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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pr 26. 2021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코드 블루에 관해서

코드 레드: 화재 발생

코드 퍼플: 문제를 일으키는 환자 출현 

코드 핑크: 소아 실종 또는 유괴

코드 오렌지: 대량 사상자 발생, 재해 

코드 그린: 긴급 대피 명령

코드 블루: 심정지 

코드 블랙: 폭탄 위협, 테러

코드 그레이: 침략, 위험인물 출현

코드 화이트: 서버 오류, 전산망 마비


<코드 레드, 코드 그린, 코드 오렌지, 코드 블랙, 코드 그레이 상황>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병원에 테러를 일으키는 건 영화일 뿐인데, 2년에 한 번 병원 인증 평가를 할 때마다 벼락치기하듯 저 코드를 열심히 외웠다. 언제나 벼락치기가 그러하듯, 인증 평가가 끝나면 깨끗이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일곱 색깔 무지개보다 많은 아홉개 코드 중에 남아 있는 건 코드 블루 단 하나이다. 의사라면 '코드 블루'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병원 아내 방송 중에 '코드 블루'가 들리면, 귀에 있는 고막이 아니라 심장이 떨린다. 멎은 환자의 심장을 대신해, 의사의 심장은 두배로 빨리 박동치고, 걷다가도 즉시 뛴다. 

 "중환자실, 코드 블루. 중환자실, 코드 블루."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내과 의사인 아내는 뛰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의사인 아내는 그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얀 병원 복도를 뛰어갔다. 숨이 차 올라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며칠 전이었다. 

"다 해주세요. "

 김정분 할머니가 울면서 말했다. 

 정재환 할아버지는 뇌 속 신경 전달 물질 이상으로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어지는 파킨슨병에다 사 년 전 인체에서 가장 큰 뼈인 허벅지 대퇴부 골절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몸을 한 뺨도 일으키지 못했다.  멀쩡한 사람도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하면 미치는데, 고령에 파키슨까지 있었으니 치매는 더 이상 심해질 수 없을 때까지 악화되었다. 대화는커녕 하루 종일 하는 말이라고는  "아파, 아파"가 전부였다. 거기다 콩팥까지 손상되어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아야 했다. 완전 와상 상태라 부지런히 할아버지 몸을 돌려주고 닦아줘야 하는데, 김정분 할머니는 월 200만원이 넘는 간경비도 간병비였지만, 자신이 몸을 놀릴 수 있는 한 할아버지를 남에게 맡길 수 없었다. 살이 아무리 빠졌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무거웠다. 할아버지 몸을 돌릴 때마다 할머니 입안에 틀니는 삐걱 소리를 내며, 할아버지 몸과 같이 틀어졌다. 할아버지를 돌보는게 할머니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할아버지 몸에는 엉덩이뿐만 아니라, 양쪽 허벅지에도 손바닥만 한 욕창이 생겼고, 검게 변한 욕창에서는 모양만큼 끔찍한 악취가 났다. 

 고령. 완전 와상. 파킨슨. 치매. 말기 신부전으로 투석. 커다란 욕창. 할아버지는 환자로서 최악의 조건은 모두 갖고 있었다. 커졌으면 커졌지 좀처럼 작아지지 않는 욕창에, 요로 감염, 폐렴 등 각종 세균이 할아버지 몸을 가만두지 않았다. 항생제를 끊기가 무섭게 다시 감염이 생겼고, 몇 년간 항생제가 투여된 날이 투여되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몸에서 항생제에 내성을 띠는 슈퍼 박테리아 중에서도 끝판 대장으로 꼽히는  카바페넴 내성 장구균(CRE, Cabapenem Resistant Enterobacteriaceae)까지 나왔다.

 거기다 이번에는 폐렴이 심했다. 검어야할 폐가 염증으로 하앴다. 95% 이상 나와야 할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지면서 기계에서 붉은 등과 함께 경고음이 울렸다.

 내과 의사인 아내는 김정분 할머니에게 설명을 했다. 슈퍼 박테리아, 세균, 중환자실 입실, 기관삽관, 기계호흡, 승압제, 심폐소생술, 중심정맥관 삽관. 단어 하나하나가 할머니에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국처럼 낯설었고, 기괴해서 덜컥 겁이 났다. 팔십 먹은 할머니에게는 가혹하고 무서운 말들이었다. 할머니가 겨우 붙잡은 말은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와 의사가 끝으로 질문한 "어디까지 하시겠어요?" 였다. 

