사 바늘을 찔러 단 한 번만에 성공했다. 이제는 여자 친구 차례다. 그녀는 자신의 혈관보다 1.5배는 두꺼운 휴대폰 충전기 줄만한 혈관에 바늘을 꽂으면 된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172cm, 63kg으로 몸에 군살 하나 없었고, 손목에서 요골동맥이 뛰는 게 보이니까, 그 어떤 케이스도 나보다 더 쉬울 순 없었다. 내 혈관에서 피를 뽑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람의 혈관에서도 피를 뽑을 수 없다. 

 ‘단 번에 성공하겠지. 잠시 따끔하고 말겠지.’

 “자기야 힘내, 난 괜찮아. 난 원래 어렸을 때도 주사 잘 맞았어. 주사 맞고 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래.”

 아내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내 손은 익숙하니까. 잘하겠지.’ 

 ‘허억.’

  손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수능 이후로 찾지 않았던 하느님을 찾게 했다. 거기다 기대했던 피가 나오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어, 미안, 미안. 많이 아프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니.”

 “별로 안 아파.”

 피가 나오지 않는다고 바늘을 바로 빼면, 다시 찔러야 한다. 그러기에 그녀는 내 살 안에 바늘을 넣은 채, 살짝 뒤로 뺐다가 다시 부채꼴 형태로 좌우를 찌르기 시작했다. 2번, 3번, 4번. 주사기에서는 기대했던 피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대신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송 맺혔다. 결국 주사기가 내 팔목에 꽂힌 채로, 교수님을 불렀다.   

 “야, 이거는 바늘이 혈관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뽑았다가 다시 찔러라.”

 ‘하아.’ 

 논산 훈련소에 우리를 죽도로 갈구었던 악마 같던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을 인자 3개이면 살인도 피한다.”

 참자, 참자, 참자, 그리고 웃자.    

 왼쪽 손목 지혈이 어느 정도 되자, 입꼬리만 억지로 올린 채 웃으며   

 “한 번 더 해봐.”

 나는 여자 친구에게 남아 있는 오른쪽 손목을 내밀었다. 

 “미안해.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여자 친구는 내가 내민 오른손을 보자, 방금 전까지 미안해하던 표정은 곧 사라졌고,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변했다. 얼굴에는 ‘해야 된다.’ ‘해내야 한다’는 결심으로 가득 찼다. 알기에 더 아픈 것인가, 두 번째 통증은 첫째를 능가했다. “윽”소리가 나도 모르게 꽉 깨문 어금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토록 바라던 붉은 피는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저번보다 더 많은 식은땀이 내 이마에 맺혔다. 또다시 아내는 부채꼴 방향으로 내 손목을 후벼 되었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내밀 팔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른손 엄지로는 왼쪽 손목을, 왼손 엄지로는 오른쪽 손목을 감싼 채 내 몸의 아픔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클 그녀에게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다 보면 늘겠지.”

 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남자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동맥 채혈에 실패했다는 좌절감으로 얼굴만 붉어졌다.   


 새내기 의사인 인턴이 할 줄 아는, 아니 어떻게든 해야 하는 시술에는 동맥혈 채혈에서부터 각종 관장, 소변줄 꽂기, L-tube(레빈 튜브: 코에서 위까지 연결되는 전기줄 굵기의 튜브) 넣기, 수액 라인 잡기, 채혈하기, 간단한 상처 봉합하기, 복수 천자하기 등이 있다. 

 모두 다, 사람의 몸에 바늘이나 관을 넣는 술기로 간단하게는 몇 초(동맥혈 채취)에서 길어봤자 몇 분 안에 끝나는 시술들조차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야만 비로소 손에 익는다. 모든 시술은 환자에게 통증과 불편감을 유발하고, 일부에게는 출혈과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극히 드물기는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한다. 

