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의사가 되는가 3
산부인과 실습 기간 때였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연분만은 단 한 건 밖에 못 봤지만, 제왕절개와 자궁적출술은 하루에도 몇 개씩 수 십 번을 참관하다 보니, 낯선 수술방의 분위기에도 적응하고, 수술의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낼 정도가 되었다.
‘여기서는 하모니(수술기구 중 하나로, 절개와 동시에 지혈이 가능한 기구)로 자궁에 연결된 혈관을 자르고, 다만 자르기 전에는 꼭 요관의 주행 경로를 확인해서 요관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하고,,,,,,,이제는 자궁경부만 봉합하면 되니, 이제 수술이 얼마 안 남았구나.’
시간이 흘러 자궁도 다 들어내고, 배꼽 옆으로 해서 수직으로 난 15cm 크기의 절개선을 봉합할 차례였다.
“자,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으니, 마무리는 4년 차 김은주 선생님이 하고, PK 선생님들 한 번씩 봉합시켜주세요.”
“네, 교수님.”
그 누구보다도 학생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셨기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던 정지원 교수님이 수술 기구를 손에서 놓으시며, 수술방 밖으로 나가셨다. 우리는 ‘헐, 설마, 설마 우리한테 시키겠어?’ 하면서 김은주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자, 제가 하는 거 잘 보세요. 니들 홀더를 이렇게 오른손으로 잡은 후, 바늘 끝을 잡는 게 아니라 바늘 가운데를 잡고 이렇게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이렇게 복막을 꿰매면 돼요. 타이 하는 법은 다들 연습했죠? 두 번, 한 번, 또 한 번. 복막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최대한 힘을 줘서 이렇게 당기세요.”
“가장 먼저 해 볼 사람?”
김은주 선생님은 나, 수원이, 훈이, 수진이를 쳐다보았다. 다들 천으로 연습했을 뿐, 단 한 번도 사람의 살을 꿰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누가 처음으로 봉합을 시도하는 의대생에게 자신의 찢어진 살을 맡기겠는가? 평생 흉터로 남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선생님.”
재수 없게도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나였다. 전신 마취로 의식이 없는 환자의 배를, 정지원 교수님과 김은주 선생님의 배려 속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 생살을 꿰매게 되었다. 봉합하는 건 정말 지겹도록 보았다. 하지만 수천 번 보기만 한 수처를 막상 내가 하려니, 긴장으로 니들 홀더를 쥐기 전부터 수술 장갑을 낀 손에 땀이 흥건했다.
수술용 바늘은 일반 바늘과 다르게 반원 형태로, 끝에는 처음부터 실이 달려 있었다. 3번 바늘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데, 생각보다 굵고 날카로웠다. 복막에 찔러 넣는 것은 쉬웠는데, 바늘이 반원 모양이라서 그런지 들어간 바늘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잘못 꿰매서 벌어지면 나중에 복막염 오니까, 잘 꿰매세요.”
김은주 선생님께서는 주의를 준다고 한 말이겠지만, 그 말에 내 손이 더 떨렸다. 지금이라면, 한 땀을 뜨는데 5초도 안 걸리지만, 그때만 해도 몇 분이 걸렸다. 수술방은 항상 서늘하지만, 모자를 쓴 이 마부 터해서 마스크를 한 입술 주위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녹색 수술복이 땀에 젖어 검게 변했다.
“자, 그다음 옆에.”
우리는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 땀씩 봉합을 했다. 김은주 선생님이 혼자 했다면, 1분도 안 걸렸겠지만, 우리 4명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수처를 하느라 10분도 넘게 걸렸다. 번거롭고, 귀찮으며, 또 잘못 꿰매서 벌어지면 복막염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면서, 의사는 보고, 배우고, 또 가르친다.
의사는 모두 이렇게 배운다. 가장 간단한 감기약 처방부터 해서, 주사제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 항암제 처방까지. 약뿐만이 아니다. 교수님, 다른 동료들이나 선배들의 이전 처방, 인계장, 대가들이 쓴 책(내과의 ‘해리슨’, 외과의 ‘사비스톤’), NEJM(최고 권위의 의학저널)부터 해서 각과별 저널 및 논문, 각종 학회, 거기다 발달한 시대에 걸맞게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보고 배운 후, 직접 하고, 그리고 익숙해지면 후배를, 동료를, 학생을 가르친다.
가장 간단한 채혈(일명 피뽑기)은 사람 모형에 몇 번 해 보고, 의대생들끼리 짝을 지어, 한 두 번씩 해보고 나서 실전 투입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찔러댔는지, 이미 혈관 자리에 더 이상 새롭게 찌를 곳이 없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모형은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지 않는다. 거기다 인형은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순간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찔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실전에 투입될 시간이 찾아왔다. 응급실에서 내가 피를 뽑아야 하는 환자는 40대의 건장한 남성으로 팔오금 한가운데에 굵은 빨대만 한 팔오금 중간 정맥(median cubital vein)이 떡하니 보였다. 팔에 토니켓(지혈대)을 묶고, 10cc 주사기를 들고 눈 앞에 큰 지렁이 몸통만 한 푸른 혈관에 주사기를 꽂으려는데 ‘혹시나 실수하면 어떡할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피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한 번에 못하면 환자가 화를 내지나 않을까, 내가 초보인 것을 알고 능숙한 사람으로 교체해달라고 하면 어쩌지’ 온갖 생각에 두려워서 멈칫멈칫했다. 그런 나를 보고, 오히려 남자 환자분이 “선생님, 긴장하지 마세요.”라며, 환자가 나를 달랬다. 이런 망신이 있나.
