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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n 13. 2021

대를 잇는 건 남자가 아니었다.

 지난달 5월 11일, 나를 똑 닮은 둘째 아들 준서가 태어났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준서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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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씨 가문의 첫째 아들>

 "양서방도 느끼겠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아들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해. 확실히 아들이 태어나니 다르지?"

 저 멀리 제주도에서 1남 3녀를 둔 장인어른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장인어른에게는 2명의 손녀가 있었지만, 우리 준서가 첫 손자였다.

 "아들 축하해. 드디어 양 씨 가문의 대를 이어갈 수 있겠구나."

 고향인 김해에서 70년을 사신 아버지였다. 아들인 준서가 태어나기 전까지 형과 나 모두 두 결혼해서 딸만 하나였기에 아버지에게 드디어 양 씨 가문을 이어가고 제사를 지내줄 손자가 태어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버지의 성을 자식에게 물려준다. 그뿐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결혼을 하면, 여자는 남자의 성을 따른다. 아들에게 성을 물려주고, 아들이 제사를 지내면 대가 이어지고 가문이 이어지는 걸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스승)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고 일갈한 임제 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 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것을 의심하는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를 잇는 건 정말 남자일까?

 1987년 세계 학회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논문이 과학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네이처'지에 발표되었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실린 논문>

 미국의 유전 인류학자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세계 각지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산모 147명으로부터 태반을 기증받아 체세포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 연구를 통해, 현재 인류가 모두 같은 조상에서 유래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조상은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출신이었다. 과학자들은 그녀를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 mt Eve)라고 불렀다.


 인간 세포에는 말 그대로 핵심인 핵이 있고, 핵 안에는 유전자를 담고 있는 염색체가 있다. 총 46개의 염색채로, 절반은 아버지에게서 절반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

 하지만 세포에는 핵만 있는 게 아니다. 핵 다음으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이다. 그리고 이 미토콘드리아도 핵에 비해 소수이기는 하지만 염기쌍을 가지고 DNA를 가지고 있다. 즉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빨간색: 미토콘드리아, 노란색: 세포핵 (출처: 셔터 스톡)>
<염색체, DNA, 유전자 개념.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유전자라고 한다.>


<정자와 난자 결합 시(출처: 네이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을 할 때, 남자 쪽 정자는 말 그대로 몸(DNA)만 들어와 살고, 여자 쪽 난자가 집과 살림(세포질 및 미토콘드리아) 모두를 준비한다. 그렇기에 아이 몸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엄마 것으로, 아빠 것은 하나도 없다. 즉 미토콘드리아는 순수히 모계 유전이다. 그래서 여자의 미토콘드리아만 추적해서 인류의 조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로만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 (출처:메디게이트)>
<인류의 조상은 바로 L0로 표시된 아프리카 지역에서 탄생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이 연구가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오랫동안 노예로 학대하고 멸시하며 차별하던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자는 결코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조상이 흑인이었다니!!!!!!>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연구를 내가 새삼스럽게 주목한 이유는 이 논문이 <대를 잇는 건 정말 남자일까?>에 대한 해답을 주기 때문이다.


<핵의 유전자는 절반씩,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오로지 모계로부터(출처: Khan Academy>>


  과학의 관점에서 대를 잇고, 혈통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결국 유전자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절반은 아빠에게서, 절반은 엄마에게서 받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세포핵에 있는 유전자에만 해당될 뿐, 앞에서 설명했듯이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DNA와 유전자는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100% 어머니 것이다. 거기다 남자만 가지고 있는 Y 염색체는 아들에게만 전해지기에 딸이 태어나면 자연히 소실된다. 거기다 성염색체인 X 유전자가 Y 유전자보다 더 많은 DNA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아들(44+XY)인 경우, 어머니로부터 51.6%의 DNA, 아버지로부터 48.4%의 DNA를 받는다. 즉 아들아빠가 아니라, 엄마의 DNA를 더 많이 물려받는다. 오히려 딸(44+XX)이 어머니로부터 50.00005%, 아버지로부터 49.999995% DNA를 물려받아 차이가 적다.


 그렇기에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는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대를 잇는 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식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대(유전자)를 이어간다.  

 

 8년 전에 태어난 첫째 딸도, 한 달 전에 태어난 둘째 아들도 아빠인 나보다 엄마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드디어 양씨 가문의 대가 이어졌다며 기뻐했지만, 실제로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는데 성공한 것은 나와 아버지가 아니라, 아내와 장모님이었다.

 나? 유전자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 아들은 아무리 봐도 내 판박이니까.

<누가 봐도 나와 똑같이 생긴 아들>



 아직 정확하게 유전자의 개수와 기능이 밝혀져 있지 않아, 유전자의 비율은 DNA 수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유전자와 DNA를 섞어서 설명하였다. 정확히 나누자면, DNA 중에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소수만을 유전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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