 폴리(일명 소변줄) 꽂기는 환자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심한 통증을 주며, 아주 흔하게 요로 감염을, 극소수에서는 요도 파열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킨다. 코로 넣어서, 위로 들어가야 하는 레빈튜드(일명 L-tube)는 대게는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가고, 간혹 입안에서 꼬이며,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서 극히 드물게 기도로 들어가는데, 그럴 경우 확인 없이 기도로 들어간 튜브로 유동식을 투입했을 경우, 음식물이 위가 아니라 폐로 들어가서 심각한 흡입성 폐렴을 발생시킨다.  

 이런 합병증은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능숙한 의사라고 해도, 100%로 완벽하지 않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바이탈을 다루는 과, 즉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과(내과, 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레지던트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술기는 기관삽관과 중심정맥 도관 삽입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술기는 기관삽관이다. 기관삽관이란 호흡곤란 또는 호흡 정지를 겪거나, 의식이 없는 환자(중환자)에게 입에서 기도까지 대략 30cm 길이의 특수 튜브를 넣어서 막힌 기도를 확보하고 폐로 산소를 넣어주는 시술이다. 

 술기는 정말 간단하다. 일단 의식 없는 환자의 머리 쪽에 서서, 환자 입을 벌리고, 낫 모양의 후두경으로 혀를 들어 올리고, 시야를 확보한 다음, 뒤집어 놓은 V자 모양의 하얀 성대가 보이면, 그 사이 기도로 튜브를 넣고 암부백(호흡 정지 시 사용하는 작은 풍선 크기의 백)을 짜서 정확히 기도로 들어간 지 확인한 다음 줄을 묶어 얼굴에 고정시키면 끝이다. 

 모든 준비가 다 된 상태로 시행할 경우, 술기는 20초면 끝이 난다. 입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기도와 식도 두 개 밖에 없기에, 그중에 하나인 기도에 관을 넣는 것은 수학적으로 따지면 50% 확률이다.  

 문제는 어떤 경우는 기관삽관을 수백 번, 한 사람조차도 실패하고, 손을 바꿔서 해도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과 늦어질 경우 치명적인 후유증(적절한 산소 공급이 5분만 안되어도 뇌는 죽어가기 시작한다)과 그 간단한? 술기가 실패할 경우 심지어 사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모형은 정말 쉬운데>

 그만큼 중요한 술기라, 의사가 되기도 전에 의대생들은 수백만 원짜리 인체 모형으로 수십 번 연습을 한다. 그리고 실기 시험도 친다. 앞서 동맥혈 채혈 같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연습을 하면 더 좋겠지만, 목에 후두경을 넣는 순간 의식이 있든 없든 gag reflex(개그 반사)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구역, 구토가 동반되기 때문에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 

 수백만 원 하는 모형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부도 정교하게 사람의 성대와 식도까지 있고, 거기다 조금이라도 후두경을 잘못 들어 올리면, ‘뚝’하고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린다. 바로 성공하는 학생들도 있고, ‘뚝’하는 이빨을 부러뜨리는 학생(후두경으로 얼굴 전체를 들어 올리는 방향으로 힘을 줘야 하는데, 지렛대처럼 후두경 날만 들어 올리면 이빨이 부러지기 쉽다)들도 있지만 아무리 못해도 대게는 2~3번 만에 성공을 하게 된다. 연습은 실전이라지만, 그건 의사에게 적용이 안 된다. 사람은 모형이 아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어렵지?>

 응급실 문 앞이 빨간 불과 귀를 찢는 앰뷸런스 소리로 요란해진다.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4~5명의 사람이 붙은 채로 침대가 들어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화려한 주황색 옷을 입고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위아래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다. 제길. 앞 뒤로 한 명씩 침대를 잡고 끌어오고 있으며, 침대 옆에서는 또 한 명이 핸드볼 공만 한 암부백을 두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짜서 숨을 쉬기를 거부하는 환자의 폐로 억지로 산소를 불어넣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맨 앞에선 대원이 거침 숨소리와 함께 말을 내뿜는다. 

