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과 콤플렉스에 대처하는 자세
제가 처음으로 K-공감에 연재하면서 쓴 글인 ‘췌장암보다 고치기 어려운 것’은 다음 메인에까지 올라오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글이 흥미로웠는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그중에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의사도 머리는 어쩔 수 없군요,,,,”였습니다. 그 외에도 “탈모 아닌가?”, “사진을 보니 머리숱 나게 하는 게 더 어려운가 보다.”, “난 또 스님인 줄.” 등 글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저의 외모와 관련된 댓글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심지어 저의 지인은 “그러니까 췌장암보다 고치기 어려운 게 얼굴이라는 거죠?”라며 댓글에 비틀거리는 저를 완전히 K.O. 시켰습니다.
19살에 수능에 실패하고, 머리가 M자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재수를 하게 되어서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의대에 들어왔으나 머리는 새로 나기는커녕 더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길러도 보고, 짧게도 잘라보고, 빗으로 머리를 두드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제 머리였습니다. 저의 콤플렉스였죠. 길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대뜸 “세상에 불만 있냐? 왜 머리를 밀고 다니냐?”부터 해서 병원에 오는 아이들은 “앗, 대머리다.” 심지어 “스님이세요?”라고 물어보시는 분에 심지어 두 손을 곱게 모아 합장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울컥 화가 났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거울을 보면 화가 나니까, 아예 거울을 치우기도 했습니다. 저의 외모를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저 또한 그 사람의 외모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제 머리는 숲에서 초원이 되더니 이제 사막이 되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초원이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사막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던 사람들은 제가 달을 가리키면, 제 머리를 봅니다. 하지만 저는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히려 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지적을 이렇게 글로 쓰며, 웃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평화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화를 깨는 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그건 질병일 수도 있고, 타인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의 노력을 정신과와 심리학에서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방어기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경 쓰지 말라”, “댓글을 보지 말라.”라고 조언하셨는데, 방어 기제 중의 하나인 ‘억압과 억제’, 그리고 ‘회피’입니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투사’도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나 패배를 남의 탓이라고 돌리는 것입니다. 가장 미숙하고, 병적인 방어기제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같이 강자에게 받은 모욕을 약자에게 갚아주는 일명 강약약강인 ‘전치’도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면 ‘수용’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 같이 특정 약점이 있는 사람이 다른 것을 더 열심히 하는 ‘보상’도 있습니다. 아예 농담으로 넘기는 ‘유머’와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이타주의’도 있습니다.
이런 고통이나 갈등을 더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변화시키면 ‘승화’입니다.
완전하지 못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약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중에는 원하는 것도 있지만 원치 않는 것도 많습니다. 오는 것은 막을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힘들 때 울면 하수고, 참으면 중수, 웃으면 고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글에 댓글 달아주셔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제공해 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저는 오늘도 활짝 웃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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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공감에 실린 원본입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발행하는 잡지이다 보니, 일부 내용과 차이가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