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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Nov 28. 2019

의사가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아이가 열이 나요."

   3살 된 서희가 열이 나서 병원에 왔습니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일명 삐삐머리를 하고 왔네요. 앙증맞고 귀엽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괜찮았는데, 어린이집에서 열이 난다고 해서 마치고 바로 왔어요. 우리 서희 괜찮은 거 맞죠? 애가 자주 아파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설사하거나, 몸에 뭐가 나거나, 최근에 예방 접종을 하거나 그런 건 없죠?"

 "네, 아침까지도 멀쩡했어요. 기침도 안 하고 밥도 잘 먹고."

  어머니 목소리가 불안과 긴장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그에 반해, 병원에 자주 온 서희는 울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일단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면 진찰 한 번 해 볼게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명은 "열이 나요." 하면서 병원에 옵니다. 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것과 진짜로 열이 나는 건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36.5도를 넘으면 열인 줄 알지만, 정확하게 오전 기준으로 37.3°C, 오후 기준으로 37.8°C 부터 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기초 체온이 높아서 37.8 °C부터 로 봅니다. 일반적으로 열감을 호소하는 환자의 절반은 실제로 열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눈이 붉어졌나, 콧물은 없는지, 목과 편도는 괜찮은지, 양쪽 귀에 중이염은 없는지, 목에 만져지는 림프절은 없는지. 

 청진은 기본이죠. 청진을 하면서 혹시나 몸에 발진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아이는 손을 꼭 내밀어 보라고 합니다. 수족구나 성홍열 같은 경우 손에 수포나 껍질이 벗겨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른의 경우는 꼭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라고 하면서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누릅니다. 간이나 담낭에 염증이 생기면 "욱"하고 아파합니다. 여자의 경우는 양쪽 등을 두드립니다. 콩팥에 염증이 생기는 신우신염의 경우, 마찬가지로 찌릿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진찰 끝나기가 무섭게 손발을 동동 구르던 서희 어머니가 묻습니다. 


"목이 부었나요?"


 머리부터 손끝까지 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목요? 멀쩡합니다. 이 나이 때에 목이 이상한 경우는 많습니다. 목에 이상이 있으면, 엄청 아프기 때문에 아이는 아무것도 안 먹습니다. 의사가 놓칠 리 없습니다. 

<실제로 목이 부은 경우들, 우측 헤르판지나, 좌측 편도염: 출처 구글>

 여기서 갈림길입니다. 


 체온이 높은 경우는 외부에서 열이 가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1. 감염

2. 비감염성 염증 질환

3. 암

4. 다양한 이유

5. 미상

나누어집니다. 


좀 더 자세히 볼까요. 

<해리슨 20판,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의 원인>

 저도 머리가 아픕니다. 


 "다리가 네 개인 동물을 보았어요."

 집 근처에서 목격했다면, 개나 고양이, 그리고 쥐일 겁니다. 양재천에서 보았다면 너구리일 수도 있겠네요. 동물원에서 보았다면 코끼리, 기린, 하마, 얼룩말 등 엄청 많아지죠. 몸에 줄무니가 있었어요, 그럼 얼룩말이겠죠. 코가 엄청 길었어요. 그럼 코끼리죠. 힌트라도 주어지면 다행인데, 열이 나는 서희는 아무리 눈을 뜨고 찾아봐도 힌트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불안해 떨고 있습니다. 

 

 아이가 딱 봐도 너무 심하게 아파 보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게는 1~2일 만에 다른 증상 없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일단 좋아졌으니, 원인을 몰라도 됩니다. 

 

  일부는 열이 나고 시간이 좀 지나야 특정 증상이 나타납니다.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몸에 발진이 나타나거나, 기침, 가래 콧물 등의 호흡기 증상을 동반하거나 설사를 합니다. 수족구 같은 경우도 열나고 몇 시간 후에 손과 발, 입에 발진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독감은 가장 먼저 발열과 전신 근육통이 나타나고 하루 전후로 해서 기침을 하게 됩니다. 독감 유행시기엔 열만 나도, 적극적으로 독감 검사를 하기도 합니다. 열만 나다가 3일 정도 후에 열이 떨어지면서 발진이 나타나는 돌발진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열이 나자마자 오면, 사실 의사도 잘 모릅니다.


 5일 이상 지속되면 의사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집니다. 이 정도면 이미 병원에 3번째 온 겁니다. 소아의 경우, 혈관염의 일종인 가와사키를 꼭 생각해야 하고 요로감염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5일이 지났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하면 대게는 정밀 검사를 위해 전원을 보냅니다.  


 불안해 떨고 있는 서희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할까요?


 "열 나는 원인을 잘 모르겠네요. 다만 아이 컨디션은 괜찮으니 좀 지켜보도록 하죠. 대게는 저절로 좋아지고, 

하루 이틀 지나서 기침, 콧물 등의 호흡기 증상이나 몸에 발진 설사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지켜보시고 약을 먹고도 48시간 지나서도 열이 나면 다시 한번 오세요. 5일이 지나서도 열이 나면 큰 병원 가보는 게 나을 듯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서희 엄마는 아이가 괜찮아질 때까지 걱정에 잠을 못 이룰 겁니다. 머릿속에서는 주위에서 듣거나 뉴스에서 본 온갖 무서운 질병을 떠올릴 겁니다. 


 그냥 거짓말을 할까요?


 "네, 목이 좀 부었네요. 2~3일 정도 열이 날 수 있는데, 몸에 발진 나거나 설사하거나 기침하면 바로 다시 오세요. 괜찮아질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실을 말할까요? 선한 거짓말을 할까요? 어떤 게,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최선일까요? 

 저는 매일, 매 순간 고민합니다. 불확실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할지, 확실하고 편한 거짓말을 할지. 


뒷이야기:

 아, 어른이면 "목이 부었어요." 대신 "감기 몸살입니다."로 바뀝니다. 참고하십시오. 


표지는 아시다시피 영화 <매트릭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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