 “길에 쓰러진 50대 남성으로 발견 당시, 맥박과 호흡 없는 상태로 CPR 8분 전부터 하고 있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소생실로.”

 라고 말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사와 간호사들이 침대에 붙어 소생실로 환자를 옮긴다. 이어서  

 “하나, 둘, 셋.”

 구령 소리와 함께 환자를 들 것에서 응급실 침대로 옮긴다. 의료진 중 한 명은 119 대원이 내민 종이를 채 읽어보지도 않고, 왼쪽 아래에 대충 사인을 하고 다시 환자에게로 달려간다. 

 간호사 한 명은 응급 키트에서 에피네프린을 포함한 각종 약물을 재고, 다른 한 명은 제세동기를 환자의 심장에 붙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기관삽관을 위해 후두경에 불이 들어오는지, 30cm 튜브 끝에 달린 작은 풍선(기도에 잘 들어가면 팽창시켜서 목에서 튜브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다)에 바람은 잘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하고, 빨간 석션팁을 준비해 놓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간호사 중 한 명은 환자의 팔에서 수액 라인을 잡고 있다. 

 윗년차 서인호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환자에게로 빠르고 작게 돌린다. (‘이번에는 네가 해봐라.’)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제가요?’)

 이번에는 천천히 위아래로 고개를 흔든다.(‘응’)

 “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옆에서 인튜베이션 하는 것을 많이 지켜보았다. 유튜브도 보고, 이런 날을 대비해 의국에 있는 사람 모형으로 연습도 많이 했다. 하지만, 연습할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살리려고 분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선생님, 제발 저희 남편 살려주세요.”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옆에서 울고 있다.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해보자.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한다.’) 왼손을 박민정 간호사에게 내민다.  

 “라링고스콥.(laryngoscope: ㄱ 자처럼 생긴 후두경)”

 박민정 간호사가 내 손바닥 가운데에 후두경을 얹어준다. 나는 환자 머리 뒤에서, 환자 혀 안쪽으로 후두경을 밀어 넣으며, 동시에 위쪽으로 힘을 가한다. 인형보다는 몇 배나 무겁다. 보여야 하는 후두덮개와 성대는 안 보이고, 침 거품만 가득하다. 

 ‘아이 씨발, 하나도 안 보이네.’ 

 “석션.”

 옆에 있던 박민정 간호사가 넬라톤 튜브를 환자에 입안에 넣고, 입안 가득한 거품과 액체를 걷어낸다. 몇 초나 지났다. 

 “우두득”

 환자의 갈비뼈 연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소리다. 심폐 소생술을 하는 인턴은 더 기분이 나쁘겠지.  

 다시 왼손에 힘을 실어, 후두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후두경의 블레이드 끝에 후두덮개와 그 뒤로 뒤집어진 V 자 모양의 성대가 보인다. 나는 최대한 왼손을 고정시키며, 내 두 눈을 약간 노르스름한 성대에 고정시킨 채, 외친다. 후두경을 든 왼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튜브”

 내 오른손에 튜브가 올려진다. 30cm 앞에 보이는 V자 사이의 1cm 틈으로, 이 새끼손가락만 한 튜브만 밀어 넣으면 된다. 자, 제발, 잘 들어가라. 제발.      


 처음으로 하는 기관삽관을 한 번 만에 성공하는 사람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좋다. 바로 성공하지 못하고, 2~3번 실패하면, 1~2분이 훌쩍 지나간다. 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바꿔달라고 한다. 시도 중에 기도 내부를 후두경 블레이드로 긁어서 출혈이라도 생기면, 젠장이다.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져서, 기계는 ‘삑’ ‘삑’ 거리며 경고음을 울린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가족들은 옆에서 울부짖고 있다. 하얀 가운 안에 하얀 와이셔츠는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심폐 소생술을 하고 있는 동료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환자의 가슴에 떨어져 내린다. 