정맥혈 채혈부터 시작해서 수액 라인 잡기, 관장, 폴리(소변줄) 꽂기, 동맥혈 채혈 같은 비교적 쉽고 실수를 하더라도 경미한 합병증을 일으키는 시술부터해서 척수 천자, 골수천자, 중심정맥관 삽입, 듀얼 카테터 잡기, 기관삽관, 간•폐•신장 조직검사 같이 어렵고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시술이 잘못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시술까지 모두 그렇게 ‘처음’을 지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스터’ 경지에 오르고, 그 후로는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선생’에 도달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 누구도 실수 한 번 없이, 그 모든 술기를 처음부터 잘할 수 없고, 100% 성공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렇게 배웠고, 레지던트 고년차가 되자 후배를 가르쳐야 했다. 내가 수십 차례 중심정맥관(장기간 수액을 맞거나, 일반적으로 수액을 투여하는 말초 정맥혈관이 없는 경우, 고농도의 약물을 투입할 때 사용하는 관)을 삽입하고(그중에 3번은 바늘로 폐를 찔러, 폐에 공기가 차는 기흉을 만들었다), ‘마스터’ 경지에 올랐을 때였다.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가르칠 때가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으나, 연차는 아래인 박신혜 선생님을 불렀다.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처음으로 중심정맥관을 삽입 시도한 환자는 60대 남자 환자였다. 체중이 30킬로나 될까, 장기간 와상 상태로 근육이란 근육은 다 사라져 팔다리는 뼈에 가죽만 남아 있었다. 영양실조로 인한 복수로 배만 볼록하고 가슴은 갈비뼈가 드러나다 못해 갈비뼈 사이사이에 깊은 홈이 파일 정도였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턴 때부터 중심정맥관 삽입하는 것을 100번은 봤다. 인턴 때, 주 업무 중에 하나가 중심정맥관에 필요한 물품(중심정맥관 키트, 20cc 생리식염수, 10cc 실린지, 소독약, 소독포 3장, 마취제 리도카인, 3번 바늘 및 봉합 세트, 가위, 테가덤:멸균투명드레싱, 4x4 거즈 여러 장, 500cc 생리식염수, 멸균 장갑) 챙기기와 레지던트 선생님 어시스트였으니까.
내가 레지던트가 된 후부터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줄 알고, 머릿속으로 수 십 번도 넘게 시술하는 것을 상상했다. 유튜브 동영상도 몇 차례나 보았다.
시술에 앞서, “후”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환자의 어깨 뒤에 타월을 받쳐 최대한 빗장뼈를 돌출시켰다. 그래야 빗장뼈 아래에 있는 쇄골하 정맥에 더 접근하기 쉽다. 멸균 복장을 하고, 소독을 하고, 소독포를 환자 몸 위에 덮는다. 부분 마취를 하고 10센티 길이에 두께는 2mm나 되기에 일반인이라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굵기의 은색 주사 바늘을 가슴속으로 찔러 넣어야 한다. 빗장뼈의 어깨 쪽 2/3 지점에서 1cm 아래에서 갈비뼈를 피해, 15도로 눕혀서 가슴 쪽을 향하여, 쇄골하 정맥이 있을 만한 위치로 단번에 찔러 넣었다.
피스톤을 당기면, 적갈색 피가 차고, 그러면 주사기 뒤로 뱀처럼 말려 있는 20 게이지 가이드 와이어를 쑥쑥 집어넣는다. 가이드 와이어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끝이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넣어야 머리 쪽으로 안 가고, 심장 쪽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사 끝을 반드시 확인하여 몸 안에 가이드 와이어를 다 집어넣으면 안 된다. (실제로 후배 중 한 명이 가이드 와이어를 몸에 다 넣은 경우가 있었다. 심혈관 조영술까지 해서 겨우 뽑아냈다.) 그리고는 맨 처음 꽂은 주사기를 빼고, 바늘구멍을 넓혀주는 플라스틱 확장기(dilatator)를 가이어 따라 한 번 넣었다 뺀다. 그다음으로 가이어 와이어를 따라 휴대폰 충전기 선 굵기의 카테터를 15cm 정도 넣은 다음 끝에 생리식염수를 달고, 카테터와 피부가 만나는 부분에 동전만 한 고정기를 붙인 후, 스킨에 봉합한다. 그러고 나서, 파스 크기의 투명 반창고를 그 위에 붙여준 후, 엑스레이를 촬영해서 목 쪽이 아니라 심장 쪽으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면 끝이다.
