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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n 18. 2021

생리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혹시 생리하세요?"

 "음, 그러니까 규칙적으로 말이죠."

  머리가 아파서 온 여고생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배가 꽤나 불렀지만, 살이 쪄서 그런 것일 뿐 임신이 의심되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심한 두통과 함께 시야 이상 등을 동반하는 뇌하수체 선종인 경우 생리를 안 할 수도 있지만, 그 여고생은 단순한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정확히 말하자면 긴장형 두통이었다. 윤지는 여자치고 얼굴, 특히 턱 주위로 검은 털이 조금 기웃기웃해 얼핏 보면 남자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례할 수도 있는 내 말에 안 그래도 어두운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봐서 덩치와 다르게 소심다.  

<호르몬 이상으로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배란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질환.     생리 불순, 다모증, 비만, 불임 등이 발생하고 당뇨가 잘생긴다>

 "여자들 중에 불규칙적으로 생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원인은 다양하거든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 있고, 호르몬 이상일 수도 있거든요."

 "제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됐어요. 안 그래도 그게 의심돼서 말씀드린 거예요." 

"이게 어떻게 보면 생리를 안 해서 편할 수도 있는데, 계속 놔두면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꾸준히 약 드시고 치료받으세요."




 여자가 생리를 안 하는 이유는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임신이 있고, 앞에서 말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포함한 각종 호르몬 질환도 있다. 뿐만 아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면 여자는 생존을 위해 생리를 하지 않는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럼 생리를 안 하는 게 비정상인가? 그건 언제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성은 12~15세 사이에 초경을 하여, 폐경이 올 때까지 평균 400~500회 정도 달거리, 월경, 생리를 한다.

https://brunch.co.kr/@sssfriend/392

 이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100~200년 전만 해도 여자는 일생동안 평균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출산만 10번으로 유산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자연유산 확률이 25% 임을 고려하면 여자는 평생 13번 전후의 임신을 했다. 당연히 분유가 없었을 테니, 오로지 모유만 먹였다. 지금이야 3~4시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모유를 먹이지만, 예전에는 아이가 보채면 일단 젖부터 물리고 보았다. 모유 수유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이 호르몬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동시에 배란을 막는다. 즉, 모유 수유를 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6개월에서  길게는 18개월까지 자연 피임이 된다.  

 거기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는 조혼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리를 몇 번 하지 않고 임신을 했다. 초경도 하지 않고 임신하여 출산을 해서 태어난 아이를 <감정아이>라고 일컫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종 있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10대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며 젖을 먹이면서 수개월간 생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생리를 하고 또 얼마 안 가 덜컥 임신을 한다. 10번의 출산과 13번의 임신. 임신과 수유, 다시 임신 중에 여자가 생리를 할 틈이 없었다.

 현대 여성이 일생동안 400~500번의 생리를 했다면 과거 여성들은 일생동안 몇 번이나 생리를 했을까? 현대 학자들은 적게는 10번에서 많게는 100번 전후로 보고 있다. 1) 그러니

   과거에는 생리를 안 하는 게 정상이었고,
 생리를 하는 게 비정상이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넘쳐났다. 중국에서는 해가 달그림자에 가려지는 <일식>을 보고 용이 해를 삼키려고 생각하여 북을 치고, 하늘로 화살을 쏘며 용을 쫓았다. 현재에도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 일부 지역에서는 일식이 오면 화살 대신 총을 쏘기도 한다.

< "일식 신은 재앙이라 말했다. 과학은 축제라 말한다." 일식을 보고 활을 쏘는 무인 2)>

 생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달리 생리하는 횟수가 극히 드물었고, 생리하는 이유를 알지 몰랐다. 거기다 피는 항상 무섭고 공포를 주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다 보니, 특정 문화나 집단에서 생리하는 여성을 더럽거나 터부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성경도 예외가 아니어서, 레위기에 보면 [월경 때와 같이 부정한]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 것으로 모자라, 15장 19절부터 33절까지 월경이 얼마나 부정하며, 비둘기 두 마리를 잡아 한 마리는 속죄제를 한 마리는 번죄를 드리라고 되어 있다. 현대 과학이 발달되면서 생리를 하는 이유와 기전이 모두 밝혀졌지만, 아직도 생리하는 여성을 불결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믿음으로 생리하는 여성에게 신체적 폭력을 넘어 고문을 가하는 악습이 존재한다. 


<출처: AFP BBNews>

 인도 신화에서 날씨와 전쟁을 관장하는 신인 인드라(Indra)는 생리로 저주를 내린다. 아직도 그런 신화를 믿는 네팔 사람들은 생리하는 여자가 녹색식물을 만지면 식물이 죽고, 음식을 상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질병을 퍼뜨린다고 믿고, 여자가 생리를 하면 집 밖으로 쫓아낸다. 이를 차우파디(chhaupadi)라고 하는데 생리하는 여자는 고스란히 야생 동물이나 추위와 더위에 노출된다. 

 막 생리를 시작한 10대 소녀가 혼자서 헛간이나 움막에서 며칠을 지내게 된다. 각종 벌레는 물론이고 독사가 소녀를 물어, 소녀가 죽기도 한다. 이를 노린 사람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네팔은 고산지대라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매우 추운데, 환기가 잘 안 되는 헛간에서 불을 피우다 질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지금 이것이 네팔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식은 한 때 신이 내린 재앙이었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축제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제 모두 알다시피 생리를 한다는 뜻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생리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1. 안타깝게도 출처를 찾지 못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이었던 것 같았는데..

2. 출처: 서울 신문 https://news.nate.com/view/20190930n0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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