 심폐 소생술을 하면서 왔기에 이미 환자의 입안에는 침과 구토물로 가득하다. 목이 짧고, 뚱뚱한 환자는 아무리 후두경을 밀어놓고 들어 올려도 성대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어떤 환자는 입을 꽉 다물고 있어서, 석시닐콜린(근이완제의 한 종류)을 주고 나서, 턱을 몇 번 흔들어야 줘야 그제야 잔뜩 수축된 근육이 이완되어 겨우 입을 벌린다. 80세 노인의 하나밖에 없는 이빨이 힘도 주지 않았는데 후두경에 닿자마자 뚝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부러지기만 하면 다행이다. 기도로 들어가면, 난리 난다. 

 가장 황당하고 힘든 경우는 V자 모양의 성대가 눈 앞에 뻔히 보이는데, 이상하게 튜브가 식도로만 들어간다. 정말 미쳐버린다. 

 모든 술기, 수술을 100%로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환자와 보호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담당의사가 가장 뛰어난 술기를 가지고 있고, 경험이 많기를 바란다. 그러면 잘하는 사람만 하면 된다.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세대를 이어져야 하는 의학은 단 한 세대 만에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응급실에서, 기관삽관 성공률이 가장 높은(87~88%), 즉 능숙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 4년 차보다, 성공률이 가장 낮은(68%), 즉 미숙하고 때로는 첫 경험일 1년 차(68%)가 기관삽관을 가장 많이 한다. (전체 케이스 중 1년 차가 시도하는 비율 43%, 3, 4년 차 합쳐서 시도하는 비율 25.3%) 즉, 가장 못하는 의사가 가장 많은 시도를 한다. 1)

 모든 환자와 보호자가 경험이 많고, 숙련된 의사가 자기를 봐주기를 바란다. 능숙한 3,4년 차가 하면 성공하겠지만, 미숙한 1년 차가 하면 실패하는 20%의 경우(기관 삽관의 경우로, 3,4년 차 성공률 88%- 1년 차 성공률 68%)에 자신이나 가족이 속하지 않기를 원한다. 하지만 의사는 20%의 성공률을 포기하고, 그 희생으로 미래를 이어간다. (실제로는 1년 차가 비교적 쉬운 케이스를, 3,4년 차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케이스를 하기에, 그 차이는 ‘20%’가 넘을 것이다.)     

 스승이나 선배의 지도와 백업 아래에서 모든 의사는 첫 경험을 한다. 그리고 기관 삽관이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술기를 손에 익히는 데,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는다. 계단식으로 전체적으로는 S자 곡선을 통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다. 그 경지에 올라봤자, 성공률은 90% 정도에서 멈춘다. 그리고 성공률을 9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평균 47회를 시도해야 한다. 2) 그것도 평균이다. 한 사람은 30번 이후로 95%를 성공한다면, 안타깝지만 다른 한 사람은 100번을 해도 80%에 머무를 수 있다. 

 거기다 성공률이 90%에 달하기 위해 평균 47번의 시도 중에, 의사는 적게 잡아도 10번 이상은 실패한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이 첫 번째 기회에 바로 성공을 하면, 나를 위해 기회를 주신 서인호 선생님께 고맙고, 또 기관삽관을 해낸 나 자신이 뿌듯하겠지. 또한 자신감이 붙어, 두 번째, 세 번째에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실패하면, 아, 그건 미리 생각하지 말자. 

 암부를 짜니, 폐에서는 소리가 안 들리고 환자의 배가 불러왔다. 젠장. 제대로 넣은 것 같았는데. 나는 튜브를 다시 빼서 다시 후두경으로 환자의 혀를 들어 올리고, 성대 사이로 튜브를 다시 밀어 넣었다. 튜브가 깊숙이 들어가면서 성대가 잘 안 보였다. 잘 들어갔겠지. 제발. 제발. 제발. 

 인턴이 암부를 짜는데, 이전과 똑같이 폐에서는 소리가 안 들리고 환자의 가슴이 아니라 또 배가 불러온다. 제엔장. 실패다. 튜브를 빼고, 후두경을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서인호 선생님께 넘겼다. 미안하고 또 부끄러워서 차마 서인호 선생님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서인호 선생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단 번에 기관 삽관에 성공을 했다. 