주사기 피스톤을 당겼다. 예상대로라면 검붉은 피가 쭈욱 나와야 했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피스톤은 꿈쩍하지 않았다. 살짝 힘을 더 줬으나, 피가 나오지 않았다. 바늘을 피부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뺀 다음, 방향을 바꿔서 다시 찌른 후, 피스톤을 당겼으나, 역시나 피가 비치지 않았다.
‘아, 씨, 여기가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바늘을 뺀 다음 왼손에 거즈를 들고서, 바늘 자국을 꾹 누른다. 오른손으로는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채워 뿜어서 바늘 안에 박혀 있는 지방과 피부 조직들을 제거한다. 거즈를 때서, 출혈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또다시 찔렀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 부분 마취를 하기는 했으나, 바늘이 깊게 들어가기 때문에 통증이 없을 리가 없다. 환자가 움찔거린다.
긴장과 초조함으로 넓은 이마에 땀이 맺힌다. 또다시 바늘을 한 번 더 빼서 시도했으나, 다시 실패.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과장님을 불렀다.
과장님께서는 좌측에 단 한 번에 성공했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려고 찍은 엑스레이에서 내가 찌른 우측 폐에 기흉(폐와 흉강 내에 공기가 차는 질환)이 생겼다. 내가 찌른 바늘이 목표했던 쇄골하 정맥이 아니라 폐를 찔러서 폐에 구멍이 났다. 제길.
첫 케이스가 힘들어서 그런지, 두 번째 케이스에서는 이상하게도 잘되었다. 그 후로 연속으로 10명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쭉 성공시켰다. 잊을 때 즈음해서 또 한 번 기흉을 만들었고, 또 쭉 성공. 그리고 이제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칠 시간이 왔다.
내 첫 환자에 비해 박신혜 선생님은 운이 좋았다. 내 첫 환자는 삐쩍 말라 뼈 밖에 없었으나, 박신혜 선생님이 해야 할 환자는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다. 내 환자는 의식이 있었으나(의식이 있으면, 자극에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더 시술하기가 힘들다), 박신혜 선생님 환자는 의식도 없었다.
장비를 세팅해 놓고, 박신혜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C-line(central line: 중심정맥관) 케이스 있으니까, 중환자실로 오세요.”
10분 지나서 박신혜 선생님이 중환자실로 왔다. 내가 했으면, 지금쯤이면 이미 끝나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을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있을 시간이다.
“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할 줄은 알죠?”
“네.”
“그럼 해보세요.”
평소 꼼꼼하던 박신혜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 없이 순서대로 일회용 수술포를 입고, 모자를 쓰고 소독하고, 환자에게 소독포를 덮는다. 10cc 주사기에 생리 식염수까지 채웠다. 의식 없는 환자니까, 마취는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바늘을 찔러 넣을 차례다. ‘내 첫 케이스보다 훨씬 쉬운 환자니까, 잘하겠지.’ 박신혜 선생님이 환자의 쇄골뼈를 더듬기 시작한다. 근데 왠지 바늘을 찔러 넣으려는 위치가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잠시만요.”
내가 수술용 장갑을 끼고, 환자의 쇄골 밑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바늘을 찔러 넣을 자리를 정해준다.
“여기로 넣으면 될 것 같아요.”
“네, 선생님.”
연필심 굵기 만한 바늘이 환자 가슴속으로 들어간다. ‘각도가 너무 얕은데.’ 역시나 피스톤을 당겨도 피가 나오지 않는다.
“선생님, 각도가 약간 얕은 것 같아요.”
“아, 네.”
바늘을 살짝 뒤로 뺐다, 다시 집어넣는다.
‘아, 이번엔 좀 깊은 것 같은데.’
역시나 나오지 않는다. 박신혜 선생님이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했으면, 이미 끝났을 시간이다. 직접 하다가, 누군가가 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안 편하다. ‘이번에는 제가 할게요.’ 말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그 누구도 쇄골하정맥에 바늘을 꽂아 넣는 법을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시행착오를 통해 감으로 익힐 수밖에 없다.
한 번 더 해서 성공하면, 자신감도 붙을 거고, 다음번에 더 잘할 수 있겠지. 박신혜 선생님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냥 빼서 반대쪽에 한 번 더 해보세요.”
오른쪽에 다시 세팅을 한다. 붉은 베타딘으로 닦고, 소독포를 깔고, 바늘 찌를 부위를 손으로 만져본다. 나를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끄떡인다.
한 번. 실패.
두 번. 실패.
세 번. 실패.
아, 더 이상은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번에는 제가 할게요.”
손을 바꿔서, 내가 쇄골 아래를 찌르자마자 단 번에 주사기에 피가 맺힌다. 성공이다.
“하다 보면 될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실패했어요.”
내가 했으면, 10분도 안 걸렸을 텐데, 시간이 배가 넘게 걸렸다. 중심정맥관이 머리 쪽이 아니라 가슴 쪽으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찍은 엑스레이에 검게 기흉이 보인다.
‘아휴.’
기흉이 생각보다 커서, 단순히 산소를 주면서 관찰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폐에 직접 관을 꽂아서 공기를 빼야 한다. 뒤치다꺼리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처음에 그랬으니까.
-위 글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