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중턱에 위치한 완월동은 정면으로 부산 바다와 영도를 마주 보았다. 밤이 되면 가로등이 땅에서 켜지고, 하늘에는 달과 별이 빛났다. 하늘도 땅도 아름다웠으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다였다.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출렁이는 검은 밤바다에 동시에 내려앉을 때면, 달을 희롱하는 동네라는 완월동(玩月洞)이라는 이름만큼 잘 어울리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들은 달 대신 젊은 여자를 희롱했다. 정치인들은 그 이름이 부끄러웠는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름을 얻은 그 해에 완월동(玩月洞)을 조선 시대에 무관에게 내리는 최고의 시호인 충무동(忠武洞)으로 바꾸었으나 붉은 등은 꺼지지 않았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어디서든 바다가 보였고, 바다에는 무수히 많은 배들이 떠 있었다. 부산항을 드나들던 배들은 그녀에게도 드나들었다. 한 번 정박했다 다시 오지 않기도 했고, 몇 번 머물다 영영 발길을 끊기도 했다. 영원과 미래를 풀어놓은 배도 있었으나, 현재에 취해 늘어놓은 맹세였고 다음날이면 아침이슬처럼 사라졌다.
배가 떠나 젊음을 잃은 건지 젊음을 잃어 배가 떠난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결국 그게 그거였다. 그녀는 배와 젊음을 둘 다 상실하고 말았다. 젊음과 배가 차지했던 자리를 채워주는 건, 술뿐이었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술을 마셨고, 일이 힘들어 술을 들이켰다. 젊어서 배가 들어올 때마다 함께 마셨던 술을 이제는 늙어서 혼자 마셨다.
술만큼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는 가족도, 술만큼 자신의 몸을 뜨겁게 오래 안아주는 남자도 없었다. 술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마음도 데워 주었다. 그녀는 의사도, 가족도, 남자 손님도 아닌 술 앞에서만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흐르는 세월에 자신마저 변했지만, 떠나가지 않는 건 그뿐이었다. 술은 그녀에게 늙지 않는 젊음이었고, 떠나지 않는 배였다.
<브런치-완월동 그녀->
완월동은 정면으로 부산 바다와 영도를 마주 보았다. 검은 밤바다에 달빛이 내려앉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완월(玩月), 즉 달을 희롱하는 동네란 뜻이 더 실감났다. 오랜 세월 이곳에서 술 취한 남자들은 달 대신 여자를 희롱했다.
홍순자씨는 말하지 않았고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을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완월동에 꽤 오랜 세월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흘러흘러 이곳까지 왔을 수도 있다. 술 때문에 이렇게 몸이 상했지만 그래도 유일한 벗이 술 아니었을까. 술은 그의 망가진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휑한 마음도 데워 주었을 것이다. 술이 아니라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일보-간경화 말기 완월동 그녀, 술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던가>
이 글을 홍순자(가명)씨가 살아계서서 읽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