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 중년의 남자는 신간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는 아들과 딸이 기다리는 가정과 직장으로 데려다 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기차는 도쿄가 아니라 고향으로 가 버린다. 몇 년 만에 와 보는 고향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옛날 모습은 하나도 없는 고향에서 그는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다. 피곤해서 그런지 그는 길에 쓰러지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과거로, 정확하게는 <열네살>로 돌아간다. 그는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같은 반에 가장 예쁜 소녀의 마음을 얻어 친하게 지내고, 싸움도 잘하고, 친구 집에서 몰래 술을 마시며 젊음을 만끽한다.
그것도 잠시, 열네살에 그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소년이 된 주인공은 가족을 버리고 사라지는 아버지를 잡으려고 하는데..
<열네살 2>
이전에 소개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열네살 1,2>의 줄거리이다.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이 넘치는 20대 초반에는 여러 번 봐도 알 수 없는 책이었는데, 마흔에 두 자식의 가장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만화 <열네살>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가족들 버리고 사라지는 일이 현재 일본에서 매년 수만 건 발생한다. 말 그대로 <인간 증발>이다.
<인간 증발>
누가? 언제?
버블경제 시기에 일본 서민들은 여기저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많은 대부업체들이 연 100퍼센트가 넘는 과도한 이자율을 적용했고 은밀히 야쿠자와 손을 잡았다. 빚을 갚을 수 없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야반도주를 택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렇게 야반도주한 사람들의 수가 매년 12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40p <인간증발>
금융 위기로 인해 부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사람들의 증발이 대거 발생했다.....암울한 신세대가 등장한다. 나이가 많아 봐야 고작 서른에 불과한 이들은 ‘잃어버린 세대’에 속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1990년대에 고용시장에 나오게 된 이들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직장을 탈출구로 삼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들 세대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백수로 지내거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이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어두운 상황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대학 졸업장은 아무 쓸모가 없었고 경기 불황은 눈앞의 현실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집에 얹혀살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집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일본인가 한국인가?) 130p
“산야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갚지 못한 빚, 절망,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싸움이 일상이죠. 그런데 자살하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절 보세요.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86p
“산야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전부 똑같이 술과 도박에 중독되어 있고 불행과 무능, 외로움으로 점철된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고 있다. 83p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사회를 벗어난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서서히 자살해가는 셈이다.” 85p
<인간 증발>
어디서?
증발한 사람들은 도쿄나 다른 대도시 속에 숨어서 사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숨기면 확실히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35p....... 증발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림자가 되어 자국에서 불법체류자처럼 살아간다.. 69p
산야(山谷)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곳이다... 도시 속의 도시,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소굴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인간, 모두에게 잊힌 인간, 이름 없는 인간뿐.’ 79p
무엇을? 어떻게?
“빚을 다 갚으려면 백 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당시 이치로 부부는 이치로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신속하게, 아주 신속하게 ‘심야 이사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새해 첫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날, 이치로 씨 가족은 그렇게 증발해버렸다. 62p
왜?
일본인들이 야반도주하는 이유는 대두분 빚 때문이지만 이혼이나 실직 등 각종 실패로 인한 수치심도 주요한 원인이다. 31p
어느 날 가즈후미는 훌쩍 집을 떠나 그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새로운 삶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망친 것이니까요. 그게 다죠. 도망치는 게 떳떳한 일은 아니죠. 돈도, 사회적 위치도 없어지거든요. 오직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15p
<열네살 2>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란 비겁하죠.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졌다가 아무도 알아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63p
‘이런 게 아냐, 이런 삶이 아니었어.’ -<열네살 2>, 167p-
그리고?
자살과 증발은 모두 사회적인 절망의 표현으로 그 원인은 똑같다. 실적, 자기반성, 자기희생을 강요받으면서도 끝없는 경제 위기로 인해 빈곤해지다 보니 일본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199p