 내가 실패한 것을 주위 사람들이 다 알았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다. 다들 저렇게 자신의 일에 충실한데, 나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일이 정리가 되자, 서인호 선생님이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지나간다. (‘괜찮아. 다음엔 잘할 거야. 너무 기죽지 마.’)

 당직실에서 만난 병무가 내 표정을 보더니,  “형, 아까 그 아저씨, 목도 짧고 오베스(obese: 비만)해서 쉽지 않은 케이스였어. 다음번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지. 나도 처음에는 몇 번이나 페일(fail)했어.” 

 라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동기 중에 가장 먼저 성공한 병무가 부럽고, 병무는 할 줄 아는데 왜 나는 못하는 거지, 열등감도 느껴진다. 마침 또, 그때 문을 열고 서인호 선생님이 들어왔다. 

 “야, 왜?”

 “아니, 형이 기관삽관에 실패한 것 때문에요.”

 “처음에는 다 그렇지. 나도 1년 차 때,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도 안 되는 경우 종종 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다음에 기회 되면 내가 백업해줄 테니까, 또 해봐. 어, 해봐야 늘어. 한 번 실패했다고 두려워하고 움찔하면 더 못해. 더 해봐야지.”

 “네, 감사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번거 로우실 텐데.”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너도 나중에 아랫년차 들어오면 다 해야 할 일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번의 실패에 사로잡혀 있을 만큼 전공의의 삶은 한가롭지 못하다. 담당하고 있는 수 십 명의 입원 환자들에게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피검사부터 해서, 엑스레이, CT, 복부 초음파를 일일이 확인하고, 하나라도 이상한 결과가 나오면, 그 원인 감별부터 해서 더 필요한 추가 검사, 각종 약물 치료 및 처치를 해야 한다. 거기다 수시로 병동에서 걸려오는 콜에 적절한 응대를 해야 하고, 그 와중에 새로 입원한 환자를 보고, 퇴원한 환자 외래 날짜를 잡고, 외래 내원 시 미리 해야 하는 검사, 퇴원약을 내고, 교수님이 외래에 왔을 때, 한눈에 환자를 파악할 수 있게 알아보기 퇴원 기록을 잘 요약해서 쓴다. 

 환자 보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회의와 발표에 참가하여, 의학의 최신 지견에 귀를 쫑긋 기울인다. (아랫년차에게는 부족한 잠을 채우는 달콤한 취침시간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는 가운데, 실연을 당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듯 불현듯이, 실패한 기도 삽관이 떠오른다. 괜히 어려운 케이스를 맡긴 것 같은 서인호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지만, 원망스럽기도 하고, 기관삽관조차 못하는 의사가 어떻게 바이탈을 잡고, 환자를 살릴 수 있는지, 환자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사로서 자괴감에 빠진다. ‘나를 위해, 환자를 희생해도 되는 건가, 다음번에는 잘할 수 있을까, 또 실패하면 어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또 병동에서 

 “선생님, 8315호실, 폐렴으로 입원한 정성호 씨가 열이 나요. 어떻게 할까요?”

 걸려온 전화에 

 “어, 그래요, 그 환자, 열 안 난지, 3일 넘었는데, 지금 열나면 상태 안 좋아졌을 가능성 있으니, 제가 가서 한 번 보고 오더 낼게요.”

 정성호 씨를 생각하며, 실패를 잊는다. 

 83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정성호 씨, 갑자기 열이 났으니, 기존의 폐렴 악화 가능성이 있으니, 가서 청진하고, 가슴 엑스레이 다시 찍고 CBC(complete blood cell count: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검사) 및 CRP(C-reactive protein: 급성기 반응 물질의 하나로 감염 등에서 증가한다) 검사하고, 다시 한번 혈액, 가래 배양검사하고, 만약에 더 안 좋아졌으면, 항생제 바꿔야 하는데. 갑자기 악화되면, 기관삽관할 수도 있는데.’

