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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r 03. 2023

 희망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평강공주에게 있다

 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는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이자 동시에 자신이다. 그런 아이는 10개월에서 돌 사이 기어 다니고, 걷기 시작하면서 엄마 품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런 아이의 중대한 육체적 변화는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온다.

 이 시기에 아이는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물건이나 사람이 잠시 사라져도 대상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상 영속성’을 지각하는 것이다. 이 ‘대상 영속성’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바로 엄마이다. 

 하지만 막상 따스한 엄마 품에서 멀어진 아이는 무서워진다. 뒤를 돌아본다. 엄마가 활짝 웃고 있다. ‘아, 엄마가 있다.’ 아이는 몇 번 발자국 더 간다. 엄마가 없어졌을까 불안한 아이는 다시 뒤를 돌아본다. ‘역시 엄마가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함께한다는 믿음이 자라난다. 

아이에게 ‘엄마가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없다면,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사라질까 두려워, 엄마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불안하고 무서워서 곧바로 울기 시작한다. ‘분리불안’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는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고, 엄마에게 달라붙은 채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 특히 엄마와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첫 번째 관계다. 하지만 아이에게 제대로 된 엄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좌측: 아름다운 카우아이섬, 우측: 하와의 북서쪽의 카우아이섬 (출처: 하와이 관광청)>

 미국 하와이주 카우아이섬에서 심리학자인 에이미 워너 교수가 1955년 태어난 833명의 아이의 삶을 40년간 관찰했다. 하와이 북서쪽에 있는 카우아이섬은 제주도보다 약간 큰 섬으로 쥐라기 공원 등의 영화 촬영지로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유독 그 섬에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가 많았다. 에이미 워너 교수는 833명 가운데서도 가장 환경이 나쁜 201명을 추려내 연구를 이어갔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우울했다. 결손 가정이나 부모가 정신 질환을 앓거나, 약물 중독일수록 아이가 학교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 가운데 희망도 있었다. 201명의 아이 중에서 72명이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았다. 그중에는 전교 회장도, 전교 1등도 있었다. 그럼 과연 그 72명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72명에 해당하는 아이의 가정은 가난했고, 친척은 물론이고 가족 중에도 마약 중독자, 범죄자가 있었다.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 누군가가 있었다. 한 아이를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준 한 사람이. 그 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어도 관계없었다. 그 사람은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인 경우도 있었다. 조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아주 친한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출처: YES 24>

  

    

 이 연구를 통해 에이미 워너 교수는 이에 대해 큰 충격이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이를 회복하고 극복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같은 충격에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인생에서 예기지 않게 닥쳐온 큰 파도를 잘 넘어갔고, 회복탄력성이 약한 이는 큰 파도를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이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여부였다.      


 우리는 가끔 누구를 사랑하기도 전에, 각종 조건을 따진다. 외모를 평가하고, 직업을 가리고, 연봉을 캐묻고, 상대 부모의 이런저런 사정까지 고려한다. 이런 조건 사항이 안 맞아서, 결혼을 못하고, 사랑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처음부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설령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아이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대신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반에서 몇 등 이상을 하고, 어느 대학 이상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 칭찬을 하는 것이다.       


 가끔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무조건 사랑했으면 좋겠다. 연애를 하든, 아이를 키우든.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남자가 능력이 없거나 얼굴이 못생겨도. 혹시 아는가? 무한한 당신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나, 남자친구, 또는 남편이 회복탄력성을 키워 고난과 실패를 딛고서 결국 성공하게 될지.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만들 순 없지만, 평강공주는 온달 장군을 키웠다. 


희망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평강공주에게 있다.     





K-공감의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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