 김정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각종 줄이 몸에 연결되어 있고, 화면에는 빨갛고 하늘색이고 녹색인 숫자들이 깜빡였다. 그 가운데 남편은 고요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할머니가 몸을 흔들어 깨우면, 언제라도 눈을 떠서 예전처럼 혼자서 "아파, 아파." 할 것 같다. 의사가 이번에는 힘들 거라고 하지만, 왠지 우리 남편만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요로감염, 폐렴, 패혈증을 잘 버텨왔는데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의사가 말한 그 <어디까지>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포기하라는 건지, 죽도로 놔두라는 건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자는 건지, 그래도 되는 건지, 그러면 안 되는 건지. 그저 할머니가 바라는 건, 할아버지가 죽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거 다 해 주세요.

 그 말이 할머니의 최선이었다. 담당 의사인 아내는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럼 중환자실로 가겠습니다."

 보호자가 결정을 했으니, 그 다음은 의사 차례였다. 수 십 개의 오더가 들어가고, 몸에는 수많은 관들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날 밤, 할머니의 바램과 의사의 노력을 외면한채 할아버지는 심장이 멎었다. <코드 블루>가 떴다. 

어디선가 의료진들이 달려왔다.

"우두둑, 우두둑."

 숨만 쉬기에도 벅찼던 할아버지의 가슴은 의사가 두 손으로 심장을 누르는 힘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했다. 심폐소생술 한 회가 끝나기도 전에 무수히 많은 갈비뼈와 연골이 부서져 나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멈추었던 심장은 다시 뛰었다. 

 다시 심장이 뛰는 할아버지를 본 할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몸에는 무수히 많은 전선과 수액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입에는 기다란 관이 꽂혀 있고, 항생제가 들어가는 줄, 영양제가 들어가는 줄, 마취제가 주입하는 펌프 줄, 전해질 교정을 위해 들어가는 수액줄, 망가져버린 콩팥 대신 피를 걸러주는 투석기로 들어갔다 나가는 관에, 심전도 줄, 산소 포화도 측정 센서, 혈압계 선까지.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움푹 내려앉은 가슴은 손바닥보다 큰 파란 멍이 들어있었다. 거기다 혹시나 몰라서 양팔은 붕대에 감긴 채, 침대 손잡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김정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은 없을 것이다. 몸에 연결된 선만 해도 20개가 넘었다.

 당직 의사는 김정분 할머니에게 설명을 했다.

 "심장이 한 번 멎었고,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간신히 돌아오기는 했지만, 조만간 다시 심장이 멎을 겁니다. 다시 심장이 멎으시면 심폐소생술을 하시겠습니까? 할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리는 게 나을 듯합니다."


 부서져내린 할아버지의 가슴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문득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데까지 다 해주세요."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데까지 다 해주세요."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할 수 있는데까지 다 해주세요." 였음을. 

 그 동안 할머니는 자신이 할아버지를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애 죽지 않고 간신히 버텨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몸을 돌리지도 못한 채 하얀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병실에, 침대에 갇힌 것으로도 모자라 팔다리가 붕대에 묻인 채, 자신의 콩팥과 폐를 갉아먹는 세균과 맞서 싸웠다. 몸을 돌릴 때면 부러진 허벅지뼈가 날카로운 창처럼 생살을 찔러댔고, 썩은 엉덩이와 등이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겼고, 자기가 조절할 수도 없는 물똥이 치욕적으로 엉덩이를 적셨지만 할아버지는 죽지 않고 견뎌냈다. 온갖 고통과 수치를 참아냈다. 이번에는 심장까지 멎었지만,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을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으스러진 가슴과 퍼런 멍을 안고서 편한 죽음을 놔두고 고통스러운 삶으로 돌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게 할아버지가 평생 사랑했던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노력이었다.   

 할머니는 그 모든 수치와 굴욕을 참고 견대년 할아버지가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다시 심장이 멎으면, 또 심폐소생술 하실 건가요?"


  김정분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정재환 할아버지의 심장이 멎었으나 병원에서는 <코드 블루>가 뜨지 않았다. 할아버지 몸에 달려 있는 각종 기계들이 붉은 빛을 깜빡였지만, 소리를 꺼두었기에 이번에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비로소 정재환 할아버지는 죽음다운 적막 속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고통스러운 삶 끝에 평생 사랑했던 할머니 옆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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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을 오로지 의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 같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다시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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