 잠시 잊었던 기관삽관이 또다시 악몽처럼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의사로서의 자괴감, 두려움, 자신에 대한 분노까지. 혼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른다. 병동에서 정성호 씨를 진찰하는 동안에는 잠시 사라졌다가, 병실을 나오기가 무섭게 악착같이 다시 달라붙는다. 

 ‘김승호 씨는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심폐소생술 이후, 심장박동이 다시 돌아온 경우) 되었다던데, 내가 단 번에 기도를 확보했다면 김승호 씨의 상태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내가 진짜 의사를 잘할 수 있을까?’

 컴퓨터로 환자 경과기록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할 때도, 강의를 듣는 도중에도 김승호 씨와 기관삽관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불쑥 떠올라, 속이 쓰라리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수십 번의 회상과 그에 따르는 고통 속에서 조금씩 우울감과 자괴감이 약해지는 만큼, 머릿속에는 내가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자리를 차지한다. 

 ‘왼손으로 확실히 머리를 들지 않아서 그런가, 자세 잡을 때 좀 더 턱을 들어 올렸어야 하나, 마지막에 기도가 잘 안 보이는데 튜브 직경을 다음에는 7.5 Fr(직경이 7.5mm) 말고, 7.0Fr(7mm)를 써볼까. 아니면 병무가 말해준 것처럼 목을 아래로 눌러서, 성대를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을 해볼까.’ 

 가상으로 연습도 해보고, 머릿속으로 상상도 하고, 유튜브도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이제 실패에 대한 생각은 점점 줄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못해도 한 다섯 번만 한 번에 쭉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섯 번은커녕 단 한 번도 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 날 이후, 십 여일이 지났다. 너무 바쁜 나머지, 기관삽관에 대해 잊고 있을 때였다.   

 “코드 블루(환자가 심장 또는 호흡이 멎어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 초응급 상태로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간다). 3505호실 코드 블루.” 

 반사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병실로 달려간다. 나에게 기회가 찾아올까, 기회가 주어지면, 나는 오늘 성공할 수 있을까. 무섭고 떨리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기대가 된다.    

  


 뒷이야기들

 그 후로도 몇 번의 실패와 그에 따른 깊은 좌절이 있었고, 재차 연습과 많은 교수님들과 과장님들의 도움 끝에 비로소 기관삽관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가운데, 왼손으로 있는 힘껏 후두경을 들어 올려서, 성대를 노출시키는 대신, 오른손으로 목을 아래로 눌러, 성대를 노출시키는 나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또한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기관삽관을 실패했던 첫 환자인 김승호 씨가 떠오른다.  

 저에게 어려운 기회를 주신, 세브란스 마취과 정선영 교수님, 일반외과 김진웅, 정상준 교수님, P병원 호흡기 내과 김병운 과장님 및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응급의학과 과장님까지, 이 자리를 비로소 감사를 전한다. 

 또한 나의 시행착오로 고통을 겪었을 환자들에게도........  


-위 글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



1) 대한응급의학회지제19 권제1 호

Volume 19, Number 1, February, 2008

응급의료센터에서의기관내삽관의성공률에영향을미치는인자들

Korean Emergency Airway Management Registry를이용한다기관연구

연세대학교의과대학응급의학교실 을지병원응급의학과1, 

가톨릭대학교의과대학응급의학교실2,

한양대학교의과대학응급의학교실3

김승환∙김의중∙최영환1∙김영민2∙오영민2∙최혁중3∙임태호3∙정현수


2)Anesthesiology. 2003 Jan;98(1):23-7.

Laryngoscopic intubation: learning and performance.

Mulcaster JT1, Mills J, Hung OR, MacQuarrie K, Law JA, Pytka S, Imrie D, Field C.


<사진 출처: 셔터스톡, 로열티 지급함>



매거진의 이전글 의사가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